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제일인, 무림에 가다.
저승제일인, 무림에 가다.
[3권]
第三章(2)
第四章(1)
저승제일인, 무림에 가다.
第三章(2)
웃음이 만개한 대여섯의 남녀 무리. 당예랑은 그들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모두 당대의 용봉들입니다.”
당예랑의 말에 차륜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무공의 재능과 외모가 비례하기라도 하는 듯, 헌앙한 미남미녀들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차륜은 천월루에서와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호를 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런 차륜의 내심을 짐작한 듯, 당예랑이 은근슬쩍 용봉들을 피해 움직이려 했으나, 그들 중 먼저 당가 남매를 알아본 이가 반색을 하며 빠르게 다가왔다.
“당 소협과 당 소저 아니시오! 나를 기억하시오?”
다가온 이는 성격이 좋아 보이는 쾌남이었다.
당가 남매의 얼굴에도 반가운 기색이 들어섰다. 친분이 있는 이였기 때문이다.
“팽 형! 오랜만입니다.”
“팽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더구나 남궁호와 마찰을 빚었을 뿐, 원래 용봉을 동경하는 당예랑과 당예은이었으니 그 인사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다행이구나! 나 혼자 기억하고 있었다면 어색할 뻔했으니 말이야.”
당가 남매가 자신을 알아보자 남자는 순식간에 말투를 편하게 했는데, 그 모습이 자연스럽고 정겨웠다.
“이리 다시 보니 정말 반갑구나!”
‘촤하하핫’ 하고 호쾌하게 웃은 남자는 당가 남매와 차례로 악수를 했다.
강호 무림에서 포권이 아닌 악수를 권하고 응한다는 것은 그 친분이 매우 두텁다는 증명과도 같았다.
“삼 년만인가? 은매의 미모는 시간이 갈수록 활짝 피는구나. 이제 사천제일미가 아니라 천하제일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어.”
“과찬이세요, 오라버니.”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기분 좋게 만드는 기운이 남자에게 있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당예은도 남자의 칭찬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음습한 사심이 전혀 없어 보이는 순수한 칭찬이기에 가능했다.
사천에는 독의 조종인 당가가 있고, 안휘에는 검의 하늘이라 불리는 남궁이 있다면, 하북에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용력패도의 주인, 오대세가의 일좌인 하북 팽가가 있었다.
남자는 바로 그 하북 팽가의 후계자 팽무진이었다.
오호단문도로 대표되는 그들의 패도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호방하고 유쾌한 팽가인들의 기질이다.
팽가는 진솔함을 무기로 하여 여러 무인들과 두루 원만하게 지내는 것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형님께서 작년에 도룡(刀龍)의 별호를 얻으셨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하핫! 우리 당 아우가 말을 참 예쁘게 하는구나!”
도룡.
팔룡의 일인이자, 후기지수들 중 도를 으뜸으로 다룬다고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팽무진은 팽가의 가전 무공이자 절학이라 불리는 오호단문도를 연마한 절정의 도객이었다.
견문을 쌓는 것을 좋아하는 팽무진의 기질과 팽가 특유의 호방한 성향 덕분에 하북과 사천이라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연이 있는 사이였다.
“용봉 회합을 구경 왔는가?”
“용봉 인증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어잉?”
예상치 못한 답변인 듯 팽무진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동자에 기쁨이 차올랐다.
“하하하! 당 아우가 벌써 용에 들 준비가 끝났는가?”
“예, 형님. 성취가 있었습니다.”
“난 내가 진짜 천재인 줄 알았더니, 진짜 천재는 여기 따로 있었구만.”
팽무진이 제 일인 마냥 기뻐했다. 질시가 깃들었던 남궁호와는 다르게 순수한 경탄이 보였다.
“경사로구만! 경사! 오대세가라는 거창한 이름과 다르게 용의 별호를 받은 이가 남궁 형이랑 나, 둘밖에 없어서 쓸쓸했는데 말이지.”
그리 기뻐하던 팽무진이 차륜과 눈이 마주쳤다.
“이분은?”
분명 천월루와 같은 흐름인데,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귀천방의 차륜이라 합니다.”
때문에 차륜도 호의를 가지고 편하게 답했다.
“차륜 소협이셨군요. 소협도 용봉 인증을 위해 오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하핫, 앞으로 자주 보겠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팽무진은 그리 말하며 손을 내밀려고 하다 공손하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아직 그 정도 가까운 사이는 아니니 자중하는 것이리라.
남궁호에게 겪은 바가 있다 보니 팽무진의 격 없는 행동이 차륜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진짜 명가의 후계자네요. 정답지 같은 사람인데?
삼순의 말에 동의한 차륜이다.
남궁호와 비슷한 배경을 지닌 팽무진은 남궁호와 정 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결국 명가니 배경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뜻이다.
-저 문제집은 여전히 풀릴 생각을 하지 않고요.
삼순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창룡 남궁호는 본체만체하며 끝까지 다가오지 않았다.
* * *
용봉 인증 당일.
연화봉의 험난한 산세를 뚫고 수많은 사람들이 화산파에 모여들었다. 새로운 용봉의 탄생을 목도하고자 화산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선망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연무장을 응시했다.
관중들의 열기는 팔룡칠봉이 차례로 연무장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기름을 끼얹은 듯 불타올랐다.
“오오! 저기 도룡 팽무진 아니오? 역시 헌앙한 것이 강호 제일의 후기지수답소!”
“에이, 강호 제일의 후기지수는 검룡 아니겠소! 병장기의 이름을 제 별호로 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않소? 그 어렵다는 검룡의 별호를 따낸 화산의 천재 검수가 제일이 아니면 누가 제일이겠소!”
“그리 따지면 도룡도 마찬가지 아니오! 도(刀)는 병장기가 아니오? 도를 무시하는 것이오? 이 검쟁이가?”
“도를 사용하는 후기지수가 검을 사용하는 이보다는 적지 않소? 나는 사실을 말을 했을 뿐이외다!”
저들끼리 언쟁에 붙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 각각의 허리춤에 검과 도가 패용되어 있는 것을 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그래도 역시 소림 아니겠소? 어린 나이에 벌써 권각술의 달인이라 불리는 각룡(脚龍) 범허가 내가 생각하는 제일의 후기지수요.”
“각(脚)룡이었소? 각(覺)룡이 아니고?”
“뭐든 어떻소? 그가 제일의 후기지수란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작년 제일룡이 각룡 범허였으니, 본인도 이견이 없소이다.”
물론 이견이 있는 자들도 있다.
“흥! 올해는 다를 것이오! 도룡 팽무진이 일석을 차지할 것이니, 지켜보시오!”
“이 양반이! 검룡이라니까 그러네!”
각룡, 소림의 범허.
도룡, 팽가의 무진.
검룡, 화산의 운종.
여덟 용과 일곱 봉을 통틀어 가장 출중하다 알려진 이들이 이 셋이었다.
절정지경부터는 그 안에서도 수준이 천차만별로 나뉜다 하였으니, 위 셋은 절정 초입에서 한 단계 올라선 이들이란 것이 세간의 평이었다.
군중들의 말대로 작년 일석은 각룡의 차지였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후기지수들이다 보니 올해는 용봉 일석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흥, 사파의 저력을 무시하지 마시오! 사도천 제일의 후기지수라는 수라보(修羅堡)의 패룡(覇龍)도 있소!”
“녹림 총표파자(總瓢把子)의 아들 철룡(鐵龍)도 그에 뒤지지 않소!”
강호에서의 세력도 열세고 용봉 회합에서의 성적도 열세지만, 지금만큼은 질 수 없다는 듯 사파의 무인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제일룡 경쟁이 치열한 군중들의 토론과 달리 제일봉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용봉 비무는 공식 행사가 아니다. 자웅을 겨루고자 하는 후기지수들의 호승심을 배려해 용봉 회합을 주관하는 구파에서 별도로 열어 주는 행사일 뿐이다.
따라서 참여를 원하는 후기지수들만 참여하는 행사였다.
제일룡을 뽑는 비무가 격렬한 경합인 것과 달리 제일봉을 가리기 위한 비무는 참여자가 없어 무산되기 일쑤였다.
무공을 절정지경까지 익혔다 하나 여인의 몸이다. 여인의 몸으로 뭇 강호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꺼리는 중원의 문화가 반영된 현상이었다.
저벅.
시장통 같던 분위기가 일순간 고요해졌다. 걸어 나오는 이의 온화한 기파가 사위를 덮은 까닭이다.
장로 여럿을 대동하고 나타난 이가 바로 현 화산의 장문인, 현수진인이었다.
젊은 시절 화경에 도달하여 강호 백대 고수의 수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가 바로 현수진인이었으니, 보기 드문 고수의 출현에 장내의 인원의 모든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용봉 인증을 시작하도록 하겠소!”
그리 힘을 들이지 않은 목소리가 웅장한 내공을 디딤돌 삼아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현수진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텅 비어 있던 연무장의 하늘 위로 하나의 인영이 날아들었다.
인영은 날개가 달린 것마냥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끝을 모르고 날아오른 신형의 그림자가 해를 삼켰을 때.
팡!
인영이 허공을 강력하게 박차더니 지면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졌다.
사뿐.
지면을 향해 재차 도약한 인영은 그 속도가 무색하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면에 내려섰다.
그가 수련한 경신공이 경지가 범상치 않음을 보여 주는 한 수였다.
“곤륜에서 온 태허(太虛)라 합니다.”
좌중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이는 그의 소개는 표홀한 신법과는 달리 나른해 보이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오오오!”
“시작부터 엄청나구만.”
“방금 그거, 곤륜의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아니오?”
무공을 한 자락이라도 익힌 이는 허공을 박찬 태허의 한 수가 얼마나 고절한 기예인지 잘 알고 있었다.
태허가 펼친 것은 무학 자체에 천상제의 묘리를 녹여 냈다는 희대의 절학, 곤륜의 운룡대팔식이 분명했다.
운룡대팔(八)식이라는 이름처럼 허공을 여덟 번 박차진 못했으나, 한 번이라도 허공을 박찼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가 절정지경에 들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객들의 호응이 만족스러운지, 태허의 나른한 표정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깃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용봉 인증이니, 본 편을 보여야겠지요?”
태허가 그리 말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곤륜의 무인들이 범용적으로 사용한다는 태청검이 푸른 자태를 드러냈다. 태허의 손놀림을 따라 검이 하늘거리며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초식 같기도 하고 검무(劍舞) 같기도 한 그 움직임을 보며 현수진인이 감탄했다.
“신공 절학을 두 가지나 익혔는데도 그 성취가 얕지 않구나.”
화산의 장문인, 현수진인은 지금 태허가 선보이는 검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운룡대팔식과 더불어 곤륜의 신공 절학이라 할 수 있는 태허도룡검.
곤륜의 기초 무학인 소청검과 대청검을 대성해야만 입문할 수 있다 알려진 곤륜의 비전 검학이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무당의 유(柔)검과도 닮았으나, 그 본질은 사뭇 달랐다.
공(空)과 허(虛).
비워냄의 무학은 그 공허 속에서 새로운 것을 잉태하니,
우우웅.
어느새 하늘거리던 태허의 태청검에는 새파란 검기가 아롱져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검기 시연이 끝난 태허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우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태허의 신법과 검법은 인상적이었다.
“그대의 별호가 무엇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