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 24시 편의점입니다
던전 안 24시 편의점입니다
던전 안 24시 편의점입니다 [5권]

지은이 치즈크림빵
발행일 2024년 5월 22일

펴낸곳 (주) 테라핀
홈페이지 http://www.copinnovel.com
전자우편 easycontents@terapinstudios.co.kr
등록번호 제 25100-2019-000007호

ⓒ 치즈크림빵, 2024
이 출판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할 수 없습니다.

정가 3,600원
ISBN 979-11-7219-425-3 [05810]
던전 안 24시 편의점입니다
14
F급 헌터 혜진, 비밀이 밝혀지다
혜진은 지금 이 상황이 꽤나 당황스러웠다. 베일리가 주로 스태프 룸에 있기는 해도 하루 종일 있지는 않았다. 아샤가 사라지면 편의점 바깥으로 나가 낑낑거리며 아샤를 찾기도 했고, 텃밭에서 뒹굴거리기도 했으며, 아샤를 놀래 주려고 던전 바깥에 있는 수풀 속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기다리기도 했다.
아샤는 자신이 없어지면 베일리가 찾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숨어 있는 베일리의 곁에 다가가 놀라는 척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당장 이야기가 급했던 만큼, 아샤가 베일리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다. 그만큼 아샤의 몸이 여러모로 약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보세요, 점장님.”
한참을 기다려도 혜진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은우는 어느새 웃음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설마, 베일리가 한 말이 사실이에요? 아니죠? 점장님이 SS급 헌터가 되면 여길 떠난다고? 에이, 말도 안 돼. 점장님은 이미 SS급…….”
말문이 막힌 듯 은우가 입만 뻐끔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제야, 혜진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등급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은연중에 당연히 그녀가 SS급이라고, 이유가 있어 정확히는 알리지 못할 거라고 여겼었는데. 만약, SS급이 아니었다면?
아니, 누가 그러리라고 의심이나 할 수 있었을까? 던전 안 유일한 편의점을 운영하는 게 SS급이 아니라면 가능할 리가 없을 거라고 굳게 믿어 왔는데.
머뭇거리던 혜진은 긴 한숨을 내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베일리의 말은 전부 사실이에요.”
“구태여 설명할 필요 없어. 궁금한 게 있으면 내가 답하면 돼. 이 편의점을 만든 것도 너와 아르바이트생들을 영입한 것도 전부 나니까.”
아샤가 혜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혜진이 지금껏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아샤 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혜진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애를 썼고 그건 잘못이 아니었다. 다만, 아르바이트생들은 혜진이 다른 목적 없이 진심으로 편의점을 애정하고 다른 헌터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기에 쉽사리 자신의 목적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제가 궁금한 건 점장님의 등급이 아닙니다. 그건 처음부터 아무런 상관이 없었어요. 제가 궁금한 건 그저…… 지금껏 저희에게 보여 주셨던 그 모든 모습이 전부 거짓이었던 걸까요? 사실은 이 편의점을 애정하지도, 아끼지도 않으면서 오직 등급을 올리기 위한 퀘스트로 이용하셨을 뿐이었습니까?”
서준은 베일리가 아샤와 혜진의 대화를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듯했다. 서준의 차분하고도 단호한 물음에 혜진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서준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으나 혜진은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용기도 없어 보였다.
상황은 물론 혼란스러웠지만 혜진이 편의점을 위해 진심으로 일했고 자신들에게 보여 준 모습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만 말해 준다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베일리의 말을 들어 보면 혜진은 처음부터 SS급 헌터로 만들어 준다는 조건이 없었다면 편의점 점장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 서준은 차라리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샤의 만류에도 혜진은 천천히 고개를 젓고 서준과 은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아샤가 만류했다고 해도 사실을 말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혜진을 믿어 준 아르바이트생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으니까.
“편의점 일은 베일리의 말대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그러면 왜 하기 싫은 일을 굳이 맡으신 건데요?”
은우의 질문에 혜진이 고개를 떨군 채 힘겹게 대답했다.
“저는, F급 헌터거든요. 여러분과는 전혀 다른. 그래서 그랬어요. F급 헌터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평범한 사람처럼 회사를 다니기엔 세상이 너무 바뀌어 버렸고 헌터로 살아가기엔 등급이 너무 낮았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방황하던 제게 아샤가 편의점 점장 일을 하면 SS급이 되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어요. 제게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어요, 그게.”
혜진의 진심을 담은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들어 주기엔 서준도 은우도 혼란스러웠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아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였다. 혜진의 간절한 진심이 와닿지 않은 건.
“……왜 단 한 번도 저희에게 점장님이 F급 헌터라는 것을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지 않은 건가요? 점장님과 아샤가 했던 약속을 처음부터 말씀해 주셨어도 저는 여기서 재밌게 일했을 거예요. 다른 형들은 몰라도 저는 제가 직접 아르바이트생으로 뽑아 달라고 찾아온 사람이었으니까요.”
은우가 힘겹게 말했다. 그의 쾌활했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은우 씨.”
“점장님은 우리를 이용한 거예요. 처음부터 말하기 곤란했다면 적어도, 적어도 속초 여행에서만큼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어야 했어요. 저희가 편의점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헌터들을 위하는 점장님의 마음에 감동하고 이끌리는 걸 알았을 때 이야기해 줬어야 했어요.”
“이용한 게 아니에요, 은우 씨.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다만……!”
“SS급 헌터가 되는 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바라는 일이죠. 저라도 제가 F급인데 누가 나타나서 SS급을 만들어 준다고 했으면 무슨 일이라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기만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 여기 SS급 아르바이트생만 있는 건 우연이 아니겠어요. 점장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1년 동안 편의점을 유지하셔야만 했으니까요. 점장님을 보호할 수 있는 강한 헌터가 필요했겠죠.”
은우는 이제 완벽하게 혜진을 오해하고 있었다. 가장 혜진을 잘 따르고 의지했던 만큼, 그의 배신감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서준 씨, 제발. 제 이야기를 좀 들어 주세요.”
혜진의 만류에도 서준은 더 이상 편의점에 있지 못하겠다는 듯이 입고 있던 입고 있던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곤 자조하듯 웃어 보였다.
“제 과거를 다 알고도 저를 신뢰해 주신 점장님께 제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젠 절 정말 신뢰하신 게 맞는지 의문이 드네요.”
서준은 그렇게 말한 후 편의점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은우가 그를 뒤따랐고.
혜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 * *
“주인님.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형아들이 모두 떠나서…….”
아샤와 베일리는 혜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베일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끙끙거렸고 아샤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고는 말했다.
“일단, 정신을 좀 차려. 아르바이트생들도 중요하지만 편의점, 포기하지 않는다면서. 아직 기프트 박스도 남아 있고 지금쯤이면 마법 배송 어플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는 헌터들도 있을 텐데 네가 힘을 내야지.”
아샤의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혜진은 편의점 일을 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미안하고 속상하고 혼란스럽고, 아마 지금쯤이면 다른 아르바이트생들도 은우와 서준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혜진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한숨을 내쉰 아샤가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면 다들 불러놓고 솔직한 네 생각과 기분을 털어놔. 빨리 해결을 보고 떨쳐야지 너도 언젠가 한 번쯤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아까 봤잖아. 서준 씨도 은우 씨도 내 이야기는 들어 주지 않으셔. 다들 더 이상 나를 보고 싶지 않을 만큼 화가 나셨나 봐.”
혜진이 말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아르바이트생들이 받아 주지 않을까 봐 무서워서. 어쩌면 평생을 혜진의 위에서 걸어온 그들은 혜진의 마음 같은 걸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주지 못할 거란 불안함 때문이었다.
“돈이 필요해서, 번듯한 직업이 필요해서 이 일을 시작했고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즐거웠고 자꾸 욕심이 났어. 이 일을 제대로 해내고 싶었고 그건 SS급이 되고 싶단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어. 그것만은 분명해.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걸까, 아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눈물을 글썽이는 혜진의 모습에 아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넌 잘못한 게 없어. 아마 그들도 당장은 혼란스럽더라도 객관적으로 네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치만, 네가 잃은 신뢰를 되찾는 건 다른 문제겠지.”
“그럼, 그건 어떻게 되찾는데?”
“네 진심을 보이는 수밖에. 네가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려 줘야지.”
아샤의 말을 들은 혜진은 한동안 말없이 텅 빈 편의점 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환하게 웃으면서, 땀을 흘리면서 성실히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이윽고, 굳게 결심한 혜진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할 수 있는 걸 할 거야. 안 된다면 될 때까지.”
“좋은 생각이네. 구체적으로 뭘 해 볼 건데?”
“우선은 내 진심을 말하는 것부터. 편지를 쓸까 봐. 글이 서툴지만 그것부터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동안 혜진은 아르바이트생들과 같이 일하면서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들을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낸 의견을 적어 두기도 했다.
글을 쓴 게 아니라 정말 생각나는 대로 막 썼기 때문이었다. 일기, 메모, 아이디어 등 내용도 중구난방이고 흘려 써서 글씨도 엉망이었다.
좋은 사장이 되고 싶어서 기록을 남겨 두었는데, 생각해 보니 기록 말고는 글을 써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막상 결심을 하고도 고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써야 진심을 가장 진실되게 전할 수 있을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빨리 시작해. 고민하다 시간이 너무 지나도 오해가 생길 테니까. 편지를 이메일로 보내 놓으면 확인하겠지. 혹시라도 확인을 안 하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내면 돼.”
맞는 말이었다. 혜진은 아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그들을 속이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혜진은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들에게 말을 못 한 것이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혜진이 자신들을 이용했다고 오해할 법했다. 그러니 잘못된 매듭을 풀어야만 했다.
“나 편지 보내고 올게.”
혜진은 편의점으로 내려간 다음, 슈퍼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켜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을 써 내려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짧게 쓸 수도 있었지만 혜진은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싶었다.
처음 편의점 점장 일을 제안받았을 때 자신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이 기회를 얼마나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썼다. SS급 헌터가 되고 싶어서 편의점 점장 일을 하게 된 것은 맞으나 현재는 편의점 점장이라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을 함께 운영하면서 늘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준 아르바이트생들을 향한 고마움, 혹시라도 자신이 F급이라는 사실에 실망할까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이런 시간은 다시 없을 것이란 말과 함께 글을 마무리 지었다.
가장 마지막 줄엔 편의점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진심만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썼고.
‘정말로, 아무도 이제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셔도 괜찮아. 이미 넘칠 정도로 받았는걸.’
한 치의 거짓도, 가식도 없었으며 위선 또한 없었다.
편지에 쓴 글은 혜진의 마음 그 자체였다.
* * *
혜진은 메일을 보낸 후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메일을 보내 놓으니 아까보다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미안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여태까지 진심으로 도와주었던 그들에게 감사 인사까지 하니 편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게 자신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들이 알아준다고 한들 네 명의 아르바이트생들과 이제 이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저려 왔다. 하지만 그들이 더 이상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놓아주어야만 했다.
혜진은 편의점의 점장일 뿐인지, 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니까.
“어때? 마음은 좀 편해졌어?”
허공을 보며 생각에 빠진 혜진을 본 아샤가 물었다.
“응, 조금은 나아.”
사실 혜진이 완전히 괜찮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샤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잘됐지, 뭐. 앞날이 창창한 녀석들이었잖아. 아마도 너를 너무 믿고 의지하다 보니까 실망한 걸 거야.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녀석은 아무도 없을걸? 그냥 너를 조금 오해한 거겠지.”
“오해? 그렇지……. 내가 말을 안 했으니까. 내가 그분들을 속였다고 오해하실 수 있어. 그런데 아샤. 그것도 내가 놓친 부분일 거야.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았잖아.”
아샤는 혜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작에 사실대로 말했다면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을 거라고 아샤는 확신했다. 혜진에게 F급 헌터가 뭐 어떠냐며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는 척하며, 넓은 마음으로 그녀를 배려했을 것이다.
편의점에 SS급 헌터만 고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샤는 처음부터 F급인 혜진을 보호하기 위해 SS급 헌터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었다.
아샤는 삶이 힘들고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본성이 선한 헌터에게 편의점에서 일해 보겠냐고 제안했고, 마침 그 헌터가 SS급인 서준과 수호였을 뿐.
SS급 힐러인 은우는 아샤의 계획에 아예 없던 인물이었다. 이상은 또 어떠한가.
이상은 자발적으로 편의점에서 일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그러니까 이 편의점을 1년 동안 문제없이 운영해야 하는 건 온전히 혜진의 몫이었으며 SS급 헌터들인 그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혜진에게 스며들었고.
아샤는 혜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네 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괘씸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하찮은 인간을 품어 주는 게 정령의 도리니까.
게다가 혜진을 오해한 것만 아니면 그 녀석들은 꽤 괜찮은 아르바이트생들이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역시 너다워.”
“뭐?”
아샤가 아르바이트생들과 점장인 혜진을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지금 상황에서도 억울해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들을 이해하려고 하잖아. 인품은 타고나는 거니까. 뭐, 그 녀석들도 사정이 있겠지. 아무튼 이제 다시 일해 볼까?”
“인품은 무슨.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야. 그래도 다시 씩씩하게 해 볼 거야. 정 힘들면 24시 편의점은 못 하겠지만 열두 시간 이상은 근무할 수 있으니까.”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혼자서도 바쁘게 남은 일을 마무리하던 혜진이 문득 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저녁이 되어 있었고 시간을 깨닫자 잊고 있던 피로가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슬슬 들어가야 하려나.’
그때였다. 닫혀 있던 편의점 문이 열리며 서준과 은우가 함께 나타났다. 그것도 모자라 이상과 수호 역시 동시에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혜진이 당황스럽고 놀라워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카운터 앞에 얼어붙어 있는데, 그런 혜진을 본 은우가 겸연쩍은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
“보내 주신 메일 확인했는데 안 와 볼 수가 있어야죠. 근데, 점장님. 왜 그러셨어요?”
은우의 추궁에 혜진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진심 어린 사과가 닿지 않을 가능성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무시하거나 이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만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죄송해요. 여러분을 속이고…….”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왜 우리보고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나는 이 편의점에서 더 일하고 싶은데, 그런 식으로 저를 자르시는 거예요?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시네, 우리 점장님. 우리들 사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나요?”
은우의 말에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피식 웃었다.
본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은우가 퍽 장난스럽게, 하지만 부드러운 어투로 이야기한 탓이다. 그것도 혜진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만큼만 장난스럽게.
혜진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그게 그러니까, 저는 말이죠. 여러분을 자른 게 아니라…….”
“차근차근 말씀해 주셔도 돼요. 저희 모두 점장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온 거니까.”
은우는 다시 혜진을 향해 말했다. 당황스러운 혜진을 보고 그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수호가 입을 열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점장님의 사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이긴 하지만 점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저희는 전혀 모르지 않습니까? 아, 한 가지 더. 저희는 점장님이 F급이든, SS급 이상의 헌터 아르바이트생을 원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편의점에서 계속 일한 건 점장님의 등급이 아니라 점장님이라는 사람을 믿기 때문이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망연자실해 있던 저를 믿어 준 건 점장님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제 레시피가 적힌 수첩도 드린 거였고요.”
“뭐? 레시피가 적힌 수첩? 형! 점장님한테 그런 것도 줬어요? 뭐야? 점장님이랑 왜 이렇게 친해? 뭐야. 나도 힐 에이드 제조 비법을 진작에 알려 줄걸. 아 참, 점장님은 힐러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