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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26장
영국 부동산 시장은 차츰 알아갈수록 복마전이었다.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크게 패배한 적이 없는 나라이기에 봉건시대 귀족들의 특권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법조차 성문법이 아닌 불문법.
이러니 대지주인 귀족들의 손에 들어간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 리가 있나.
오일쇼크 때 가격조정을 받았다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동산 가격은 상승일변도였다.
“세계의 검은돈이란 검은돈은 전부 이곳에 모여드는군.”
[인수할 만한 부동산 관리회사를 찾아봤지만, 매물이 없습니다.]
“귀족들이 팔 리가 없지. 사들이면 사들였지.”
자기 토지 위에 임대주택을 지어 세만 받아먹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거기에 부동산 가격은 나날이 상승한다.
뀡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막대한 토지를 선대에게 물려받은 귀족들은 계속해서 보유 부동산을 늘려나갔다.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공급하는 부동산은 한정되어 있다.
런던에서 크기가 어떻든 집 하나 가지고 있으면 엄청난 부자였다.
땅값이 오르면 세금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보유세 또한 만만치 않게 나온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지만 나오는 매물의 숫자는 한정적이었다.
[한 번에 사들일 생각은 말고 천천히 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동네입니다.]
투자에 메리트가 없었다. 차라리 같은 돈으로 뉴욕 같은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나았다.
내가 부동산에 투자하겠다고 하자 박 지사장이 멈칫했던 게 이해가 됐다.
한마디로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손해라는 말이었다.
“유럽 부동산은 옛날 고성과 같군.”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는 가격은 싸지만, 유지비는 몇 배가 들어간단 말이다.”
[아! 그 말이 정답입니다.]
“기다리다 보면 그래도 쓸 만한 매물이 나오겠지. 독일투자는 어때?”
[벤츠와 아우디, 레버쿠젠에 본사가 있는 바이엘의 지분 매입을 시작했습니다.]
“바이엘이라면 아스피린이라는 약을 만드는 회사지?”
[아스피린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특허 기간이 종료되어 큰 메리트는 없습니다만, 다른 종류의 유명한 약도 많아서 제약기업으로서는 드물게 든든한 자금파이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제약회사에서 화학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때?”
[잘하는 거나 잘하면 되지 문어발 하다가 망합니다.]
컥! 마시던 물을 뿜었다.
이런 부정적인 장기전망은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왜 사들이는 거냐?”
[장기적인 전망은 그렇지만 몇 년간은 좋을 겁니다. 확실하게 따박따박 현금이 들어오는 몇 안 되는 기업이라서 매입하는 겁니다. 유럽에 투자하는 투자금액이 크다 보니 대상을 줄이게 되면 기업의 지분 매입이 어렵습니다.]
“네 말은 되든 안 되든 당장 돈이 되는 기업은 전부 사들여야 한다는 말이로구나.”
[언제 장기적으로 보고 투자를 했습니까. 유럽은 장기적으로는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정부 간섭도 심하고요.]
“정부 간섭이 많은 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잖아.”
유럽이 통합되면서 나아질까 했더니 다양하고 복잡한 규제가 풀리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복잡한 환경규제 때문에 유럽기업들이 이익을 얻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너무 급진적입니다. 유럽은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다가 무너지는 정치가하고 다를 게 없습니다.]
말로는 지구환경을 지키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후발주자들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였다.
환경보호란 명목을 내세워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해외에서 들여오는 경쟁제품을 막기 위한 비관세장벽의 하나였다.
듣기에는 엄청나게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어지간한 건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어렵습니다. 환경 관련 기술이 말처럼 쉽게 하루아침에 발전되는 게 아니니까요.]
“기업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하잖아.”
[그게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저탄소 정책 같은 강력한 환경정책이 진행되면 하나하나가 기업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겁니다. 국가가 할 일을 기업들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환경 분야의 강화는 세계적인 대세라고 하지만 유럽에 진출한 기업 입장에선 치명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EU 가입 국가에 공장을 세워 봐야 부담만 엄청나게 늘어난다.
막대한 세금 두드려 맞고 지켜야 할 규제는 늘어나는 곳에 누가 공장을 세우겠는가.
“앞으로도 계속 세계의 공장은 중국이 되겠네.”
유럽에 와 보니 중국이 발전하는 이유를 알겠다.
자국에 규제도 많고 인건비도 비싸다 보니 공장은 후진국에 세우면 이득이다.
중국에서는 환경문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인건비? 선진국에 비하면 푼돈을 던져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열심히 일한다.
[국가정책이 계속 이런 식이면 기본적으로 기업이 병들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어째서?”
[유럽연합이 계속 팽창하고 있거든요. 5월에 가입 국가가 25개로 늘어나면서 인구수가 3억 8천만에서 4억 6천만으로 늘어납니다.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니까 당연히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질 수밖에요.]
[부자나라하고 합쳐지면 자연히 자기들도 부자가 되는 줄 아는 바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지요. 합쳐지는 나라들의 정부에서 처음에는 좋을 겁니다. 높은 통화인 유로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게 되니까요. 합병 초반에 소득이 늘어나 보이는 착시현상도 있을 거고요.]
“시간이 지나면 국가재정이 버티지 못하겠군.”
[뻔한 거 아닙니까. 나라마다 재정의 수준이 다른데 어떻게 감당을 하겠습니까. 대표적으로 그리스는 몇 년 지나지 않아서 파산할 겁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가뜩이나 독일, 프랑스에 비해 공업력이 뒤떨어진 남부 유럽이었다. 간신히 뿌리를 내린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박살 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 많은 독일과 프랑스로 일하는 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결국에는 나라 재정이 그걸로 연명하게 되는 프로세스가 훤히 보였다.
“얼마나 버틸까?”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오지 않으면 꽤 오래 버틸 겁니다.]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온다고. 어떤 외부를 말하는 거냐?”
[이걸 보시겠습니까. 작년부터 미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CDO 투자입니다. 프라임 시장이 꽉 차자 대체시장으로 만든 서브 프라임 채권을 이용해서 만든 상품입니다.]
이리엘이 보여 준 자료는 미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자산유동화증권(ABS)와 부채담보부증권(CDO) 판매고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야?”
“CDO라면 고위험채권을 모아 놓은 거잖아 쓰레기를 모아서 아주 큰 쓰레기를 만드는 거라고 내가 혹평한 기억이 있는데 이게 이렇게 잘 팔린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위험의 모기지론을 담보로 해서 발행한 것이 CDO다.
이자율은 높지만, 디폴트 확률이 너무 높아서 금방 사장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벌써 미국에서 3,000억 달러가 넘게 팔려 나갔다는 자료를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겁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올해 안에 6,000억 달러를 넘어갈 겁니다.]
골치가 아팠다.
이런 미친 짓이 어떻게 가능한가 싶었다.
“쓰레기들을 모아서 금을 만든다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신용등급이 낮은데 잘 팔린다고? 어떻게 가능하지?”
[우량한 프라임 모기지론에 서브프라임을 섞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신용등급이 높습니다.]
멀쩡한 상품에 다 썩은 쓰레기를 섞어서 팔아먹는다는 소리였다. 포장을 벗겨내기 전까지는 제품에 썩은 게 섞여 있다는 걸 모를 테니까.
금융상품은 포장을 벗기는 데 소모되는 시간이 길었다.
어째서 이리엘이 유럽은행에 투자해도 된다고 하는지를 알았다.
유럽은행들은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새로운 이익이 나는 상품을 찾지 못해 아우성이다.
“초반에는 리스크를 분산시키면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군.”
실적에 눈이 먼 금융쟁이들의 욕망을 과소평가하면 곤란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상품을 팔아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끝까지 갈 놈들이다.
금융쟁이들에게 실적은 곧 성과급이다.
“OK, 무슨 말인지 알겠다. 유럽은행들도 투자대상에 넣자. 미국에 연락해서 다른 투자은행 주식도 대거 사들여야겠지?”
똥 덩어리를 가지고 금으로 보여 주는 마술을 부린다면 이걸 발행하는 투자은행들은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될 것이다.
자산유동화증권을 기반으로 만드는 부채담보부증권, 또 이걸 담보로 발행하는 부채담보부증권.
안 봐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모기지 시장이 건재하는 동안에는 투자은행들의 실적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었다.
그럼 당연히 투자를 해야지.
“골드만, 리만, 메릴린치, 또 어디가 있더라? 곰탱이가 있었지. 투자할 곳이 엄청나게 많구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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