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도와주세요, 남자친구가 질투심이 너무 많아요
Q. 도와주세요, 남자친구가 질투심이 너무 많아요
[1권]
0. 프롤로그
1. 고백
2. 전학생
3. 관람차
4. 데이트
5. 액세서리
6. 네 번째 능력
7. 선배(1)
Q. 도와주세요, 남자친구가 질투심이 너무 많아요
0. 프롤로그
오늘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평범한 범인(凡人)과 특별한 수인(獸人).
‘선택’받았다고도 불리는 수인은 동물의 특성을 타고나 해당 동물과 비슷한 개성 강한 외모를 지닌 데다 초자연적인 이능력을 사용했다.
이들의 첫 등장은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
먼 옛날, 지구 역사상 황금기라고 불릴 만치 문명이 발전한 시절이 있었다.
세기가 지날수록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그 속도만큼 생태계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이를 알면서도 방치하고 나중으로 미루다 신경 쓰고자 했을 때는 손쓸 틈 없이 망가진 후였다. 뒤늦게 엉망이 된 자연을 복구해 보려 이것저것 아등바등 시도해 보던 어느 날.
괴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염색이라도 한 듯 알록달록한 머리카락, 가로로 혹은 세로로 길쭉한 동공, 유별난 성격을 지닌 아기들이 세계 각지에서 태어난 것이다.
신기함도 잠시,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이들을 배척했다.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유기되었고,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하고 선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쉽게도 죽어 나갔다.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한들 이들을 기다리는 건 무시와 경멸이었고 간혹 관심이 주어졌을 때는 매서운 핍박만이 그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서로 모여 힘들게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이들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붉은 광석을 머리 정중앙에 박아 놓은 이것은 광석의 영롱한 광채와 달리 어떻게 봐도 괴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생김새를 지녔다.
간혹 동물을 공격할 때도 있었지만, 이내 실수라는 듯 몸을 틀어 노리는 목표물은 명백했다.
바로 사람이었다.
공공의 적이 등장하자 다양한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어렵게 괴물을 처리했다. 무찔렀다는 기쁨도 잠시, 문제는 다른 색상의 광석을 지닌 개체가 나타나면서부터 생겨났다.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광석을 지닌 괴물들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열심히 막아서나 이들에겐 자랑하던 사람의 무기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결국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나게 됐고, 이로 인해 전 인류 절반가량이 단기간에 죽는 초유의 대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망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지인이 죽고 친구가 죽고 가족이 죽고 다음은 자신의 차례였다.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어디에서도 희망 같은 건 찾을 수 없던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진다.
과거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던 아이들이 성장하며 하나둘 각성한 것이다.
불과 물을 만들고, 바람을 일으키며 땅을 엎고 무시무시한 괴력까지. 가뜩이나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하나 또 다른 괴현상에 충격받고 배척할 틈도 없었다. 그들의 능력이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통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구세주나 다름없는 아이들은 그때부터 괴상한 존재가 아닌 특별한 사람, 영웅이 되었다.
다만 이들의 도움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했다. 겨우 찾은 희망이었기에 다른 방안이 없던 사람들은 고분고분 응할 수밖에 없었다.
거래의 시작이다.
이를 기점으로 수인은 괴물을 처리하고, 범인은 보수를 지불하며 서로 공존하게 되었다.
마침내 인류에 평화가 찾아왔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도저히 복구할 수 없다고 판단됐던 자연이 조금씩 회복되었기에 가능했다.
괴물은 처리하고 처리해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만큼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수인의 가치는 점차 높아져만 갔다.
각 개체의 등급에 따라 광석이 다른 빛깔을 띠며, 이것이 무지개의 색 순서와 동일함을 알게 된 사람들은 괴물을 레인보우(Rainbow), 줄여서 레보라고 불렀다.
그렇게 레보가 나타나고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수인은 존재 자체만으로 각광받는 존재가 되었다.
* * *
한창 골머리를 앓던 연주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물어보자. 이건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도움을 받아야겠다 혼잣말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평소 구경만 할 뿐 활동하지 않던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하나 올렸다.
<(연애) 도와주세요, 남자친구가 질투심이 너무 많아요.>
소꿉친구였구요. 얼마 전에 남자친구가 고백해서 사귀고 있어요. 그런데 온갖 걸로 질투하느라 저도 힘든데 본인도 힘들어해요. 어떻게 해야 질투를 안 하게 할 수 있을까요?
참고로 헤어질 생각은 없으니 헤어지면 된다는 식의 댓글은 달지 말아주세요ㅠ
‘드디어 썼다…….’
글을 올리자마자 달린 질문 댓글에 답변 댓글을 단 뒤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갔다가, 화장실도 잠시 들러 봤다가, 거실도 한 바퀴 둘러봤다. 이리저리 시간을 끌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올렸던 글을 새로고침 해 보았다.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글 아래로 댓글들이 다수 달려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본문을 내리고 댓글을 확인했다.
(01)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간단합니다. 헤어지면 됩니다.
(02) 뭘 어떻게 질투하는데요? 너무 두루뭉술하게 써서 뭐라 해줄 말이 없네요;
└(00) 말 그대로인데요. 남자는 잠깐 보기만 해도 화내고 여자도 너무 친하게 지낸다 싶으면 기분 나빠해요. 동물도 오래 이뻐하면 안 좋아해서 나중에 독립해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려고 했는데 꿈도 못꾸게 됐어요ㅠ 아직 사귄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 걸까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고쳐질까요?
(03) 질투 심한 애들 몇 번 만나본 적 있고 주변에서도 그런 커플 본 적 많은데 못 고쳐요. 그냥 참고 살든가 헤어지든가 둘 중 하나임.
(04) 이걸 왜 고민하고 있지 그냥 헤어지는게 답임ㅋ
(05) 영연이가 추가한 댓글 보니까 절레절레다
└(05) 흑사커플이면 여친아 니가 조금만 참아줘라ㅜ 하겠는데 아니라면 굳이? 친구 잃을까봐 그러는 거면 남친이 널 좋아한 순간부터 이미 친구 아니었어 잘 이야기해보고도 안 고쳐지면 속상하겠지만 헤어지는 거밖에 답이 없다..
└(01) 2222 흑사네면 여친아 힘내라고 아니라면 헤어져야지 뭐ㅠ
└(07) 333 흑사애들은 천년의사랑이 맞지만 우리는 아니거든? 영연익명이도 남자친구 많이 좋아해서 고민글 쓴 거겠지만 아닌건 아니더라. 힘내 영연아ㅠㅠ
(06) 위에 갑분 흑사커플 응원하는 애들 뭐냐ㅋㅋㅋㅋ
└(01) 응원할 수밖에 없어.. 걔네는 헤어지면 우리까지 다 죽어나자나ㅠ
└(08) 흑사여친이 여러모로 고생이 많아서.. 힘내 ㅇㅈ야ㅠㅠ
댓글을 본 연주는 머리를 짚었다.
“아니, 이 사람들아! 해결책 없냐고 물어보는 글이잖아! 떡하니 헤어질 생각 없다고 적어 놓기까지 했는데 헤어지라는 댓글이 대다수에, 그 외에는 힘내라는 댓글만 달면 어쩌냐고! 진짜 해결책 없어? 이대로 살아야 한다고?”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침대 머리맡으로 던져 버리고 드러누웠다.
“아, 정말! 정말 방법 없는 거야? 정말로?”
허공에 연신 발길질을 하며 발버둥을 치던 연주는 돌연 행동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인생 최대의 시련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찾지 못하고 이대로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인생이라고 해 봤자 이제 겨우 고작 14살이긴 하지만 연주는 무척 진지했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를 쓰자니 생각지도 못한 댓글에 깜짝 놀란 터라 이 이상 댓글을 달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네. 거기서 뜬금없이 흑사가 왜 나와? 알고 단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녀가 바로 흑사 커플의 ‘ㅇㅈ’. 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짜증 반, 놀람 반으로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에 손을 얹은 연주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수인이었다. 그것도 많고 많은 수인 중에서 가장 성격으로 문제가 많다고 악명이 자자한 뱀 수인이다.
본래라면 지금 같은 연애 상담 글을 쓸 때는 수인명을 적어 놔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성의 있고 상세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수인은 보통 저마다 특색이 짙은 성격을 타고나는 경우가 많은데 뱀 수인은 그 특성이 유독 뚜렷했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 수인명을 기재하는 것이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 문제였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홍난주인 탓이다.
홍난주는 유명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특이 개체 ‘흑사(黑蛇)’이기 때문이다.
특이 개체는 희귀하다. 하지만 뱀 수인의 특이 개체는 그 안에서도 더욱 희귀했다. 그도 그럴 게 오랜 세월 동안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홍난주는 몇백 년 만에 나타난 전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인 흑사다.
그래서 추측할 수 없도록 최대한 적은 정보를 적어 놓은 거였는데, 그 탓인지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답변이나 보게 됐다.
“아, 머리야.”
끙끙 앓던 연주는 던져 놓았던 핸드폰을 들어 올려 작성했던 글의 댓글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16) 다들 엄청 진저리치네 그 정도야?
└(04) ㅇㅇ집착남은 상종하면 안됨.
└(16) 아~~ 구래?? 인성이 완벽갓벽 그 자체인 갓성과 5년째 장기연애하고 곧 결혼 예정인 나는 앞으로도 겪어볼 일이 없겠네ㅎ 힘내 얘들아^ㅅ^
└(04) ㅡㅡ
└(12) 뭐야이건ㅋㅋ
└(10) 그래 이쁜사랑해t^^t
(17) 영연익명 추가댓 보고 현실 탄식했다 진짜 진지하게 헤어지는걸 고민해보라는 말밖에 안 나오네ㄷㄷ
(18) 진짜 답없나...ㅠ 나도 영여니 남친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친 집착이 심해서 고민인데ㅠㅠ
└(10) 진지하게 대화해보고 그래도 안고쳐지면ㅇㅇ..
└(19) 여기 댓글반응 보면 알겠지만 방법이ㅠ
└(18) 아ㅠㅠ
(20) 아이고 영자야ㅠㅠ
└(21) 저기요; 게시판 잘못 찾아오셨어요; 여기 자유 아니고 연애게시판인데요; 영자는 자게가서 찾으세요;;
└(20) 아앙 자게랑 왔다갔다했더니 헷갈렸나봐ㅠ 쏴리ㅠㅠ 영연아ㅠㅠ 그냥 헤어져ㅠㅠㅠ
그새 추가된 댓글이 있었지만, 전과 별반 다를 거 없이 도움 안 되는 내용이었다.
“포기다, 포기.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한숨을 내쉰 연주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머리맡에 던지듯 내려놨다. 그러고는 멍하니 얼마 되지 않은, 과거까지도 아닌 지난날을 떠올렸다.
이 모든 일의 시초가 되었던 그날을.
Q. 도와주세요, 남자친구가 질투심이 너무 많아요
1. 고백
“난주야.”
연주의 부름에 필기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난주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
“응.”
난주와 마찬가지로 필기를 하느라 책상을 바라보던 연주는 곧바로 돌아온 대답에 난주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걸 확인하고선 그를 보지도 않은 채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통보하듯 알린 연주는 이어 설명했다.
“3반 정지성. 알아? 넌 애들한테 관심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아마 얼굴 보면 알 거야. 내일 소개해 줄게.”
두 사람은 현재 연주의 집에서 숙제를 하는 중이었다. 얼른 끝내고 놀고 싶은 마음에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면서도 멈춤 없이 보고하던 연주는 한참이 지나도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 게 이상하여 고개를 들었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희게 질려 있는 난주가 보였다.
“뭐야, 왜 그래. 어디 아파?”
걱정 가득한 말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난주는 연주가 수차례 그를 부르고 나서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응?”
입을 열긴 했는데 어디 아픈 데 없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 영 생뚱맞다.
“언제부터냐고.”
“갑자기 무슨 말이야. 너 아픈 데 있냐니까? 왜 이렇게 창백해, 체했어?”
새하얗게 질려 있어 어떻게 봐도 아파 보이는 얼굴에 연주는 걱정을 멈추지 못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감기라도 걸린 건가 싶어 열을 재 보려 손을 뻗다 멈칫했다.
난주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래? 정말 어디 아파?”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눈물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홍난주!”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해진 그녀가 크게 이름을 부르자 인형처럼 단정하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흐윽. 소리도 없이 울던 난주의 입에서 작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언제부터 사귄 거냐고!”
주체 되지 않는 서러움이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난주가 우는 걸 본 순간부터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던 연주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모든 사고가 멈춰 버렸다.
‘언제부터 사귄 거냐고?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게. 설마 남자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