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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
37장
38장
39장
40장
36장
2차 임상 결과도 성공적으로 끝나자,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걱정했던 부작용도 거의 일어나지 않아서 조만간 3차 임상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과천 정부 종합 청사 앞은 WD 제약에서 만든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긴급 사용 승인을 하라는 피켓을 든 인파로 북적거렸다.
날이 갈수록 시위대의 숫자는 늘어났다.
어디에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시위 인파에 외국인들도 다수가 포함된 시위였다.
벌써 일주일째 계속되는 시위였다.
총리 집무실의 창가에서 시위대를 바라보는 조 총리는 가슴이 아팠다.
조 총리 역시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치매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느 누가 아니겠는가.
“총리님, 대통령님과 약속한 시간입니다.”
비서를 통해 들려온 전언을 들으며 말없이 시위대를 바라보던 조 총리는 청와대로 향했다.
일주일에 한 번 대통령과 만나 국정을 논의하는 시간이었다.
통일 전쟁이 끝나자 조 총리에게도 일 폭탄이 떨어졌지만 주 대통령도 마찬가지.
해외의 여러 지도자와 만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얼마 전에도 유럽으로 날아가 독일 총리, 프랑스 대통령과 연달아 회담을 가졌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마저 들러야 했지만 저들의 요구조건 때문에 급하게 귀국한 것이다.
청와대에서 보는 대통령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온몸에 활력이 넘쳐흘렀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통일 전쟁이 끝나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었다.
온 나라가 새롭게 변한 대한민국의 힘을 느끼는 중이었다.
“총리님,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님께서도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젊은 청춘이 아니십니다.”
“그런가요. 저는 지금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활력이 넘쳐흐르는데요.”
“그런데 어쩐 일로 급하게 돌아오신 겁니까? 남은 일정은 어떻게 하고요?”
방문하는 국가의 정상 간의 회담일정을 허투루 잡았을 리가 없었다.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자연스럽게 방문 일정이 연기된 것이다.
대답은 대통령을 배석한 비서실장이 했다.
“유럽에서 치매 치료제를 요구하고 나서서 그렇습니다. 방문하는 국가들마다 정상들이 강하게 빠른 발매를 요구하더군요.”
“그렇습니까? 아직 3차 임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요? 절차를 밟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 총리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허가를 내주고 싶지만 특허권자가 손자였다.
처한 입장 때문에 뒤로 빼는 조 총리를 보며 주 대통령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저도 2차 임상의 결과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동승한 주치의에게도 관련한 강의를 들었고요. 2차 임상 결과가 나오면서 관련된 학자들과 충분한 논의 끝에 긴급 사용 승인을 통한 치료제 발매를 요청받았습니다.”
“자기들도 치료제를 허가하면 되지 않습니까.”
“저마다 입장이 있으니까요.”
유럽의 신약 허가는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아마 한국에서 치료제를 사용하여 치료가 끝나고 나면 약을 수입하려는 속셈이었다.
국내보다 해외의 요구가 더 거세다는 소리였다.
“그렇습니까.”
“총리께서 망설이는 이유가 뭔지를 알기에 제가 급하게 귀국한 겁니다. 정말 총리님 손자분인 조용원 회장은 한국의 축복입니다. 해외 정상들도 주변에서 엄청나게 압박을 받는 모양이더군요. 환자들이 숫자도 많지만 보호자들이 대부분 힘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저를 만나면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을 받았답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의 칭찬을 듣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럴 겁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걸리는 게 치매가 아닙니까. 저도 공포스러운데,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치료할 길이 보이는데 절차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누구라도 못 참을 겁니다.”
“그렇겠죠. 저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로 고통받으셔서 누구보다 그 아픔을 잘 압니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여간 힘든 게 아닌데 말입니다.”
“저야 힘든 게 있었겠습니까. 집사람이 많이 고생을 했지요.”
“그럼 대통령께서 지시를 내려주시겠습니까?”
“그러겠습니다. 총리님께서 보사부와 협의해서 빠르게 치료제의 긴급 사용 승인을 내주도록 하세요.”
대통령이 유럽 순방중에 급하게 귀국했다는 소식에 눈치 빠른 이들은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급하게 열린 과천청사에서 열린 회의가 끝나고 조 총리가 기자들을 부르자 국내외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기자회견실을 빽빽하게 채운 내외신 기자들을 보며 조 총리는 담담하게 미리 준비한 내용을 읽어나갔다.
한참동안 준비한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조 총리가 고개를 들었다.
회견실에 있는 기자들이 조 총리의 입을 주목하는 게 느껴졌다.
“……정부에서는 WD 제약에서 출시한 치매 치료제의 긴급사용 신청을 허가합니다. 빠르게 전국의 치매 환자들이 고통 받던 병을 치료받기를 바랍니다.”
결국 바라던 내용이 흘러나오자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그토록 바라던 치매 치료제의 사용 승인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밖에서 사용 승인을 애타게 기다리던 시위대들이 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부 종합 청사 내부에서도 만세를 부르는 직원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알 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3차 임상이 필요 없다고 보신 겁니까?”
“2차 임상 결과를 보면 부작용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일어난 부작용도 생명과는 크게 지장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전국에 있는 130만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조속한 치료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조 총리께서 손자의 신약 개발이라 눈을 감고 급하게 서둘러 허가 하신 것 아닙니까!”
어디를 가나 분탕종자는 있기 마련.
어느 신문기자인지는 몰라도 주변의 눈총 때문에 제명대로 살기 힘들 놈이었다.
지금도 사방에 가득 채운 기자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저 새끼 누구야! 얼굴도 모르는 놈인데?”
“빌어먹을 놈이 어디서 훼방 놓고 지랄이야!”
“당장 쫒아냅시다.”
드세기로 유명한 기자들이 저마다 한마디를 내뱉었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송고할 기사를 적느라 바쁜 와중에도 기자들의 입은 놀지 않았다.
그만큼 모두가 바라던 소식이었던 것이다.
치매는 한번 걸리면 결코 낫지 않는 병이었다.
치료제가 나오지만 그것도 병이 회복되는 게 아니라 속도를 늦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치료제가 나온다니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가.
“치료제는 언제부터 시판됩니까?”
이 질문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WD 제약과 협의 한 결과 다음 주부터 전국에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입니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빠르게 시판이 가능합니까?”
너무 빠른 전개에 말을 듣는 기자들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굳은 얼굴로 외국 기자가 손을 들었다. 조 총리가 자기를 가리키자 지체없이 질문이 들려왔다.
조 총리가 그를 지목한 것은 그동안 꽤 낯이 익은 기자였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도 했던 뉴욕타임스의 서울 주재 기자였다.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폴입니다. 외국인들도 한국 병원에 입원하면 치료를 받는 게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정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와서 검토를 했지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만 기자 회견을 마치겠습니다.”
거기까지 답변을 마친 조 총리가 회견장을 나가자 기자 회견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저마다 자사로 기사를 작성해 보내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것이다.
긴급 사용 승인 났단다. 만세!!!!
발표됐어? 정말로 허가 떨어졌다고?
난리다 난리. 외국사는 이모님이 당장 한국 들어온다고.
왜?
이모부님이 알츠하이머 환자거든
그렇군!
조용원 회장 만세!!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갔는데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긴병에 효자 없다고 치매는 정말 정말 진짜 지독한 병이었어.
어머니가 환자인데 당장 병원에 입원시키려니까 자리가 없다는데 어떻게 하지요?
요양원에서도 치료가 가능하답니다. 가까운 요양원을 알아보세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은 별 다른 게 없었다.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정부 부처 간의 대책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치료제를 개발한 실무진으로 WD 제약의 구자서 사장을 대신해서 보냈다.
할아버지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치료제의 긴급 사용 승인 이야기를 하기 껄끄러웠다.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마침 TV 화면으로 낯익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 용원아! 아버님이 발표하시는 거 보니까. 이제 환자 보호자들이 한숨 돌리겠다. 그렇게 약이 시판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데!”
수많은 기자를 앞에 두고 담담히 내용을 브리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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