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빌라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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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행복빌라 (합본)
1. 행복빌라에는



“커피 4잔 부탁드립니다.”
“…….”
“주문 안 받아요?”
“…받았습니다.”
“여기 카드….”

이준은 결제를 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었지만 주문을 받았다는 우주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움직일 뿐 카드를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이럴 거야?”
“서비스입니다.”
“하….”

이준은 우주의 말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 카페에서 마신 커피를 생각하면 커피 4잔의 서비스는 당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의 태도가 이준은 어이없었다.

“이번에는 나도 그냥 안 넘어가.”
“손님 계셔. 빨리 가.”
“김우주, 끝나고 봐.”
“…….”

이준이 나가고 우주는 한숨을 쉬었다. 우주가 이준을 안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16년을 알고 지낸 이준은 항상 자신의 옆에 있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인생의 반을 알고 지냈는데 어제 이준이 우주에게 폭탄을 던졌다.

‘우리 사귀자!’

어제 이준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서 맴돌아 우주는 괴로웠다. 박이준은 객관적으로 멋진 남자였다. 외모도 그렇지만 예의 바르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는,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준이 자신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16년 동안 모른 척하고 밀어냈는데 어제 그 벽을 깨버렸다. 그래서 우주는 다시 벽을 쌓으려고 했다.

“언니, 그냥 받아주세요.”
“뭘 받아?”
“알면서 이러신다. 여기 단골손님은 다 알 걸요, 저분이 언니 좋아하는 거?”
“…에휴. 수업 안 들어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저런 사람이 등 돌리면 절대 안 돌아선대요. 떠나고 후회하지 마시고, 잘 생각하세요.”

우주는 컵을 두고 나가는 단골손님을 멍하게 바라봤다. 우주에게 이준과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모두 이준의 마음을 안다는 듯 말이다.

‘하….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희망 고문이겠지?’

주영과 지연이 ‘희망 고문’이라고 했었다.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 우주는 억울하기도 했다. 이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표현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연애에 관해 모르는 자신에게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데 나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제 이준이 처음으로 이야기한 거다. 그리고 우주는 선을 그었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었다.

“이제는 못 보는 건가?”


*


“형 때문이야.”
“너도 인정하겠다며.”
“하….”
“이제 포기해라.”
“형! 그게 마음처럼 쉬워?”
“쉽지 않으니까 16년을 이러고 있었겠지. 그런데 상대가 아니라는데 너만 붙잡고 있으면 뭐 해?”

이준은 카페에서 오자마자 준석을 탓했다. 홍 준석, 이준과 함께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이종사촌 형이었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이준을 봐왔고 같이 일하고 있으니 이준의 마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알 정도이니 준석도 모를 수 없었다.

“정 실장이 이야기한 대로 해 보던가.”
“다른 사람을 이용해 사람 마음을 얻는 거, 모두에게 안 좋은 거 아니야?”
“그럼, 깔끔하게 포기해.”

정민주 실장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테리어에 필요한 가구를 공방에 주문하고 있었고 3년 전에 알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정 실장도 이준의 마음을 알았다. 그리고 고민하고 있을 때 민주가 한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질투. 카페 사장님도 자신의 마음을 모를 수 있잖아요. 이준 씨 옆에 다른 여자가 생기면, 자신의 마음도 알고 이준 씨 마음을 받아줄 수도 있죠.’

그 말에 이준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같이 있던 준석은 좋은 방법이라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이준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주를 위해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그럼 이제 못 보는 건가?”

냉정할 수 있지만 준석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바보 같은 이준 때문에 그런 거였다. 사실 이준이 이렇게 오래 우주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두 번 보고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렇게 우주의 옆에서 죽을 때까지 있을 것 같았는데 이준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이모가 ‘결혼’에 관해 결정하라고 한 거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준에게 고백하라고 준석은 부추겼다. 그리고 결론이 난 거다.

“보면 자꾸 마음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보지도 마.”


*


“오늘은 카페가, 썰렁하네.”
“지금 오는 거야?”
“응. 이준 오빠는?”
“이준이도 일하는 사람이야, 매일 올 수 없다고.”
“언니가 못 오게 했겠지. 야근을 카페에서 하는 사람인데 무슨.”
“외근도 있거든?”
“외근하고도 카페 문 안 닫으면 꼭 들르는 사람이잖아.”

지연은 우주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우주가 이준과 16년을 알고 지냈다면 지연은 8년을 알고 지냈다. 우주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준이 옆에 있었으니 우주만큼 이준도 알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옆에서 보고 있으니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흠, 저녁은?”
“다이어트한다니까.”
“공부하면서 무슨 다이어트. 샐러드라도 해 줄게 먹어.”
“내가 이래서 살을 못 빼.”

지연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다이어트할 생각은 있지만 의지는 없었다. 이 시간에 도서관에서 오는 것도 우주가 주는 간식 때문이었다.

“주영 언니가 주말에 모이라고 했는데, 무슨 일 있어?”
“고기 먹자는 거지. 나리하고 미나, 고기 좀 먹이자고 하더라.”
“치이. 나는?”
“우리가 누구 하나 빼는 거 봤어? 당연히 너도 포함이지.”

우주는 1층에서 카페를 하고 이 빌라의 401호에 살고 있었다. 주영은 301호, 지연은 302호, 나리는 201호, 미나는 202호에 살았다. 401호만 빼고 나머지는 원룸이었다. 우주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작년에 하늘나라로 가셔서 혼자 지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다섯 명이 모여 옥상에서 밥을 같이 먹었다.

“이준 오빠는?”
“…모르지.”
“오빠가 사 주는 소고기는 이제 못 먹는 건가?”
“내가 사 줄게.”

옥상은 401호를 통해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니 우주가 있을 때만 올라갈 수 있는데 주영, 지연, 나리, 미나는 당연히 갈 수 있고 외부인은 불가능했다. 이준만 빼고 말이다. 할머니가 계셨을 때도 이준은 갈 수 있었다. 우주만큼이나 할머니는 이준을 예뻐했다.

“에휴.”
“먹는 거 앞에 두고 한숨 쉬는 거 아냐.”
“…알았어. 그런데 미나는 괜찮아?”
“응. 적응 잘하고 있어.”
“다행이다.”

고등학생인 미나는 이 빌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때 말이 없어 내성적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대답도 잘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런데 너도 처음 왔을 때 그랬어. 알지?”
“…알지. 사실 모든 게 낯설어서 상황 파악이 필요했어.”
“풉. 다들 그렇지. 지금은 완전 수다쟁이가 되었으니까.”

우주는 이 빌라에서 20년을 살았다. 이 빌라가 지어진 것도 20년이 되었다. 할머니인 김 옥련 여사님께서 평생 일해서 번 돈으로 작은 땅에 빌라를 지었는데 운 좋게 빌라 앞에 길이 생기면서 가치가 올라갔다. 돈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건물을 비싼 가격에 팔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팔지 않으셨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이 올랐다고 했다. 그래도 우주는 팔 수 없었다. 할머니께서 원하시기도 했고 자신도 이곳이 좋았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수다쟁이는 내가 아니고, 주영 언니지. 우리 넷이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할걸?”
“풉. 그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