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영웅이 되기로 했습니다 09권
그래서 영웅이 되기로 했습니다 09권
그래서 영웅이 되기로 했습니다
09
나니자까
그래서 영웅이 되기로 했습니다 09권
차례
Chapter 01. 무너짐 - 2
Chapter 02. 속이려는 자들
Chapter 03. 마지막 싸움
Chapter 04. 최종장 - 1
그래서 영웅이 되기로 했습니다 09권
Chapter 01. 무너짐 - 2
투표의 결과는 생각보다 착잡한 것이었다.
솔을 희생시키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겠지.
이 때문일까. 각종 언론과 SNS에는 결과에 대한 날 선 말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날 선 말들을 모두 모아보면, 대충 두 부류의 의견으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솔을 희생하자는 데 찬성한 자들을 비판하는 목소리였고, 둘은 이 모든 것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목소리였다.
뭐, 쉽게 말해 반대한 자들의 입장과 찬성한 자들의 입장이라고 보면 되겠지.
그러나 그 누구도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애달플 뿐.
목숨을 걸고 세상을 구한 자의 등에 어찌 칼을 꽂을 수 있냐는 말에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의 등에 칼이 꽂히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로.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택한 멍청하고 무능한 인간들이라는 말에는 그조차 어찌하지 못한 존재를 어떻게 이기겠냐는 말로.
정말로 괴수가 약속을 지킬 거라 믿는 거냐는 말에는 그저 작은 희망이 있기에 목을 매어 보려는 것이라는 말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옳으냐는 말에는 그럼 하나를 위해 모두가 다 죽어야만 하는 것이냐는 말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 또다시 오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는 그때도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할 거라는 말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희망을 죽인 것이라는 말에는 희망을 희생해 새로운 내일을 얻은 것이라는 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는 부끄러운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로.
정의는 죽었다는 말에는 적어도 우리는 살아남지 않느냐는 말로.
그렇게 한없이 싸워댔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솔은 담담히 투표 결과를 받아들였고, 이렇다 할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는 바로 중앙에 가 자신의 구속을 요청했고, 자신의 신병을 온전히 정부에 인도했다.
이러한 솔의 모습에 세상은 또다시 떠들어댔다.
자신들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지친 거라는 둥,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모든 걸 포기해버렸다는 둥, 자신을 희생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거룩한 일이라는 등의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러나 정부는 숱한 사람들의 말과 물음에 그 어떠한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부는 그저 솔의 의견을 존중할 뿐이라는 말만을 남겼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
.
.
【버러지들의 반응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놈의 반응은 의외로군.】
권좌라고 해도 좋을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마그나가 중얼거렸다.
그의 정신은 세상 곳곳에 퍼진 수십 마리의 감시 벌레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덕분에 솔의 결정과 세상의 반응도 볼 수 있었고.
그러나 항복을 얻어냈음에도 마그나의 얼굴은 그리 기쁘다거나 개운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봐온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물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 어떤 동물이나 짐승에게서도 본 적 없는 수준의 것이었고.
그렇기에 당연히 이번 선택 역시 그러하리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했던 것만큼 갈등이나 반목이랄 것이 생기지 않은 것은 조금 의외였다.
또, 생각보다 빨리 그를 포기해버린 통에, 살아남기 위한 고민의 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일까. 재미가 없었다. 원했던 반응도 아니었고.
하지만 다른 것보다 결과에 겸허하게 따르겠다는 솔의 그 말이 너무도 마음에 걸렸다.
뭐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노린 것은 녀석의 붕괴였다.
배신감에 정신이 무너져 내렸어야 했고, 슬픔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그 아픔으로 인간들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흉성을 폭발시켰어야 했다.
물론, 정부에 신병이 구속될 때 보인 솔의 얼굴은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얼굴이기는 했다. 슬프고, 허망하고, 살아갈 의지를 잃은 자의 얼굴이기도 했고.
그러나 그게 다였다. 이빨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입을 다물기를 택했고.
왜지…? 왜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거지? 너는?
물론, 저 모든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 똑똑하다 못해 영악한 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석연치 않았다.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찝찝했다.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걸까. 뭘 감추고 있는 걸까.
놈의 머리를 갈라 뇌를 핥아 보고 싶었다.
【하아…】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다 알게 될 일인 것을.】
그가 낮게 중얼거리며 웃어 보였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든, 모든 것이 상정한 계산 안에 있을 거다.
남은 것은 지켜보는 것뿐.
【재밌구나. 너라는 녀석은 정말로.】
.
.
.
약속의 날.
처음 솔이 마그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장소에 솔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전과는 조금… 달랐다. 안대랄 것으로 눈을 가렸고, 구속구로 두 손과 상체를 묶은 상태였기에.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는 마크가 있었고.
또, 그런 그들의 뒤에는 아틀라스와 제우스 그리고 휘하의 선단이 와 있었다.
그러나 배열한 그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전투를 위한 배열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천천히 걸어 둥지의 앞까지 다가갔다.
키에에에에엑…!
마크와 솔의 접근에 괴수들이 발광해댔지만, 함부로 덤벼들지는 않았다. 아마 명령을 받은 거겠지.
한참을 더 다가간 마크가 긴장된 얼굴과 태도로 입을 열었다.
“약속한 대로 왔소. 그러니 부디 문을 열어 주시오.”
얼마나 지났을까.
찌걱….
끈적한 무언가가 늘어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벽이 열렸다.
그러자 그 뒤로 아담과 마그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에는 상위 개체들과 어나더들이 도열해 있었고.
【흐음? 누구지? 너는?】
마그나가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마크에게 물었다.
“게이트 카를로스 마크요. 인간을 대표하는 자이고.”
【이렇다 할 힘은 느껴지지 않는군.】
“그렇소. 나는 그저 대표하는 자일 뿐, 아무 힘도 없는 낡고 늙은 자요.”
【불쌍하군. 그래서?】
“…우리의 대답을 전해주러 왔소.”
【대답을 전하러 온 것치고는 화려한데?】
마그나의 시선이 아틀라스와 제우스, 그리고 휘하의 선단을 향해 가 있었다.
“오해하지 마시오. 위협하려는 의도는 없었소. 그리고 위협조차 되지 않을 것을 알고.”
【…흠 그럼?.】
자신을 낮추는 마크의 대답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다.
“저건 그저 그에게 그간의 감사를 표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한 마지막 인사일 뿐이오.”
【버리려는 주제에 말은 그럴듯하구나. 그 위선이 가증스럽고 역겨워 구역질이 날 정도야.】
“….”
웃으며 가슴을 찌르는 그의 말에 마크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래서 이것이 너희의 선택이냐.】
마그나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약속은 지키기를 바라오.”
【물론이다. 왕의 이름으로 한 약속이다. 쉽게 저버릴 리가 없잖나.】
마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갔다.
그리고는 솔의 구속구와 안대를 툭툭 건드리며 재미있다는 듯 살펴댔다.
【선물에 장난질한 것 같지는 않구나. 포장도 예쁘게 잘돼 있는 것 같고.】
“구속구요. 포장이 아니라.”
마크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그라 해도 쉽게 풀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것이고.”
【확실히 그리 보이는군.】
“…그렇소. 당신에 대한 우리의 예우이자, 존중이요. 부디 알아주기를 바라오.”
【그런가.】
마그나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뭐, 그래. 대답은 잘 들었다. 약속 역시 지킬 것이고.】
“….”
마그나의 말에 마크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거 아나?】
“…뭘 말이오.”
마크가 불안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공존의 기간이 얼마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
흠칫.
이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솔의 어깨 역시 떨려댔다.
【그러니 가서 전해라.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그 시간을 마음껏 즐기라고.】
“…무슨?!”
【그동안만은 너희가 허튼짓하지 않는 이상, 우리 역시도 너희와 ‘공존’이라는 것을 기꺼이 하겠다고.】
“…어찌!!!”
마크가 노호성을 내뱉었으나, 들려오는 답은 싸늘하기만 했다.
키이이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