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4권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4권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4
동경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4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Chapter 06.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4권
Chapter 01.
휙!
다비드의 검이 허공을 그었다.
벌써 다섯 번째였다.
힘겹게 피하지도 않았다. 여유롭게 검을 흘리며 빈틈만 노렸다.
상대는 전선에서 온 무명의 기사.
전쟁터에서 발탁되어 제국으로부터 작위를 하사받았으며, 그만큼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연무장에서 대련으로만 상대를 쓰러뜨려 온 다비드와는 삶 자체가 달랐다.
결국 다비드가 선택한 건 오러였다.
실전 경험에서는 밀릴지라도 오러만큼은 또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였기에.
노란 오러가 불길처럼 타오르자, 상대 기사도 푸른 빛의 오러로 맞섰다.
화르륵!
노란 오러가 화마처럼 나아가 기사를 덮쳤다.
푸른 기운이 거대한 화마를 밀어내는 것도 잠시.
“……!”
이내 불길 같은 오러에 삼켜지고 말았다.
검술 명가의 훌륭한 스승들로부터 성장 내내 개인 지도를 받아온 결과였다.
쓰러진 기사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어지는 또 다른 4강전.
바토니 카일로의 경기였다.
상대는 지방의 백작가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종자 출신이었다.
그 또한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검을 배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온 자였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상대가 다비드였다면 잠시나마 몰아칠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전생에서부터 누구보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바토니를 만나고 말았다.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몇 차례.
대단한 집념에 관중들이 갈채를 쏟아낼 즈음, 백작가의 기사는 항복선언을 하고 말았다.
4강 경기까지 종료되자, 모두의 관심이 결승전으로 쏠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망의 결승전.
휴식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원형 경기장은 관중들의 말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그 소리 너머, 금빛 찬란한 의자에 앉은 황제가 턱을 괴었다.
“드디어 결승전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오비에르가 곁에 바짝 붙어 대답했다.
“누가 이길 것 같으냐.”
“검술로는 바토니 카일로가 더 뛰어나 보입니다만, 오러에서 승부가 갈릴 듯합니다.”
“그래서?”
“송구합니다, 폐하. 바토니 카일로가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랐는지 알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긴, 이번 대회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오러를 발현하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황제는 문득 궁금했다.
어차피 지든 이기든 다비드가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태생이 대공 가문이었기에.
하지만 바토니 카일로는 달랐다.
레이카르트 가문을 대표해서 나왔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었다.
데미안은 바토니를 놓아줄 것인가.
황제에게 데미안은 생클레어 가문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대공의 측근을 건드리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기왕이면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승리하는 쪽보다는 패배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황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위전이 마무리되고 나면 바토니 카일로를 불러들이거라.”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쓰일 곳을 따지기 전에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이는구나.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저 나이에 저렇게까지 뛰어날 수 있는지.”
“저 또한 궁금합니다.”
“그래. 네게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속행하겠습니다.”
오비에르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 * *
같은 시각.
경기장 양쪽에 마련된 대기실.
당일 대진표에 따라 갈라진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던 대기실이 허전할 정도로 휑했다.
며칠 전만 해도 바글바글했는데.
이제는 바토니 홀로 서 있었다.
관중들의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벽 너머에서 희미하게나마 들려왔다.
“…….”
바토니는 테이프가 감긴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각해 보면 참 기구한 삶이었다.
두 번의 생을 밑바닥에서 시작했고, 정신 차렸을 때는 중요한 분기점에 도달해 있었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검을 쥐자,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차갑고도 딱딱한 이질적인 감각.
문득 처음 검을 쥐었던 날이 떠올랐다.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응원했던 어머니와 막대기로 싸우는 법을 가르쳤던 이웃집 아저씨.
뒷골목 망나니인 자신을 어떻게든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스승.
바토니의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번졌다. 언제 떠올려도 질리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생에 만난 인연들이 차례대로 눈앞을 스쳤다.
오늘 바토니는 자신만을 위해 이 자리에 서지 않았다.
그러니,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 따위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손잡이를 쓰다듬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대기실에서 출전을 돕는 기사였다.
그가 말했다.
“바토니 카일로. 준비해라.”
바토니는 검을 쥐고 일어섰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눈앞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늦봄을 지나 초여름에 다다른 뜨거운 햇빛이었다.
기사가 바토니의 등을 두드렸다.
“바토니. 길버트 기사님을 따라 나도 널 응원한다. 가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펼치고 와라.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바토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아갔다.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기던 바토니가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경기장의 흙을 만져보았다.
밤새 내린 빗방울을 먹은 흙이 무겁고 축축했다.
햇살은 따가웠으며 관중들의 함성은 우렁찼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다비드 생클레어가 보이고.
그를 보자, 비로소 결승전에 출전했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뒤이어 도착한 경기장의 중앙.
보증인이 깃발을 들고 다가왔다.
그런데.
본선 첫 경기부터 쭉 진행하던 길버트가 아니라, 처음 보는 기사였다.
기사가 말했다.
“양측, 무기를 반납해라. 주최 측에서 준비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그러고는 들고 있던 검을 나눠주었다.
“공정하고 공평한 대결을 위한 조치다.”
그 말을 끝으로, 보증인은 두 사람과 함께 황제가 앉은 자리로 돌아섰다.
결승전의 시작을 위한 절차였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증인이 깃발을 올렸다.
바토니는 검을 쥔 채 바닥에 그어진 선까지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다비드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기왕 올라온 거, 좋은 승부가 되길 바라마.”
평소와는 다른 온화한 미소.
바토니는 그 미소가 어딘가 모르게 불쾌했다.
뒤이어 깃발이 내려가고.
“시작!”
마침내 결승전이 시작됐다.
바토니는 검을 내린 채 우두커니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