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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장


급격히 굳어지는 천무열의 표정.
당연한 반응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소림을 언급했다.
마인과 가장 상극인 그곳을.
당장이라도 호통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빨랐다.
“지금 당장 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가시긴 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유가 있습니다.”
“크흠.”
그럼에도 대놓고 탐탁지 않은 표정을 드러낸다.
전적으로 날 믿어 준 그였기에 상당히 낯선 모습.
물론 내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겠지.
하지만 나 역시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런 내 눈빛을 느낀 것인지, 그가 체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마음을 먹으셨군요.”
“이해해 주시는 건가요?”
“한 번 결정하면 돌아보지 않는 분이시잖습니까?”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다.
좀 더 붙잡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일단 심양부터 들러 세 번째 지부까지 설립하고 동북 세 개 성을 명교의 영역으로 선포할 생각입니다.”
“무림맹에게 말한 것처럼요?”
“예. 마침 무림맹이 혈마교 때문에 정신없을 상황이니 시기도 적절합니다. 설사 불만이 있다 해도 함부로 병력을 움직이거나 하지 못할 거예요.”
저쪽은 저쪽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혈마교의 진의를 모르는 무림맹은 긴장한 채 살필 것이고, 나는 그사이 명교를 짓고 계획대로 동북을 차지한다.
괜찮은 계획이었다.
“모용세가의 뒤를 이어 구양세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들이 약속을 잊었다면 생각보다 시일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만.”
이미 구양세가와 철대양에 대해 전한 말이 있기에 그 부분을 집어 얘기한다.
그들과 인연을 맺고 요녕을 떠난 지 몇 년.
천무열은 사람 마음이 권력을 막 잡았을 때와 그것을 쥐고 오래 만끽한 이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알았다.
과연 그들이 변하지 않고 지난날 약속했던 대로 신의를 지킬까?
의심이 담긴 그의 질문.
그러면서도 실패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만약 배신한다면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 상관없는 거겠지.
그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걱정 마세요. 신의를 저버릴 정도로 무정한 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럴 이유도 없고요.”
천무열은 내가 전한 말들로만 그들을 알겠지만, 나는 다르다.
직접 마주하고 뜻을 주고받았으며 신뢰를 확인했다.
내가 죽거나 인두겁을 벗지 않는 이상 배신하지 않는다.
단순히 정리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성향과 야심을 믿었다.
“하면 언제쯤 출발하실 예정이십니까?”
지금의 분위기를 이용해 움직이려 하기에 늦지 않게 출발해야 한다.
“며칠 내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그 아이들도 데려가시고요?”
남매를 가리키는 말.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 담겨 있다.
왜 그러시지?
“이곳에 두고 가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아이들을 말입니까?”
“예. 교주님 곁에 있다 한들 지금으로선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백무회에 노려질 것이 분명한데, 교주님께 방해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군요. 차라리 이곳에서 제가 보호하는 것이 났지 않겠습니까?”
그런 이유였구나.
요녕 다음은 중원이다.
동북에서 백무회가 벌인 짓만 해도 흑룡강을 뒤흔들 정도였는데, 그들의 주력이 있는 중원이라면 오죽할까?
절대 편히 다닐 수 없을 터였다.
안 그래도 천마의 후예이자 명교의 교주로서 쉽지 않은 중원행이다.
조금의 짐이라도 덜어 주고자 하는 천무열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안 되지.
무흔이 말한 시기가 채 일 년이 남지 않았다.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백무회의 위협은 크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난번 충돌 이후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그날 보인 무위로 내가 전설의 천마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의심하고 있겠지.
의도치 않게 그들의 움직임까지 억제한 상황.
어느 곳도 날 막아서지 못하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였다.
명교가 자리 잡기에.
“그 부분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니.”
“그런 것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명령이시라면 받아들이지요.”
“…명령입니다. 좌호법께선 이곳에 남아 지부 설립 및 동백 이전에 총력을 기울려 주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참 한 번을 그냥 안 넘어가네.
천무열은 아직 나도 부하로 대하기에 부담스럽다.
때문에 방심하면 존장으로 대우하기 일쑤였고, 그는 매번 수하의 자리에서 그것을 자각시켜 주었다.
이제는 고맙다는 말 대신 미소로 감사를 표한 후 앞으로를 떠올렸다.
몇 년 만에 다시 가는 요녕 땅.
‘많이 컸겠네.’
새삼 제자의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의외였다.

* * *

쾅!
“지금 장난하는 거요!”
분개하여 거칠게 석좌의 팔걸이를 내려치는 사내.
덕분에 충격을 받아 팔걸이 한 쪽이 부서졌다.
하나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누구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야 문주께선 진정하시길.”
“지금 진정하란 말이 나옵니까? 그대들이 약속하지 않았소? 독고무령, 그 미친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겠다고. 근데 이게 뭐요? 그년이 어떻게 저리 빨리 상황을 수습하느냔 말이야!”
거침없이 쏟아 내는 말에는, 눈앞의 상대에 대한 질책의 뜻도 담겼다.
그것을 알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대응한다.
“우린들 그녀가 오태산으로 사람을 보낼지 알았겠습니까? 내부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장소인데 이리 쉽게 노출된 것이 의아할 따름입니다.”
“말, 말, 말, 말은! 그리 말만 하면 끝이오? 너무 무책임하단 생각은 안 드냔 말이오, 운송자!”
꿈틀
“아무리 화가 나도 사리분별은 하셔야지요. 절 그리 부르신다는 건, 저와 척을 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만?”
“…!”
얼굴에 삿대질까지 해 가며 던진 비난에도 아무렇지 않아하던 그가, 운송자란 호칭에 정색을 하며 날을 세운다.
그에 야 문주라 불린 사내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린다.
“크, 크흠. 그건 내 실수했소. 사과하리다. 하지만 내 상황이 어떻다는 걸 잘 아시리라 생각하오.”
“알고 있습니다. 회에도 보고가 올라갔으니까요.”
그 말에 야 문주가 화색을 띠며 묻는다.
잔뜩 기대를 품고서.
“그럼 드디어 직접 나서주시는 거요? 흑사왕을 잡기 위해?”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또, 또 그런다!”
“야 문주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그러니 내가 당신들과 손을 잡은 것 아니오? 사흑련을 차지하고 절반의 세를 넘기는 조건으로.”
“그렇다고 앉아서 떠먹여 주는 것만 먹어서도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떠먹여 주다니!”
또다시 발끈하는 야 문주.
그로서도 억울한 부분이었다.
“내 충문까지 동원해 내부에서 사흑련을 흔들고 있소. 때문에 독고무령은 친위대만 이끌고 사흑련을 나간 상태이고. 이 정도까지 판을 벌여 줬으면은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지!”
“하지만 별다른 내부 작업은 안 하고 계시잖습니까?”
“여기서 더 무얼 하란 말이오! 진정 대놓고 내 목이라도 빼고 있으란 말인가! 충문의 배후에 내가 있다는 것을 그 미친년이 알면 옳다구나 하고 달려와 내 목을 뽑고 피를 마셔댈 거요. 당신도 알지 않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임을!”
독고무령을 얘기하며 야 문주가 보인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저런 가슴에 어찌 역심을 품은 건지… 쯧. 그릇이 되지 않아 채택한 자이지만 성에 차지 않는 건 어쩔 수 없군.’
운송자라 불렸던 그는 욕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아 냈다.
눈앞에서 입만 나불대며 투정부리는 사내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대업을 이루려면 그만큼 목숨을 걸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부를 걸지 않으면 무엇도 얻을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