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용사는 하녀로 살기로 했다 1권
풋내기 용사는 하녀로 살기로 했다 1권
풋내기 용사는 하녀로 살기로 했다 1권
1화



“세난.”
“제인? 여긴 또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황궁에서 하녀가 갈 수 있는 장소가 뭐 얼마나 된다고.”

하녀장의 눈을 피해 몰래 땡땡이치던 날 찾은 이 다람쥐를 닮은 소녀의 이름은 바로 제인이었다.

“설마 나 벌써 들킨 거야?”
“들키지는 않았어. 그런데 맡길 일이 있으신 모양이야.”
“하아, 또 쓸데없이 황태자 궁의 복도나 청소하라는 명령이시겠지.”

내가 이렇게 질색하는 이유는 이 명령이 하녀장의 독단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위에서 그 누구도 내리지 않은 명령이잖아. 자기 욕심이나 채우려는 표독스러운 장단에 왜 우리가 고생해야 하냔 말이야.”
“어쩌겠어. 우리야 하녀장님이 시키시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쳇!”

혀를 차며 짜증을 내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이었다.

“내가 대신할까?”
“됐네요. 하녀장이 날 찾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응, 그렇게 완벽하고 빠르게 청소할 수 있는 사람은 세난밖에 없으니까.”

사실 지금 불만을 토로하는 것과는 별개로 난 지금 생활에 제법 만족하는 중이다.

황궁의 하녀로서 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식은 호박 수프를 먹는 것만큼 쉬운 것들뿐이었다.

당연하게 받는 급료도 날로 먹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러다 보니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고, 지금처럼 하녀장이 긴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날 부르곤 했다.

“내 실수야. 보너스에 눈이 돌아가지만 않았어도.”
“헤헤, 난 그런 세난이 자랑스러운걸.”

또 나왔다.

저 순수하게 사람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무해한 미소.

나는 이번에도 참지 못하고 제인의 양쪽 뺨을 쭈욱 잡아당겼다.

젤리처럼 탱탱한 볼의 촉감은 내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달콤한 일탈과도 같았으니.

“으으, 또 내 볼을 잡아당기면서 화풀이하는 거야?”
“그러게, 누가 이렇게 귀여우래.”

제인은 참한 소녀였다.

내가 남자였다면 못 참고 사랑을 고백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하면서도 야무진 구석이 있는 귀여운 여자였다.

“그럼 이만 가봐야겠어. 늦었다가는 또 지난번처럼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해야 할 테니까.”
“혹시라도 힘들면 바로 말해.”
“힘들 게 뭐가 있어. 내가 황궁에 있는 그 어떤 하녀보다도 일을 잘한다는 거 잘 알잖아.”

또다.

내가 왜 황태자 궁에 가는 것을 꺼리는지 사정을 알기에 나오는 씁쓸한 얼굴.

나는 그 모습이 보기 힘들어 일부러 이두에 힘을 주며 우악스럽게 알통을 자랑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애썼다.

“또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게?”
“내가 뭘. 그냥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

순수한 소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만큼 보기 힘든 것이 없었다.

“진짜 힘들면 다 털어놓지.”
“정말이다?”
“그럼.”

말은 그렇게 해도 제인은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럴 때면 지금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녀를 달래야 했다.

그렇게 그녀를 진정시키고 나서야 나는 발걸음을 옮겨, 하녀장이 기다리고 있을 황태자 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왜 이리 늦어.”
“전달받자마자 바로 왔습니다만.”
“하여간 너는 하루라도 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니?”
“그래서 오늘은 또 이 복도를 닦으면 되나요? 이 정도 했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하녀장께서는 끈기가 엄청나시네요.”

고작 황태자가 자주 지나다니는 복도를 깨끗이 청소하는 것.

황태자의 눈에 들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겠으나 현실은 일말의 관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차라리 좀 더 눈에 띄는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뭐, 살도 좀 빼시고 화장도 좀 해서 황태자 전하의 눈에 든다든가 같은 소설 같은 이야기 말이에요. 그러는 편이 오히려 더 현실성 있어 보이는데요.”

내가 이렇게 적의를 대놓고 드러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나밖에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방진 것.”
“칭찬 감사합니다.”

치마 끝자락을 잡으며 살포시 무릎을 굽히는 레이디들의 인사.

이러한 엉성한 자세로 하녀장의 구겨진 얼굴을 볼 수 있다니.

역시 귀족의 예법은 다른 걸까.

“그래, 네 말대로 이런 식으로는 끝이 없겠어.”
“그렇죠?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니.”

평소라면 이 신경전의 끝은 하녀장이 썩은 표정으로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그런 기색을 잠깐 보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징그럽게 왜 이러세요.”
“우리 사이에 뭘 부끄러워하고 그러니.”
“부끄러운 게 아니라 소름이 끼치는데요.”

어깨를 움츠리면서 면전에 대고 대놓고 막말하는데도 하녀장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정도로 오한이 들 정도로 소름이 끼친 적은 눈앞의 하녀장을 상대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고생 좀 해줘야겠구나.”
“항상 하던 건 고생이 아니었나요?”
“그것보다 좀 더 고생을 해줬으면 해서 하는 말이란다. 물론 더 챙겨 줄게.”

더 챙겨 준다는 것은 결국 돈이었다.

항상 보너스를 더 준다고 하면 묵묵히 그 어떤 부탁도 들어와 줬으니 이번에도 통하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거절한다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하녀장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