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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장


[……지금 박상구 포수가 구강혁의 초구를 굉장히 어렵게 잡아냈습니다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습니다. 김도현 타자는 지금 황당하다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네요.]
[ABS가 도입된 후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에요. 그렇기는 한데……. 타석에서 타자가 직접 보는 공과 저희가 지금 중계화면으로 보는 공, 이 둘이 실제로는 굉장히 차이가 나거든요.]
[그렇습니다.]
[방금은 화면으로 봐도 김도현의 저런 반응이 이해가 될 정도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ABS 도입 초기 기존 존과의 괴리를 줄이고자 규정보다 좌우 폭을 살짝 늘렸는데……. 이후로도 해당 존이 계속 유지됐잖아요? 그 살짝에 딱 걸친 공이었지 싶습니다.]
[중계와 함께 제공해 드리는 가상 존. 아시다시피 이 존과 ABS의 실제 판정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렇게 보기에도 5시 방향. 그러니까 우타자 몸쪽, 존의 거의 꼭짓점에 걸치고 들어간 공으로 보입니다.]
[KBO에서 선제적으로 도입하고도 이제는 3년차를 맞이한 ABS입니다만, 방금의 초구는 이 3년을 통틀어서 따져도 타자들이 보기에는 손에 꼽힐 정도로 황당한 그런 공이었을 것 같네요.]
ABS의 도입이 부른 변화는 적지 않다.
포수들에게는 특히 프레이밍.
소위 미트질의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더 이상 주심을 속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판정은 기계가 내리니까.
프레이밍에 특출난 모습을 보이던 포수들은 이 변화로 손해를 봤고, 약점이었던 포수들은 반사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미트를 당겨대는 포수들은 있었다.
한 베테랑 포수는 이를 두고 말했다.
“더 이상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 수는 없지만, 공 하나의 영향은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이 두 가지로만 끝나지가 않아요. 안정적인 포구는 투수의 다음 피칭, 다시 다음 피칭에도 계속해서 좋은 영향을 준단 말이죠. 피칭은 결국 포수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지는 거잖아요?”
말하자면 포수의 수많은 미션 가운데 하나.
“판정은 기계가 하지만 투수의 눈은 기계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가 댄 미트에 네가 이만큼 잘 넣었다, 프레이밍은 투수에게 그런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어요. 특히 어린 투수들한테는 한 타임 끊어 가는 것보다 잘 잡은 공 하나가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파트너, 즉 투수의 멘탈 케어를 위해서라고.
볼을 스트라이크처럼 잡는 것이 프레이밍.
반대로 스트라이크를 볼처럼 잡는다면?
타자의 멘탈을 흔들 수 있다.
그런 역발상의 결과물이 바로…….
[……물론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박상구의 액션이 김도현을 흔든 면도 있다는 거예요.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화면상으로 뭔가 이야기도 나눈 것 같았거든요. 일부러 과한 동작을 취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역프레이밍.
박상구가 방금 취한 액션이었다.
“…….”
김도현이 침묵했다.
정말 역프레이밍에 효과가 있는가?
투수에게는 역효과를 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질문들은 팔콘스 배터리에는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피차 합의하고 던진 공이었고…….
김도현은 실제로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김도현은 나이를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장점을 너무나도 많이 가진, 앞으로의 한국야구를 이끌어 갈 타자다. 그런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그 장점 가운데 특히나 손꼽히는 게 바로 침착함 아니겠습니까, 위원님?]
[그러니까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귀까지 빨개졌어요. 이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냐, 박상구 포수한테 따로 물어보고 싶을 정도인데요.]
[하하……. 그래도 포수와 타자의 대화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공을 돌려받은 구강혁이 2구를 던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구강혁은 거기서 멈출 생각도 없었다.
2구.
슈욱!
퍼어어엉!
“스트으으라이크!”
다시 한번 비슷한 코스의 공.
[……또 한 번 거의 비슷한 코스, 루킹 스트라이크! 초구에 비교하자면 다소 존 안쪽으로 들어간 공으로 보였습니다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2스트라이크에 몰린 김도현!]
연이은 낮은 포심이었지만…….
이번에도 배트는 나오지 못했다.
그 와중에 박상구가 다시 능청을 떨었다.
“이야, 또 잡아 주네? 고장이라도 났나?”
결국 주심이 나섰다.
“포수!”
“아이고, 죄송함다.”
“잡담은 적당히 하도록.”
“넵! 저도 놀라가지고, 흐흐.”
김도현은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상대의 의도를 읽어 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가진 타자라도.
이미 수 싸움에서 완패한 시점에서는…….
도저히 칠 수 없는 공도 있는 법.
슈욱!
부우웅!
퍼어어엉!
“스윙, 스트으으라이크! 배터 아우웃!”
구강혁의 3구가 그랬다.
앞선 두 공과 거의 비슷한 궤적으로 휘어지다가…….
마지막 순간 급격히 떨어지는 투심.
[삼진, 또 한 번의 삼진! 약점이 없다고 평가되는 타자 김도현을, 구강혁이 없는 약점까지 만들어서 다시 한번 무너뜨립니다! 그것도 삼구삼진입니다! 전광판에 150킬로미터를 기록한 투심 패스트볼!]
[올 시즌 구강혁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타자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만, 몸쪽 포심 위주의 과감하고도 공격적인 피칭. 그러다가 투심 배합. 맞았어도 범타로 이어졌을 확률이 높습니다만……. 오늘 구강혁은 김도현에게 컨택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김도현의 배트가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 * *

[루킹 삼진! 4구째 포심 패스트볼이 재차 존을 지납니다! 나성진이 고개를 젓습니다! 김도현과 나성진을 연이어 삼진으로 돌려세운 구강혁은 오늘 경기 4회까지 5개의 탈삼진! 경기는 4회말로 이어집니다!]
구강혁은 생각했다.
4회초를 삼자범퇴로 막고 내려오면서.
‘가장 강한 두 타자가 처절하게 무너졌어.’
김도현을 박상구를 동원한 액션으로 흔들었다면…….
나성진에게는 오늘 경기 첫 슬라이더.
그것도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들어가는 백도어성 슬라이더를 초구로 던지는 뻔뻔한 수 싸움으로 우위를 잡고 들어갔다.
‘타선은 끝났다.’
구강혁의 판단은 실제로도 맞아떨어졌다.
이닝이 거듭되었지만…….
재규어스 타선은 여전히 무력했다.
구강혁이 계속해서 구속을 조절했음에도 불구.
여전히 2루를 밟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생각했다.
‘젠장, 저 따위로 굴어도 칠 수가 없잖아.’
‘방법은 하나다. 무실점으로 버틴다!’
‘어떻게든 투구 수를 늘려서 내리면…….’
구강혁을 상대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러니 버티고 버텨 다음 투수를 공략하자고.
어쩔 수 없는 판단.
그러나 그건 당연하게도…….
재규어스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간 구강혁을 공략하려다 무너져간 수많은 팀들.
올 시즌의 재규어스가 한참이나 내려다본…….
최대한 많은 승수를 뽑아내야 할 제물.
실제 순위표에서도 저 아래에 있는 약팀들.
바로 그들이 택해 왔던 차선책이자 악수였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타당했다.
에이스를 상대하는 기본적인 전략이기도 했고.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구강혁은 전반기 막판의 배합이 무색한 공격적인 피칭으로 도무지 투구 수를 늘려줄 생각이 없었으며…….
무실점으로 버틴다는 전제.
그것을 팔콘스 타선이 무너뜨렸다.
[5구, 타격! 제대로 당겼어요! 박상구의 타구가 네오 팔콘스 파크의 좌측 담장을 향합니다! 좌익수 뒤로 물러나지만! 담장! 담장! 담장, 담자아아아앙! 넘어갔습니다! 박상구의 투런포!]
4회말까지 잘 던지던 재규어스의 1선발.
로이스를 상대로…….
박상구가 선제 홈런을 때려내면서.
팔콘스가 확실한 승기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 * *

[‘구강혁은 다르네’ 재규어스, 팔콘스에 영봉패]
[대전 팔콘스가 광주 재규어스를 상대로 0:6의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선발로 등판한 구강혁. 구강혁은 산발적인 3안타로 재규어스 강타선을 꽁꽁 묶으며 7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였다.
……전광판에는 무려 154라는 숫자가 새겨졌다. 이는 올스타전에서 구강혁이 강대호를 상대로 던져 화제가 됐던 기존의 최고 구속을 가볍게 넘어서는 수치로, 공식 최고 구속은 154.2km/h로 기록되었다.
……이날 구강혁은 올 시즌 최고의 타자로 꼽을 수 있는 김도현과 나성진을 상대로는 단 하나의 출루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최고 구속의 포심 패스트볼을 연달아 꽂아넣으며 승부에 공을 들였다.
……이러한 완급조절은 재규어스의 다른 타자들에게는 모종의 불쾌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1번 타자로 나선 빈센트는 명백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팔콘스 타선도 구강혁의 호투에 응답했다. 4회말까지 재규어스 선발 로이스의 공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5회말 선두 타자로 나선 채연승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박상구가 홈런을 때려내며 물꼬를 텄다. 이 홈런이 결승 홈런으로 이어졌다. 후반기 첫 등판에서 든든한 득점지원에 힘입은 구강혁은 시즌 15승째.
……구강혁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처음 상대하는 재규어스 타선에 어떤 배합이 가장 효율적일지를 무척 깊게 고민했으나 딱히 완급조절에 상대를 가린 것은 아니”라며, “수차례 안타를 허용하는 등 쉽지 않은 경기였지만 무실점으로 승리에 기여해 만족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시리즈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팔콘스의 내일 선발투수는 류영준. 올 시즌 팔콘스가 재규어스를 상대로 어려운 승부를 펼치는 중에도 선발 등판한 2경기에서 모두 승리로 거둔 류영준이 위닝시리즈를 이끌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 팔) 구강혁이 많이 뻔뻔해졌네
→ 팔) 쉽지 않은 경기 이지랄ㅋㅋ
→→ 재) 야 니네 애 관리 잘해라 ㅡㅡ
→→ 팔) ㅇㅇ? 뭔 관리?
→→ 재) ㅅㅂ정정당당하게 하라고
→→ 팔) ㅋㅋㅋㅋㅋㅋㅇㅇ? 뭔 정정당당?
시리즈 첫 경기는 팔콘스의 완벽한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