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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장


‘웃기고 있네.’
합비의 번화가 한편에 위치한 작은 주점.
손님들 성화에 힘입은 이야기꾼의 기세가 오르고, 주점은 제갈세가의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래도 그렇지.
합비에서 남궁세가가 불편해할 이야기를 대놓고 떠들다니.
저 이야기꾼이나 선동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아마도 요즘 제갈세가를 견제하느라 치안을 등한시한 결과이겠지.
‘내 이놈들을 당장…!’
분노에 사로잡혀 칼춤을 추려는 그를 누군가 말린다.
“진정해.”
“…….”
“다들 술에 취해 떠드는 것뿐이야. 그런 걸로 검까지 뽑으면 우리 꼴만 우스워져, 오라버니.”
“네 눈에는 저것들의 행실이 보이지 않느냐? 감히 남궁세가의 땅에서 다른 세가에 환호하다니!”
“뭐, 어때. 그러지 말라고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너!”
“소리 지르지 마. 우리가 지금 저런 일이나 신경 쓰자고 나온 거야?”
“…….”
“아니잖아. 그러니까, 오라버니. 남.궁.현.철 오라버니.”
톡톡
“여기에 집중해.”
검지로 탁자를 두드린 여인.
그에 들렸던 고개가 다시 탁자로 향하는 남궁현철.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여러 곡선으로 표현된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상단에 적힌 네 글자.
북령천궁(北靈天宮)이라 새겨진 이름이 남궁현철의 시선을 잡아끈다.
“…확실한 거지?”
“나도 몰라. 그래도 확인해 볼 가치는 있잖아.”
“만약 아니라면?”
“그럼 아닌 거지.”
“단아야, 그리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잖아.”
오라비의 핀잔에 남궁단아가 고운 아미를 찡그린다.
“그럼?”
“아무래도 시기가 공교로워. 제갈세가가 득세한 탓에 본가의 시선이 온통 그리로 쏠려 있어. 지나가는 강아지 한 마리조차 허투루 넘기지 않고 조심하는 이때에, 우연히 네게 이런 보고가 들어온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안 될 건 또 뭔데?”
“란아.”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는 남궁현철.
어려운 시기와 맞물린 호재이기에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야기를 꺼낸 남궁단아 역시 그의 의심을 이해한다.
다만 좀 더 결단력을 보여 주길 바랄 뿐.
그러기 위해 다시금 설득에 나섰다.
“현철 오라버니.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 오라버니 상황이 어때? 대 남궁세가의 장자로 태어나 멀쩡히 후계교육 잘 받다가 뜬금없이 나타난 혼외자로 인해 후계에서 밀렸어. 뭐가 못나서도,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냥 장자가 아니라서 밀렸다고. 이건 납득이 되세요?”
“그건…!”
“안 되지?
마지못해 끄덕여지는 고개.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에 입문하고 십여 년 넘게 가문의 기대를 받아왔던 남궁현철.
후계자로서 극진한 관심과 애정으로 성장한 그였다.
태어날 때부터 창공을 나는 용이었기에 당연히 온갖 혜택을 받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무림에서 명성을 쌓아 나가고 있었다.
세간에선 그처럼 젊은 신진고수를 용에 빗대어 부른다.
때문에 남궁현철의 별호는 창천검룡(蒼天劍龍).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창천이란 말과 가문의 병기인 검, 그리고 젊은 고수를 뜻하는 용이 더해져 만들어진 별호였다.
‘그때만 해도 내 세상이었지.’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처럼 흘러갈 즈음, 그가 나타났다.
별안간 자신을 가주의 아들이라 선언하며 세가를 찾은 사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남궁현기라 소개했다.
그러면서 당당히 내보인 검 한 자루.
사람들은 미친놈이라 생각하며 무시했으나 가장 중요한 가주만은 그러지 못했다.
남궁현기와 마주한 순간부터 검에 고정된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으니까.
검이 가주의 손으로 옮겨지고, 이내 그것을 뽑아 직접 확인하는 과정까지 단 한 순간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부터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늘 한결같던 세가에 폭풍우가 몰아칠 조짐이 일었기에.
결국 자연재해는 하찮은 인간의 바람 따위로 막을 수 없었다.
검은 진짜였고 사내는 가문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들로 인정받았다.
‘그날 이후부터 내게서 모든 걸 빼앗아 갔지.’
가문의 기대주, 장자, 후계의 자리까지.
시간이 흘러 남궁현철의 위치는 그저 흔한 가문의 차남, 널리고 널린 신진의 일인으로 변모했다.
모두가 첫 번째에서 밀려난 후폭풍이었다.
으득
당시를 떠올리며 분한 마음에 이를 가는 그.
여동생인 남궁단아가 속내를 읽고 얼른 말을 더했다.
“상황이 이러니까. 아니,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거야. 만약 이게 가문에 알려졌다고 생각해 봐. 과연 오라버니에게까지 기회가 올까? 아버님 손을 탄 후 어디로 가겠어? 당연히 그자에게 가지 않겠어?”
이름으로도 부르지 않는 사람.
남궁현기를 가리키는 그녀만의 표현이었다.
남궁단아에게도 그는 오라비의 자리를 빼앗고 가문을 뒤흔든 굴러온 돌이었으니까.
지금 그녀는 박혀 있던 돌의 자리를 다시금 되찾아주려 애쓰는 중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 북령대제(北靈大帝)의 비궁이야. 권왕 이전에 홀로 독보강호를 펼쳤던 무인, 바로 그의 유산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라고!”
북령대제의 이름을 언급하며 조금 흥분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남궁현철 또한 서서히 동조되고 있었다.
스스로도 느낀 것이다.
지금 이때가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걸.
어쩌면 다시없을 재기의 기회.
남궁현철로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
“어휴, 답답해!”
뻔히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망설이는 오라비의 모습에 이번에는 그녀가 가슴을 두드린다.
친남매라 그런지 성별이 다름에도 퍽 닮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무언가 결단을 내린 남궁현철이 동생을 부른다.
“단아.”
“결정했어?”
“그래.”
“갈 거지?”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잘 생각했어, 오라버니!”
그제야 남궁단아의 얼굴이 펴진다.
“인원은 어찌할 테냐?”
“소수로 가야지.”
무려 북령대제의 유산이 걸린 일이었다.
문제없이 얻기만 한다면 후계자의 자리가 문제가 아닐 터.
남궁단아는 장자가 아니라서 밀린 거라고 했지만, 사실 실력에서도 밀린 그였다.
어릴 때부터 가문의 온갖 혜택을 받아가며 수련한 남궁현철.
반대로 초기를 제외하곤 어떠한 지원도 없이 홀로 산속에서 수련한 남궁현기.
비교조차 불가능한 성장환경이었음에도 남궁현기는 그를 능가했다.
때문에 그의 출신성분을 따지려던 가문의 어른들조차 그를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무림이란 무릇 무공으로 말을 대변하는 곳.
그리고 남궁세가는 천하제일무가다.
무공 실력이 으뜸으로 취급받는 것은 장연지사.
모두가 그를 인정하고 나서자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외가라도 힘을 보태었다면 모를 일이지만, 어머니 모양화는 성정이 온화하고 정숙한 분이다.
가문의 암투나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아내로서, 어미로서만 내조한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어.”
“동감이야.”
“그럼 어쩌지?”
“어쩌긴. 오라버니랑 나랑 둘이서만 가야지.”
“…….”
“왜? 쫄려서 그래?”
“너는 여자애가 쫄리다가 뭐야. 말 예쁘게 안 해?”
“학사님 나셨네. 그런 소리 하려거든 가서 짐이나 챙겨. 내일 아침 바로 출발할 테니까.”
“알았다. 너도 시선 끌리지 않게 조심하고.”
“오라버니나 어여삐 준비 잘 하시어요.”
지지 않고 받아치는 그녀.
남궁현철이 말투를 지적한 것을 그대로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