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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리벤지 매치
2장 성령 수도회
3장 단체전
4장 원리과 지망생
5장 암살자 (1)
1장 리벤지 매치


할로윈 첫날에 샤를로트와 순찰을 돈 뒤.
나는 마도원리 연구소의 빈방을 쓸 자격을 손에 넣었다.
창고에 있던 간이침대까지 갖다 놓았기 때문에, 그냥 할로윈 기간 동안 계속 여기서 지내도 될 것 같았다.
“기숙사는 여전히 교수님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 같고…….”
할로윈 기간은 학사 일정이 별로 없어서 교수들도 평소보다 한가한 편이다.
그래서 조교들과 함께 계속 나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에리올이 집사 복장을 입고 돌아다녔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더군요.”
오후 시간, 나를 티타임에 초대한 일리야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그래서 다들 집사복을 입은 남학생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 코스튬은 이미 반납했는데 말이죠.”
뱀파이어 집사 코스튬은 일리야에게 반납했다.
그러니 그걸 입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학과장님도 허락하셨고,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도록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예전 원리과 실습 때까지만 해도 별로 친근한 이미지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친해져 보니 일리야 교수도 꽤 좋은 사람 같았다.
코스튬 제작을 좋아한다는 예상외의 취미도 있었고…….
“교수님은 평소 숙부님…… 학과장님하고 어떻게 지내세요?”
“아시다시피 학과장님은 남들하고 잘 어울리시는 분이 아니어서 말이죠.”
일리야가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 저하고는 별로 대화가 없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실 뿐이죠.”
“상상이 되네요.”
정말 삭막한 직장인 것 같았다.
“답답하지 않으세요?”
“회식 같은 걸로 끌려 다닐 일도 없고, 시키는 업무만 잘하면 되니까 저는 만족하고 있어요. 업무가 많긴 하지만.”
“그렇군요.”
“지금 이곳에 없는 교수님들도 그렇지만, 원리과는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다른 학과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렇게 말한 뒤 일리야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원리과 질문이 많으시네요. 슬슬 관심이 생기시나 보죠?”
“글쎄요.”
“저는 에리올이 지원한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생각인데 말이죠.”
“일리야 교수님이 환영해 주셔도 학과장님이 허락 안 해 주시면 못 들어가는 거잖아요.”
“학과장님도 에리올이 원리과에 들어오고 싶다고 하면 내심 기뻐하실걸요?”
“기뻐하신다고요?”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만요.”
과연 그럴까…….
“학과장님은 평소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제 생각으로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일리야.”
그때 문이 열리면서 카이셀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서류를 잔뜩 들고 있었다.
“앗, 학과장님…….”
일리야는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지만, 카이셀은 무표정으로 서류를 일리야의 책상에 올려놓을 뿐이었다.
“에리올, 이제 곧 합동 리그전 8차전이 있는 걸로 아는데.”
“네, 내일이죠.”
합동 리그전은 중간고사 기간에도 할로윈 기간에도 진행된다.
내일은 8차전, 다음 주 목요일은 9차전이다.
“너무 느긋하게 있는 것 아닌가?”
“준비는 충분히 한 상태예요.”
“8차전은 자신이 있나 보군.”
그러자 옆에서 일리야가 입을 열었다.
“8차전은 1학년 중급반 학생이 상대니까, 에리올이라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9차전이죠.”
“9차전은 티르피 클라겐푸르트였지.”
카이셀도 내가 9차전에서 티르피와 맞붙는다는 건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티르피 클라겐푸르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알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계속…… 티르피 선배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준비를 해 왔으니까요.”
여름 방학 때 나는 티르피에게 패배했다.
이제는 내가 그 빚을 갚아 줄 차례다.
“알겠다. 열심히 해 봐라.”
카이셀은 그 말만을 남긴 뒤 방에서 나갔다.
나름대로 격려해 주는 것 같긴 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쌀쌀맞은 태도였다.
“정말로 제가 원리과를 지원하면 기뻐해 주실까요?”
“그, 글쎄요…….”
일리야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 *

카이셀 앞에서 자신했던 대로, 8차전은 승리를 거뒀다.
교수들이 경기장을 둘러싸고 대기하고 있었지만, 미리 변장할 옷을 준비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마도원리 연구소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 일과는 둘 중 하나였다. 방에서 책을 읽거나, 아니면 클리메네 교수에게 가서 시공계 마법을 배우거나.
클리메네 교수는 약속대로 나한테 시공계 마법을 잘 가르쳐줬다.
“에리올, 너는 할로윈 축제에 바깥에 나가 놀지도 않는 거냐?”
복구된 지하 실험실에서 클리메네가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다들 바깥에서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데 너는 원리과와 시공과를 오가면서 독서 아니면 훈련이군.”
“그러는 교수님은요?”
“나는 학생 때부터 바깥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음침한 녀석.”
“교수님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네요.”
“나는 이미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너는 학생이니까 좀 더 청춘을 즐겨야 할 텐데. 그리고…….”
클리메네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하고 데이트하고 싶어 하는 여자애들이 줄을 서고 있지 않나? 그런 애들을 위해 봉사를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리고 교수님이 데이트 얘기를 꺼내도 되는 거예요?”
“뭐가 문제지?”
“지난번에 아르티앙 가문의 크리우스 씨하고…….”
“으윽?!”
리디아가 아카데미에 머무르는 동안, 아르티앙 가문의 함선도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그 시기에 클리메네가 세니아의 오빠인 크리우스와 밀회를 갖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포착되었다.
“메, 메디세이트 사건 때문에 신세 진 것 때문에, 보답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식사 좀 했을 뿐이다!”
“아니, 변명 안 하셔도 되는데요.”
“애초에 크리우스 씨는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리고, 자주 만날 수도 없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아, 알았어요. 더 이상 얘기 안 꺼낼 테니까, 진정하세요.”
학생 때부터 계속 고독한 생활을 해 왔던 클리메네에게 인연이 생겼나 했는데…… 앞으로 갈 길이 먼 모양이다.
“자, 잡담은 그만하고 마법 공부나 하자!”
“네, 알겠어요.”
클리메네가 빨개진 얼굴을 가리면서 시선을 돌렸다.
“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블랙홀 스피어요.”
“아, 그렇지.”
블랙홀 스피어는 내가 유로스 선배의 메모를 통해 습득한 시공계 마법이다.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구형(球形)의 공간을 생성하여 모든 것을 지워 버린다.
“그 마법은 확실히 강력하지만…… 합동 리그전에서는 쓰지 마라.”
“남들한테 보여 주면 안 되기 때문이죠?”
“그것도 그렇지만, 티르피 상대로는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클리메네가 손을 치켜들어, 실제로 블랙홀 스피어를 하나 생성했다.
“블랙홀 스피어는 막강한 마법이지만 단점도 있다. 공격용으로 쓰기 어렵다는 것이지.”
“네…….”
블랙홀 스피어는 상대방의 방어력을 무시하고 공간을 지워 버릴 수 있다.
하지만 블랙홀 스피어가 전개되기 직전, 그 위치에 뚜렷한 마법적 노이즈가 발생한다고 한다.
현대 마법사라면 그 현상을 뚜렷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뭔가 위험한 게 온다.’라고 감지하자마자 그 위치에서 이탈해 버린다.
“그렇기에 마법사와의 전투에서 블랙홀 스피어는 상대방의 공격이나 이동을 방해하는 용도로 써야 하지.”
“상대방의 공격 마법이 날아올 만한 지점에 미리 설치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티르피라면 그것도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굳이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는 거지.”
블랙홀 스피어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금서의 내용을 접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너무 위험한 마법이라 티르피 선배를 상대로 쓸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지, 블랙홀 스피어는 모의전용 보호 장비의 대미지 흡수 기능도 무력화시키니까.”
“그래서 암흑 마법도 쓸 수 없죠. 어차피 그것도 국제 조약으로 금지되어 있고.”
너무 위험한 마법은 모의전에서 써먹을 수 없다.
물론 이건 티르피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소환 마법도 티르피 쪽이 더 우수할 테니 그걸로 승부를 내기는 어려울 테고…… 9차전에 대비해서 내가 가르쳐 줄 내용이 그리 많지 않네.”
“그래서 말인데요, 교수님.”
“뭐지?”
“집중적으로 연마하고 싶은 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