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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장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결단코 노린 게 아니다.
보기보다 몸이 약하시네.
울그락불그락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서둘러 손을 놓았다.
“크흐흠!”
기침을 크게 하면서 통증을 숨기려 애쓰는 그.
차마 독고무령 앞에서 기싸움을 걸다 당한 것을 티내기 싫은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의 체면을 깎을 의도는 아니었기에 말을 보탰다.
“손이 참 예쁘십니다.”
“…….”
“…….”
“…….”
이게 아닌데.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라기에 좀 당황했다.
이런 자리에서 마주칠지 몰랐거든.
적어도 사흑련 본단을 찾았을 때쯤에나 인사를 나눌 줄 알았다.
설마하니 직접 혈마교의 영역까지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커허험!”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 내려 애쓰는 양주걸.
“그래, 소문이 자자하신 명왕께서는 우리 련주님과 정확히 어.떤.사.이.시오?”
뒷짐을 지며 자연스레 떨리는 손을 뒤로 감춘 그가 물었다.
어떤 사이냐니….
이미 독고무령에게 들어 놓고서 굳이 다시 확인을 하려고 하네.
내게 직접 답을 듣고 싶은 건가?
양주걸은 그녀의 유일한 보호자라 할 수 있는 사람.
일반적인 가족에 비유하자면 아버지 같은 위치다.
당연히 저런 것을 내게 물을 자격이 있다.
그저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 보았기에 놀랐을 뿐.
‘공유찬은 나에 대해 어떤 것도 묻지 않았었지.’
통보하듯 제 아비에게 나를 소개했던 공유선.
그리고 당연하게 그것을 받아들인 공유찬.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고 주위 사람들의 혼례 소식을 접하면서 그제야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거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어떤 멍청한 아비가 별 볼 일 없는 낭인 따위에게 자신의 금지옥엽을 내준단 말인가?
그것도 일대에서 제일가는 부자에다 뛰어난 미모를 가진 딸을 둔 아비가.
어쩌면 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진짜 상견례를 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 그러한 격식을 차린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대답에 진심을 담았다.
“제가 이 사람을 많이 좋아합니다.”
스윽
팔을 끌어 독고무령을 곁에 세우며 답했다.
그러자 저항하지 않고 안겨 오며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그녀.
양주걸은 입을 닫았고 대신 그의 부하가 모두를 대변하듯 놀란 얼굴을 했다.
‘서, 설마 진짜 명왕과 손을 잡은…?’
딱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이다.
게다가 헛것이 아닌지 확인하는 것처럼 눈앞에 손을 휘저어 보기까지 한다.
그녀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저러는 거겠지?
충격이 컸으리라.
이해하고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나는.
“뭘 그렇게 봐?”
“크헙! 컥!”
방심하고 있다 독고무령에게 눈총을 받고 사레가 들린 그.
얼핏 듣기로 이름이 추엽이라고 했던가?
보아하니 꽤 미움을 산 모양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봤냐니까? 말이 안 나와? 평생 안 나오게 만들어 줘?”
방금까지 수줍어하던 여인은 어딜 간 건지 모르겠네.
태연한 양주걸의 태도에 그녀가 사흑련에서도 평소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걸 알았다.
‘하긴,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은 아니지.’
그러니 양주걸도 알 터였다.
그녀가 선언한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무엇보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우리 사이는 하늘도 못 가른다.
“그만 하거라. 자네는 이만 나가고.”
“예, 옙!”
양주걸의 명령에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가는 추엽.
그런 그를 바라보며 독고무령이 혀를 찼다.
“쯧. 그냥 자르고 이참에 더 똘똘한 녀석으로 받으라니까요? 저게 뭐예요, 부방주라는 자가.”
“그러지 말거라. 그래도 내 옆에서 이십 년 넘게 버틴 녀석이다.”
“그러니 아직 살려 뒀죠.”
“험험.”
대화의 흐름을 다시 돌리기 위해 한 헛기침.
잠시 끊어졌던 말을 다시 이어 간다.
“그럼 서로 좋다는 건가?”
말은 독고무령에게 하면서 눈으론 날 향한다.
한 번 더 대답해 보라는 듯.
이번에도 난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오만.”
“사흑련과 명교의 연계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무얼 걱정하고 있다는 거요?”
“제가 사흑련을 잡아먹지 않을까 의심하시는 거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당신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소. 걸음이 늦어 직접 활약상을 보진 못했지만, 홀로 혈마교 일천을 격퇴했다는 소식도 들었고. 그렇다고 해도 우리 사흑련 또한 쉽게 격퇴될 거라 여긴다면 큰 착각이라 말하고 싶군.”
“그리 생각지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니 고마워하진 않겠소.”
과연 독고무령을 사흑련주에까지 올린 인물답게 자부심이 대단했다.
“더 오해하시지 않게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얼 말이오?”
“명교는 동북을 벗어나 영역을 넓힐 생각이 없습니다.”
“중원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어째서?”
“왜 들어와야 합니까?”
“그야….”
“세력을 더 키우고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요?”
끄덕
“세력을 일구면서 밟게 되는 당연한 수순이 아니오?”
양주걸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평생을 사도에 몸담고 살아온 그.
때문에 돈과 무력을 떼고 생각지 않는다.
그 어떤 성인군자라도 돈 앞에선 흔들리는 법이니까.
적어도 자신이 보아온 백 중 칠팔십의 군자는 그러했다.
“당신은 명교를 더 키우지 않을 심산이오?”
“예. 이미 가진 것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하면 지금 벌이고 있는 혈마교와의 마찰은 무엇이오? 서로 끝과 끝이나 다름없는 세력에다 같은 마인일진대. 혈마교를 공격한 의도가 궁금하군.”
과연 뛰어난 사람이다.
독고무령에게 아직 상황을 전해 들은 것도 없을 텐데, 우리가 의도적으로 혈마교를 들쑤셨다는 걸 눈치채고 있다.
세간에는 목주굉의 제자가 내 여인을 추행해서 벌어진 일로 알려졌는데도 말이다.
“의도라… 그게 중요합니까, 양 숙.”
흑화방의 방주가 아닌 연인의 가족으로서 그를 칭했다.
그러자 한결 부드러워지는 그의 표정.
내 처세가 마음에 든 것이다.
“으음. 사실 별로 중요하진 않지. 우리야 이익이 된다면 없는 이유도 만들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니까.”
제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그러나 완전히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넘어간다 치고. 그럼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내가 그를 숙부로 칭했듯, 양주걸 역시 나를 독고무령의 연인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만의 승낙이었다.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