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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1장


“명… 왕.”
떨떠름한 녹색 가면의 목소리.
그게 나를 더욱 기쁘게 한다.
“그래, 나도 반갑다.”
저 가면 넘어 얼굴이야 모르지만 이미 구면인 사이.
어색할 이유가 없다.
광룡의 거처에서 나를 죽이려 했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 폭시들을 사용해 공격했었지.
갑호리를 처리하면서 발견한 폭시들.
어쩌면 놈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처럼 이렇게 눈앞에 마주하게 됐다.
“잘 지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며 다가갔다.
그에 한걸음 물러나는 녹색 가면.
“다시 들어가게? 거긴 시체들 보관하는 곳인데.”
내 말에 멈칫한 그가, 이내 제자리에 서서 나를 노려본다.
“함정이었군요. 호호.”
“그런 거지.”
“그가 입을 연 건가요?”
호족에 있던 첩자들의 수장을 말함이리라.
황면을 소유하고 있던 갑호리.
그의 품에서 발견된 가면을 통해 백무회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인물이란 걸 알았다.
요녕에서 만난 청면도 그러했고, 저 녹면 또한 색을 가진 가면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백무회의 무인들을 부리는 위치다.
“그게 중요한가?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게 중요하지.”
내 말에서 적의를 읽은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어차피 죽일 상대를 만난 것인데 과정이 무에 중요하겠어요? 호호홋!”
이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여전히 거북하다.
“내가….”
저 웃음소리는.
“그렇게 웃지 말라고 했지?”
쌔앵
곧장 놈에게 쏘아져 날아가 기린각을 날렸다.
십여 개의 잔영이 사방을 점하며 녹면이 피할 곳을 없앤다.
쉬쉬쉬쉬쉭
머리며 어깨, 팔, 다리 할 것 없이 전부 노려지는 상황.
하지만 녹면은 동요하지 않았다.
휙 휘휙
자연스레 몸을 비틀며 공격을 피해 내는 그.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싸움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서로 합을 맞춘 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이런 공격은 소용없다는 거지?”
그럼 먹히는 공격을 해야지.
우웅
주먹에 맺히는 구환마천기의 기운.
놈도 그것을 느꼈는지 잘게 몸을 떤다.
“첩권!”
파파파파파팡!
순식간에 여섯 번의 권격을 쏟아 냈다.
그 속도는 기린각보다 느렸지만 위력은 더 강력했다.
스치기만 해도 권에 맺힌 기운에 의해 상처를 입을 터였다.
전처럼 회피할 수만은 없던 녹면이 드디어 무공을 사용한다.
“요요화란(擾擾禍亂)!”
외침과 함께 그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단도.
그것은 녹면의 손을 떠나 마치 생명이라도 가진 듯 이리저리 휘둘러진다.
티딩 팅팅 팅 쾅!
단도를 사용해 연이어 다섯 번의 주먹질을 막아 낸 후 마지막은 양손으로 직접 받아 내는 그.
이번엔 나도 놀랐다.
가장 강력한 마지막 공격이 그의 손에 막힐 줄은 몰랐으니까.
녹면도 그걸 눈치 채곤 듣기 싫은 교성을 터트린다.
“공격이 내게 막힐 건 예상 못 한 모양이군요. 홋홋홋!”
“좀 의외긴 해.”
언행은 잡범인데 무공은 고강하다.
그렇다고 상대 못 할 건 아니었지만.
“사정이 있어 좀 자제할까 싶었는데, 안 되겠다.”
마성이 튀어나오기 전에 빨리 끝내면 되겠지.
그러곤 공간을 찢듯 놈에게 다가갔다.
“헙!”
웃다가 사레라도 들렸나.
코앞에 나타난 내 모습에 숨을 멎는 녹면.
그대로 놈의 어깨를 꽉 잡았다.
콰지끈!
“…!”
핑그르르르 터업!
찌이익
이런, 놓쳤다.
어깨와 함께 몸을 찌부러트릴 생각이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조종한 건지 단도가 날아왔다.
정확히 머리 위 천령개를 노리는 공격.
그대로 두었다간 머리가 꿰뚫린 판이라 손을 뻗어 단도를 잡아냈다.
잠깐 시선이 떨어진 사이 어깨와 함께 한쪽 팔을 뜯어내고 도망친 녹면.
“지독한 놈이네.”
무슨 볏짚으로 만든 인형인가?
어떻게 만들어진 몸이기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떨어진 놈의 신체를 아무렇게나 던진 후 곧장 몸을 날렸다.
이대로 놈을 놓칠 순 없으니까.
“오늘은 절대 도망 못 간다.”

* * *

명왕에게 팔을 내준 후 전력으로 호족을 벗어나는 녹면.
주변까지 꼼꼼히 살피며 확실한 퇴로를 찾아 호족의 영역을 벗어난다.
이윽고 외곽의 마을을 지나 쇄창살단이 대기하고 있을 숲으로 뛰어들었다.
‘역시나 살아 있었군.’
기억만 읽은 것과 실물을 확인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그를 만날 줄이야.
나쁘지 않은 수확이라 생각했다.
츠으으
상처에서 잔여물이 떨어지듯 가루가 휘날린다.
녹면은 잠시 그것을 내려다본 후 멀쩡한 팔로 먼지를 털듯 털어 냈다.
팡팡
“나중에 새로 달아야겠군요. 호호호.”
그리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이동한 그.
곧 숲 안에 있는 공터에 도착했다.
바로 쇄창살단이 대기하기로 했던 장소.
역시나 녹면의 등장을 보고 반응한다.
“오셨습니까? 한데 팔이…?”
“신경 쓰지 마세요. 별거 아니니. 호호.”
“아, 네. 명왕은?”
“지금쯤 저를 쫓아 숲으로 들어섰을 거예요. 하니 예정했던 대로 그를 공략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척
지시를 받고 팔을 치켜든 후용귀.
그의 신호를 확인한 쇄창살단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터 옆으로 산개해 숨은 그들.
후용귀 역시 부하들과 함께했다.
녹면이 그 모습을 확인하곤 공터 중앙에 섰다.
아직 미끼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명왕.
“멀리 안 갔네?”
“알고 있었잖아요? 내가 유인하고 있다는 걸.”
“티 났어?”
“호호홋!”
알고도 당해 준 상대에 대한 비웃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