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모르겠고, 먹고 살기도 바쁩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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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5.
26.
27.
28.
원작은 모르겠고, 먹고 살기도 바쁩니다 6
25.



상점가 데이트 후, 두 사람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배고픔이 덜할 줄 알았는데, 막상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통닭구이를 눈앞에 두자 식욕이 마구 솟구쳤다. 장작불에 오랜 시간 공들여 구운 통닭구이는 기름이 쫙 빠져서 그야말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페넬로페는 눈을 질끈 감고 아휜에게 닭 다리를 양보해 주었다.
“이건 아휜이니까 주는 거예요.”
아휜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닭 가슴살을 양보해 주었다.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야.”
‘세상에, 닭 다리를 양보했더니 터벅 살이 돌아왔어!’
페넬로페는 아휜의 식성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또한 강렬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녀가 닭 가슴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아휜을 곁눈질했다. 아휜은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신중히 닭 다리 살을 해체하고 있었다.
페넬로페가 큼, 헛기침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굳이 마음에 안 드는 부위를 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질긴 닭 다리 살이 마음에 안 들면 바꿔서 먹을까요?”
“그래도 페페 네가 줬는데, 먹을게.”
“아아니! 진짜로 먹을 필요 없어요.”
페넬로페가 눈을 부릅뜨고 아휜에게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이 퍼석퍼석한 살을 진짜로 내가 먹어야 마음이 편하겠어?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했는지, 아침에는 아휜에게 통하지 않던 텔레파시가 기적적으로 통했다.
아휜이 흠, 하고 웃음을 삼키더니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바꿔 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렇죠?”
페넬로페가 환하게 웃으며 아휜에게 자신의 접시를 내밀었다. 아휜이 예쁘게 해체한 닭 다리 살은 그녀의 앞에 놓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식성에 맞는 부위를 먹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지도? 아니, 완벽한 궁합이잖아?’
페넬로페는 앞으로도 치킨을 먹으면서 싸울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끝낸 뒤에는 발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영지가 바뀐 뒤 돌아다니는 일이 처음이었기에 둘 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우연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데이트를 이어 나갔다.
두 사람은 광장을 구경했다가 시장에 들어섰다.
좌판에는 주로 채소와 과일들이 쌓여 있었다. 과일 시장에 온 모양이었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제철 과일이 싼값에 팔리고 있었다.
‘남부 상인들이 여기까지 와서 과일을 팔고 있었구나.’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직 교통이 불편한데도 상인들은 꾸역꾸역 헤일로까지 와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도시에는 자연적으로 상권이 발달하는 이치였다.
페넬로페는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와 자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부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먹고 싶어?”
“네.”
그러자 아휜이 상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복숭아 두 개를 샀다.
그가 은근슬쩍 주변을 돌아보더니 복숭아를 손으로 몇 번 문질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복숭아가 깨끗해졌다. 몇 시간 전 목격했던 마법의 힘이었다.
‘과일을 씻는 데 마법을 이용하는 건 아휜밖에 없을 거야.’
페넬로페는 새삼스럽게 마법의 힘에 감탄하며 복숭아를 깨물어 먹었다. 잘 익은 복숭아 과육은 놀랄 정도로 아삭아삭하고 달콤했다.
슬쩍 곁눈질하자 아휜은 희미하게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아휜은 복숭아가 별로예요?”
“나쁘지는 않은데, 난 말랑말랑한 쪽이 더 입에 맞는 것 같아.”
“그럴 수가…….”
놀랍게도 아휜은 물렁 복숭아를 좋아했다!
딱딱 복숭아 파인 페넬로페는 닭 가슴살 때 받았던 충격보다 더 거센 충격에 휩싸였다.
‘아니, 퍼석퍼석한 식감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복숭아는 왜 말랑한 걸 좋아하는데.’
또다시 아휜의 식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마음을 바꾸었다. 앞으로 물렁물렁한 복숭아가 있으면 아휜에게 주면 그만이었다. 부유한 이는 취향 존중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아휜은 자두를 먹어요, 그럼.”
페넬로페가 상인에게 잘 익은 자두 한 봉지와 복숭아를 추가로 구매했다. 물론, 그녀는 부자답게 통이 컸다.
“복숭아 스무 상자를 영주성으로 보내 주세요. 전표를 영주성 총관에게 보여 주면 그가 값을 치를 거예요.”
“스, 스무 상자나요?”
과일 상점 상인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페넬로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표에 인장을 찍고 서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인에게 내밀며 말했다.
“여기 전표요. 자두는 이리 줘요. 들고 갈게요.”
“네? 네!”
상인이 얼결에 자두를 담은 봉투를 내밀자 페넬로페가 받아 들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휜이 그녀에게서 자두를 넘겨받았다.
상인이 멍하게 페넬로페와 아휜을 번갈아 바라보다 흠칫 숨을 들이켰다. 페넬로페가 물었다.
“왜요?”
“아니, 이제 보니 우리 영주님과 닮은 것 같아서요. 이쪽 신사분도 신문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페넬로페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가 태연한 표정으로 웃자 상인도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헤일로 영주가 이런 어지러운 시장 바닥에 한가하게 돌아다니고 있을 리 없었다.
‘이분이 영주님이면 옆에 있는 남자는 마탑주님이게?’
상인이 피식피식 웃었다. 자신이 얼마나 엉뚱한 착각을 했는지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터졌다.
페넬로페가 복숭아를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아삭아삭 씹었다. 그녀는 선 자리에서 복숭아 하나를 전부 해치우더니 쓰레기통에 복숭아씨를 버렸다. 곁에 선 아휜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과일이 상하지 않게 배달 잘 부탁해요.”
“예, 염려하지 마십시오!”
상인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한꺼번에 일주일 치 매상을 한꺼번에 올린 터라 상인은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페넬로페가 아휜의 팔짱을 끼고는 조용하고 빠르게 속삭였다.
“여기서 더 있다간 들키겠어요. 얼른 가요.”
“…….”
페넬로페가 먼저 걸음을 옮기자 아휜이 뒤처질세라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그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싱글벙글 웃으며 복숭아 상자를 포장하며 상인이 무심코 생각했다.
‘그런데 영주성에 복숭아를 배달시키다니, 영주님은 아니더라도 지체가 높은 사람인 모양이지? ……음?’
상인이 멈칫했다. 그리고 전표를 빤히 쳐다봤다. 이윽고 그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칠게 흔들렸다. 서명란에 ‘페넬로페 에쉬 헤일로’라고 적혀 있었다!
‘헤일로 성을 쓰는 사람은 영주님뿐이잖아!’
상인이 뒤돌아봤을 때 두 사람은 이미 감쪽같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후아, 하마터면 들킬 뻔했네요. 내가 오랜만에 영지에 와서 못 알아봤나 봐요. 지금부터 조심해서 다녀야겠어요.”
“…….”
“아휜?”
“응?”
아휜이 움찔하더니 그녀를 돌아봤다. 페넬로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아까부터 혼자서 멍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페넬로페가 아휜에게 낀 팔짱을 풀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제야 아휜의 긴장한 표정이 풀렸다. 그러나 그는 다시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페넬로페가 까치발을 들고 아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러다가 정체를 들키겠다고요. 들키면 귀찮아지니까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요.”
“그래, 그러자.”
아휜이 속사포처럼 빠르게 대답하고는 페넬로페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아휜이 성큼성큼 걸었다. 페넬로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갑자기 말도 없이 걸음을 옮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거기다 그가 한 발짝씩 움직일 때마다 같은 손과 발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이러나? 왜 갑자기 고장 난 거야.’
아휜이 고장 나는 원리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페넬로페는 아휜을 멈춰 세우지 못하고 그가 향하는 대로 걸었다.
어느 순간 아휜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드문 곳이라 페넬로페는 안심했다.
“어, 거긴 왜?”
페넬로페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휜이 골목 안쪽에 있는 건물의 후문으로 걸어간 직후였다.
‘혹시 아는 곳인가?’
페넬로페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스쳤다.
그 순간 아휜이 벌컥 후문을 열었다. 눈앞으로 낯선 공간이 나타났다. 아휜은 익숙한 곳이라는 듯 문 안으로 들어섰다. 페넬로페는 얼결에 그를 따라 들어갔다.
철컥.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응?”
페넬로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온 곳이 상점이나 관공서쯤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바닥과 벽은 단단한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벽에는 책장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실수로 누군가의 서재로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진 양해를 구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순전히 착각이었다.
서재는 아주 오래전에 설계되어 만들어진 장소 같았다. 벽과 바닥을 이룬 짙은 색깔의 벽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상하지? 이쪽 골목에 세워진 건물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일 텐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별안간 페넬로페가 입을 떡 벌렸다.
창밖에 광활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불그스름하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이!
“방금까지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었잖아요! 왜 해가 지고 있어!”
“아, 여기 마탑이거든.”
“…….”
페넬로페가 경악에 빠졌다. 아휜이 이어 말했다.
“경도가 달라서 해가 먼저 지는 거야. 참고로 위도와 고도도 달라.”
그게 지금 올바른 설명이라고 생각하니? 응?
페넬로페는 머쓱하게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아휜의 멱살을 쥐고 싶었다.
마침내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대듯 따져 물었다.
“문을 열기 전에! 어디로 갈 건지! 미리 설명해야 했다는 생각은 안 들던가요?”
“그게, 미안,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휜이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페넬로페는 기가 막혔다. 귀여우면 다인 줄 아나!
“나야말로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거든요? 내가 마탑에 올 줄은……. 마탑! 여기가 마탑이에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