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목차
1. 결심
2. 도장 깨기
3. 살인귀
4. 오늘 업무는 휴식인데요?
5. 웨스트 시티
6. 적색 균열
7. 샤튼
8. 레서판다
1. 결심


로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메시지에 뜬 문장을 다시금 읽어 보았다.

아로마: 그러지 말고 데이트 신청을 해 보는 건 어때?

분명 데이트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에드한테 데이트를 신청한다고?’

뇌가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잘 작동하지 않았다.

아로마: 응? 왜 대답이 없어?
용사님오늘은안대여: 그게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살아온 시간은 제법 길지만, 대부분을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로제였다.

모험을 떠났던 것도 1,000년 전이었다. 에드 파티와의 모험은 로제의 일생에 중대한 변곡점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대부분 방구석에 처박혀 보냈었다.

아로마: ㅋㅋㅋㅋㅋㅋㅋㅋ
용사님오늘은안대여: 아니 왜 웃어?
아로마: 그럼 울까? 퓨ㅠㅠㅠ
용사님오늘은안대여: 뭐가 웃기냐고! 난 엄청 진지하거든?

로제는 진지했다.
심지어 로라가 방법을 알려 준다면, 따를 용의도 있었다.

아로마: 그냥 같이 가고 싶다고 해!
아로마: 어디 장소 좋다고 들었는데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하면 되잖아!

데이트 신청이 그렇게 간단하다고?
아니, 데이트 장소는 어디로 하지?
그러다 거절당하면?

수없이 많은 질문이 뒤따랐다.

용사님오늘은안대여: 만약 거절당하면?
아로마: 빨리 다른 남자 알아봐야지.
용사님오늘은안대여: ......

로제로서는 거절당한 뒤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용사님오늘은안대여: 불가능해.
아로마: 예? 세상에 반이 남자인데?
용사님오늘은안대여: 세상의 반이 남자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야.

로라는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이쯤 되니 로라도 궁금해졌다.

아로마: 도대체 어떤 남자길래 그래?
용사님오늘은안대여: 있어.
아로마: 흠, 그 정도란 말이지?
용사님오늘은안대여: 그 정도가 맞아.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용사니까. 차마 그리 말하지 못해 입이 근질거렸다.

아로마: 내가 남자들이 환장하는 곳을 알긴 아는데….
용사님오늘은안대여: PC방?
아로마: PC방 같은 소리할래?

남자들이 환장하는 곳은 PC방 아닌가? 그리고 PC방이라면, 로제도 환영하는 바였다.

‘PC방에서 듀오로 경쟁전 돌리면서 하드 캐리하면, 에드도 좋아하지 않을까?’

로제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장에 로제에게 남자가 좋아할 세 가지를 꼽으라면 이렇게 답할 터였다.
게임, PC방, 그래픽카드.
물론, 로제가 죄다 좋아하는 거였다.

아로마: (링크)
용사님오늘은안대여: 뭐야? 여긴?
아로마: 남자들이 환장하는 곳.

별로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링크를 열어 본 로제가 무릎을 탁 쳤다. 데이트 장소로도 훌륭했다.

* * *

주말.
현재 나는 메이릴의 숙소 앞에 서 있었다. 길드원의 복지로 숙소까지 제공하는 길드, 그게 판테온이다.

솔직히 이 정도면 직원복지 훌륭하지.

초인종을 누르자, 메이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택배는 문 앞에 놔 주세요.”
“택배 기사 아니야.”
“그럼, 배달 기사인가?”
“배달 같은 소리할래?”

띠리릭.
메이릴이 현관문을 열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설마 제가 그쪽 목소리도 모르겠어요?”
“전화는 왜 안 받아?”
“직장 상사의 주말 전화는 피해야죠~”

맞네.
주말에 회사 사람한테 연락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이지.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나저나 뭐 하고 있었냐?”
“당연히, 드라마 조지고 있었죠. 일단 들어오시죠. 밖에 계속 세워 두기도 뭐하니.”

거실로 들어서자 큼지막한 TV에서 드라마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탈로스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안녕하세요. 길마님.”

길마님.
오빠라는 호칭이 오글거린다고 하자, 탈로스는 나를 길드 마스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근데 쟤는 왜 드라마 보고 있냐?”
“사회생활 좀 익히라고 드라마 보여 주고 있었죠.”

사회생활을 드라마로…?
AI를 드라마로 학습시키는 건 또 처음 보네.

“이상한 거 배우는 거 아니야?”
“그건 해 봐야 아는 거죠.”

드라마 제목이 <그 아파트엔 드래곤이 산다>였다. 대강 내용을 보니, 로맨틱 코미디로 현대 사회에서 우연히 만난 남주가 사실 드래곤이라는 내용이었다.

“어? 나랑 데이트할래? 나랑 죽을래?”
“협박하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