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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벙커 마스터 4권
지은이 : 느린생각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느린생각, 2025
※ ISBN : 979-11-7408-260-2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7월 25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4권
난 홀로 방에 앉아 정보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레벨 업을 위한 수치가 떨어졌다.
지금까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진 적은 없었는데 방금 확인해 보니 확실히 수치가 내려가 있었다.
‘대원들이 죽어서?’
처음으로 벙커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그것도 좀비가 아닌 다른 세력에 의해서 말이다.
편의를 위해 경험치라고 부르기로 한 이 수치가 떨어진 것과 거주민의 사망이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한 나였지만 대원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간부 대부분이 사망 소식을 알리는 것에 찬성한 것도 한몫했다.
쾅!
“어떤 썩을 놈들이!”
“저번에 날 구해 줬던 그분이?”
“당장 복수하자!”
“복수합시다! 복수!”
사람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걸 노리고 밝힌 것이 맞기는 하지만 내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더 과격했다.
어느새 벙커의 구성원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전에 구 팀장이 말했던 것이 이것이었을까?
희망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당연하게 된 지금 거주민들은 대원의 죽음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 가장 분노한 이들을 뽑으라면 단연 전투팀이었다.
함께 훈련받던 동료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 팀장에게 찾아가 곧바로 출격하자고 하는 것을 겨우 말렸다고 했다.
당연히 나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인 듯 사람들이 일하는 장소에 들러 그들의 분노 섞인 말을 들어 주고는 했다.
“대장님! 반드시 그놈들 잡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머리 위로 폭탄을 떨궈 버리죠!”
내가 그들을 보며 대답했다.
“그러려면 준비가 필요한데?”
“준비? 무슨 준비요?”
그들은 벙커의 압도적인 힘으로 지엽건설을 굴복시키고 합병시킨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의문을 표한 것이었다.
“폭탄은 공짜가 아니잖아? 최근에 다리 건설 쪽에 많이 사용해서 당장 남는 폭탄이 없다고 하던데.”
“그럼 어떻게 합니까?”
“마석이 더 있으면 가능하다고는 하던데….”
그러자 사람들은 소리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얘들아, 오늘부터 야근이다!”
“야근이 뭐냐, 철야다!”
순식간에 벙커의 생산력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30퍼센트나 늘어난 생산량에 관리팀에서 깜짝 놀라 사람이 내려올 정도였다.
물론 이런 효과만을 기대하며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벙커를 한 바퀴 돌며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얻은 것이 하나 있었다.
‘확실히 초반에 합류한 사람일수록 격하게 반응하는군.’
최근에 합류한 지엽건설 사람들 경우에는 미적지근한 반응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을 강제로 합병시킨 것이 바로 전투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봉천역과 병원에서 합류한 사람들의 경우 전투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기에 분노가 더욱 컸다.
그중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최 하사.”
“아, 대장님.”
“뭐 하고 있지?”
최 하사가 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만류한 뒤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평소였다면 가장 먼저 불타오르며 적을 치러 가자고 소리쳤을 최 하사였지만 이상하게 차분했다.
“임 중사랑 친했다고 하지 않았나?”
“친했죠.”
일 년 차이 나는 기수라고 했다.
그 차이 때문에 중사로 진급한 임 중사였지만 최 하사는 아직 하사로 남아 있었다.
만약 좀비 사태가 터지지 않고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더라면 최 하사 역시 중사를 달았을 것이었다.
“그냥 생각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무슨 일인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음….”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등을 툭 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 뒤 출정이다.”
“네.”
“갈 거지?”
“물론입니다.”
생각이 많아 마음이 뒤숭숭하기는 했지만, 복수는 포기할 수 없는지 최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벙커를 한 바퀴 돌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방으로 복귀한 뒤 잠시 기다리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위잉.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구 팀장이었다.
내가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살짝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는 구 팀장.
먼저 내가 말을 꺼냈다.
“어떻게 됐어?”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좋아. 이제 기다려 보자고.”
그냥 벙커를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스파이를 잡기 위한 미끼를 조금씩 뿌리고 다녔고, 스파이는 미끼인지도 모른 채 물었다.
“의심이 가는 녀석은?”
“딱히 없었습니다만….”
“만?”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굳은 얼굴로 구 팀장이 대답했다.
“최 하사?”
“네. 요즘 들어 행동이 이상해진 게 좀….”
“흐음….”
확실히 조금 전 만난 최 하사는 그동안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의심하지는 않지?”
“그렇습니다.”
확실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구 팀장.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 하사가 배신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용당했을 가능성은 놓지 않고 있는 상황.
“간단히 생각해 보지. 거주민이 우리를 배신하고 부적 녀석에게 붙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래. 협박 혹은 회유.”
가족을 데리고 있으니, 벙커를 배신하라고 했다거나 우리 쪽으로 오라는 말을 들은 누군가일 가능성이 컸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다는 말은 크게 의미가 없었으니까.
지금같이 따뜻하고 밥 잘 나오고 좀비 걱정 없는 이곳을 배신할 이유는 가족 외에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강 팀장과 최근에 같이 지내던 사람이 누구지?”
“대부분 농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지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제외하고.”
“그러면….”
구 팀장이 말한 인물의 이름을 듣고선 난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네. 맞습니다. 만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
장비 점검을 마친 최 하사는 어두운 얼굴로 복귀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면 복도의 조명은 자동으로 꺼지기에 주변은 어두웠지만 늘 걷던 복도였기에 그의 걸음에는 망설임은 없었다.
전투팀, 그곳도 1팀의 특권으로 개인실을 받은 최 하사.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왔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첫 만남은 아파트의 무법자와 싸울 때였다.
아이들을 돌보던 선생으로 무법자 녀석들에게 억지로 당할 뻔한 것을 최 하사가 구해 준 전적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냥.”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최 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