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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0.001% 랭커의 귀환 2권
유우리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1
1장
강서준은 파죽지세로 던전을 공략했다.
통과.
통과.
통과.
[!]
[놀라운 업적을 발견했습니다.]
[칭호, ‘고속의 던전 돌파자’를 습득했습니다.]
[던전에서의 경험치 습득량이 2% 증가합니다.]
모두 역무원을 삥 뜯은 덕이었다.
놈이 가진 마스터키는 F구역을 모두 열 수 있는 특수 아이템이었고, 그로 인해 관련된 퀘스트는 모두 무효로 인정된 것이다.
오대수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퀘스트를 전부 무시하고 한 번에 여기까지…… 테마 던전은 퀘스트를 깨질 않으면 공략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아닐 뿐이죠.”
“네?”
“던전 공략은 결국 플레이어의 재량입니다. 퀘스트를 그대로 따라서 정석적인 플레이를 하거나, 아니면 퀘스트 이외의 조건을 달성해서 변칙적인 플레이를 하거나.”
“이게 그 변칙적인 플레이라는 겁니까?”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좋게 보면 ‘이스터 에그’고, 나쁘게 보면 ‘치트’겠죠. 뭐, 이것도 나름 던전 공략의 한 방법입니다.”
막말로 눈앞에 스킵 버튼이 있는데 지루한 스토리를 굳이 감상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처럼 한시가 급한 때에는 더더욱 시간 단축을 해 주는 공략은 절실한 법.
최하나가 사족을 덧붙였다.
“앞으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거예요. 존재 자체가 ‘합법 치트’인 사람이 함께잖아요. 안 그래요?”
최하나의 말마따나 강서준은 변칙적인 플레이의 고수였다. 누구나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그는 항상 비포장도로로 달려 지름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결국 지름길이 되었고, 아무도 쉽게 생각하지 못한 반전을 그려 냈다.
최하나가 강서준을 괴물 보듯 봐도 할 말은 없었다.
‘그러는 본인은 더한 짓도 했었으면서…….’
플레이어의 정점에 있는 천외천 중에 정상적인 플레이를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원래 남들의 위에 올라서려면 남들이 하질 않는 걸 해야 하는 법이다.
클라크는 그런 의미에선 강서준조차 쉽게 해내질 못하는 독한 플레이를 해낸 전적이 있었다.
푸쉬이익.
[F-5. ‘안전 구역─객실 나무쉼터’에 진입했습니다.]
F-4구역을 넘어, F-5구역으로 들어서니 일단 공기부터 달라졌다.
먼지가 가득했던 화물칸, 곳곳에 밴 피비린내가 잔상처럼 남은 게 지난 네 개의 구역이었다면 이곳은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나무 향이 가득이었다.
보아하니 이곳은 화물칸도 아니었다.
“여긴…….”
던전 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안전 구역.
적어도 몬스터의 침입은 불허하는 이곳은 던전을 공략하느라 지친 플레이어에게 점검과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특히 본래의 퀘스트를 깨고 여기까지 오느라 밤낮없는 반복된 사냥으로 꽤 지쳤을 ‘테마 던전의 플레이어’에겐 더더욱 필요한 곳이었다.
‘우린 해당 사항이 없지만.’
어쨌든 그곳엔 선객이 있었다.
“으응?”
“응?”
문을 열고 나타난 강서준 일행은 도시락을 까먹던 일련의 무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의 머리맡에 떠 있는 이름표가 너무나도 잘 보였다.
<???>
붉은색.
몬스터, 혹은 레드 플레이어라는 징표.
안전 구역에는 몬스터가 들어올 수 없는 게 시스템으로 정해진 설정값이니, 저자들이 몬스터일 리는 없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상대의 복장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이놈들이 악덕 상인이로군.’
다른 건 몰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보따리 짐과 그 줄줄이 소시지처럼 묶여 있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미 영혼은 제압당한 건가.’
목에 쇠사슬이 걸린 이들의 눈동자엔 흰자만이 가득했다. 침을 흘리면서 간간이 울음을 토해 내는 게 마치 짐승 같지 않은가.
악덕 상인 중 평범한 일상복에 가죽 코트를 걸친 자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승차권은 가지고 계십니까?”
강서준은 바로 알아들었다.
‘암구호로군.’
역무원 일깨비를 삥 뜯어 얻어 낸 보상인 도깨비 보따리 속에는 의외의 물건이 있었다.
바로 이 던전을 이용하는 상인들의 비밀문서.
철두철미한 악덕 상인들은 그들만의 암구호를 만들어 주고받고 있던 것이다.
강서준은 그 내용을 상기하며 대답했다.
“전 오늘같이 더운 날을 안 좋아합니다.”
주고받는 대화는 완전히 이어지질 않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상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을 풀었다.
빌어먹을. 이러니 이놈들이 꼬리가 쉽게 밟히지 않는 것이다.
‘암구호의 내용은 매일 바뀌니까.’
단순히 하나의 암구호만 알고 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질문은 같아도 매일 답변이 달라지는 것이 이들의 암구호였다.
만약 도깨비 보따리를 얻질 못했다면 속수무책으로 정체가 발각되고 말았으리라.
“이쪽으로 오시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니 상인들의 면모가 훤히 보였다. 나이는 얼추 30대에서 40대로 보이는 아저씨들.
그들은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지난 회포를 풀고 있었다.
‘우리도 앉죠.’
강서준은 그런 의미를 담아 일행들을 둘러봤고, 일행은 용케 그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눈치껏 의자에 걸터앉았다.
강서준도 조심스레 의자에 앉으면서 인벤토리에서 먹을거리를 꺼냈다. 자연스럽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상인들의 무리에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배고프기도 했고.’
안 그래도 식사를 제대로 할 시간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이곳은 선택의 미로처럼 허기를 채우질 않아도 괜찮은 공간은 아니니, 매끼를 골고루 챙겨 줘야 전투력도 유지된다.
“음음…….”
한참 배를 불리는 사이 한쪽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확인해 보니, 오대수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강서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한쪽에 묶인 사람들을 보고, 악덕 상인들을 보고, 마지막으로 강서준을 바라봤다.
이렇게 음식이나 먹으며 노닥거려도 되냐는 눈빛. 이에 강서준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생각해 보면 무작정 영혼을 쫓는다고 능사가 아니야.’
아이들이 위험한 건 영혼인 채로 어딘가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떨어진 영혼은 자아가 파괴되기 마련.
해서 아이들을 가능한 한 빨리 되찾으려고 여기까지 빠르게 왔다.
‘하지만 어떻게 되돌리겠어.’
영혼을 되돌리는 방법, 혹은 조건을 알지 못했다. 강서준의 류안은 그저 흐름을 읽을 뿐이기에 그 정도나 세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던전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건데…….’
때마침 악덕 상인을 만나게 됐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이 가진 정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이면 계약서에 대한 정보만 알아낸다면 상황은 종료야.’
즉 아이들의 생사는 악덕 상인들을 어떻게 구워삶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그때 종전에 말을 걸었던 상인이 입을 열었다.
“나는 보따리상인 송 씨라고 해요.”
“아, 저는 강 씨입니다.”
연달아 자신을 소개하는 악덕 상인들은 성만을 붙인 채로 지내는 듯했다. 아무래도 그들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려는 최소한의 전략으로 보였다.
‘워낙 계약서로 장난을 치는 족속들이니까.’
자칫 잘못 책잡히면 끝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미리 경계를 하는 것이다.
그때 악덕 상인 중 스스로를 ‘이 씨’라고 소개한 사람은 대뜸 최하나를 향해 다가가 물었다.
“혹시나 했어요. 당신 연예인 최하나 맞죠?”
“……네?”
“팬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믿기지 않아요!”
최하나는 미세하게 일그러진 입꼬리로 웃었다.
“아, 네…….”
“이럴 때가 아니지. 싸인, 싸인 좀 해 주세요.”
“……물론이죠.”
이 씨는 대뜸 보따리를 내밀었다. 뭔가에 더럽혀진 보따리였다.
“너무 더럽죠? 죄송해요. 벌레를 잡다 보니 그만…….”
“아닙니다.”
하지만 사인을 이어 나가는 최하나의 얼굴은 점차 굳어 갔다. 보따리에 묻은 건 오물이나 벌레의 사체가 아니었다.
젖은 건 피요, 묻은 건 누군가의 살점.
‘……빌어먹을 놈들.’
한편 강서준은 객실을 둘러보다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 있었다. 송 씨가 자꾸만 시계를 보면서 다리를 까딱거리는 것이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신경 쓰진 않았으리라.
‘뭐야?’
[스킬, ‘류안(A)’를 발동합니다.]
그냥 팔짱을 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숨겨진 손에서 뭔가가 미세하게 자꾸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다음 구역인 F-6으로 향했다.
해서 바로 알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강서준은 가볍게 혀를 차면서 물었다.
“언제부터 알아차린 거야?”
“네?”
“빌어먹을. 처음부터 들킨 건 줄 알았다면 굳이 연기할 필요도 없었잖아.”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F-6구역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작은 다리의 소년 도깨비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바로 기립하며 당황하는 상인들.
아무래도 낌새를 알아차린 건 송 씨 하나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