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빌라 3권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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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망설이는 이유



“이게 진짜 언니가 만든 거야?”
“왜, 별로야?”
“아니, 너무 예쁘다. 이거 진짜 내 스타일이야.”

미란은 미정이 꺼낸 치마를 보고 감탄했다.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미란은 바로 탈의실로 가 옷을 입고 나왔는데 사이즈도 맞고 지금 입은 옷과도 잘 어울렸다.

“우리 앞치마도 다 예쁘다고 난리야.”
“그래? 다행이네.”
“언니, 빨리 시작할 걸 그랬어. 파는 옷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 그리고 이건 원단 남아서 파우치 만들었어.”
“대박!”

미란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샵에서 사용하는 앞치마도 단순하고 평범한 디자인으로 만들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디자인에 다들 놀랐었다. 미정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사용하기에도 편하다고 했다. 미란은 치마와 같은 원단으로 만든 파우치도 너무 예뻐서 이리저리 살피며 바로 사용하기 위해 가방을 가져왔다.

“언니, 이거 몇 개 만들어줘라.”
“왜?”
“우주 주게. 그리고 직원 중에 필요하다면 주고.”
“원단 값은 내라.”
“그건, 당연하지. 앞치마도 다른 색으로 10개만 부탁할게.”
“단골이니까 싸게 해줄게.”
“풉, 내가 1호 단골이지?”

미정은 미란에게 고마운 게 많았다. 그래서 힘들 때 제일 먼저 찾는 지도 몰랐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했다. 특히 일을 그만두고 나가겠다고 했을 때 이래저래 일도 많고 힘들었을 텐데 별말 없이 그러라고 한 것도 그랬다.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남편을 잃고 알았는데 미란에게 그걸 겪게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싫은 소리 없이 도와주니 동생이지만 언니 같았다.

“당연하지. 그런데 좀 늦게 해줘도 되지?”
“왜?”
“설아 옷 하나 만들어야 하거든.”
“무슨 옷.”
“이번에 여행 프로 시작하는데 입고 나갈 옷을 만들어 달래.”
“어머, 진짜?”
“못한다고 했는데 꼭 해달라고 하네.”

미정이 샵의 앞치마를 만들었을 때 설아가 너무 예쁘다며 하나 달라고 했다. 미정은 집에서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을 변형해 만들어주었는데 그때 그 이야기를 한 거다. ‘어머님께서 해주시면 의미가 있잖아요. 연습하시면서 편하실 때 만들어주세요.’라고 해 자신 없다고 했는데 힘들면 안 하셔도 된다고, 부담 갖지 말라는 말에 마음이 바뀌었다. 설아에게는 혹시 모르니 다른 옷도 생각하고 있으라고 하고 요즘 디자인을 구상했다. 그동안 설아가 입었던 옷을 보며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 보고 제일 예뻐 보이는 스타일을 정해 만들고 있었다.

“해줘. 원피스, 예쁠 것 같은데.”
“나도 원피스로 만들고 있는데, 해 봐야지.”
“우리 언니, 진짜 디자이너 같다.”
“너무 잘한다고 하니까 내가 진짜 잘하는 줄 알아. 이상한 부분 있으면 말해줘.”
“당연하지. 내가 싫은 걸 좋다고 하는 거 봤어?”
“그렇기는 하지.”

샵에서 쓰는 제품들을 미정은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하지만 미란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 버렸다. 아무리 오래 거래해 온 곳이라도 제품이 이상하면 바로 이야기했다. 오늘 만들어 준 치마도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이야기했을 거라는 걸 미정도 안다. 그래서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그 옷 만들고 우리 우주 것도 만들어줘.”
“우주는 편한 스타일만 입어서, 취향을 모르겠어.”
“음…. 아무 바지에나 어울리는 블라우스 만들면 되겠네.”
“그것도 좋겠네. 그런데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다음 것부터 주문받네.”
“그래야 빨리하지.”
“에휴, 나는 이제 가야겠다. 주문이 너무 밀려서 바쁘네.”

어차피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미란의 예약 손님이 있기에 더 있을 수 없었다. 미정은 미란이 입은 치마와 직원들이 하고 있는 앞치마를 보며 뿌듯했다. 배움을 시작할 때는 취미로 좋아하는 것을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그것으로 뭔가 해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마음이 든 거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새로운 시작이 되었으니 잘했다 싶기도 했다.

“단골이니 싸게 부탁드려요.”
“제 첫 손님이신데 그래야죠. 다음에도 부탁드려요.”


*


“와…. 너무, 예뻐요.”
“어서 와.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너무 맘에 들어요. 이거 제가 입을 수 있을까요?”

설아는 미정이 옷을 완성했다고 해 미정의 작업실에 와 있었다. 지난달에 샵 근처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구했다는 말을 듣고 작은 화분을 들고 온 이후 처음 방문이었다.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바로 원피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미정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고 원피스만 바라봤다.

“안에서 입어 봐. 사이즈가 안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선 입고 나올게요.”

설아는 빨리 입어 보고 싶었다. 그동안 이렇게 한눈에 맘에 드는 옷이 많지 않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때?”
“너무 편해요. 사실 작을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신축성이 좋아서 그런지 잘 맞아요.”
“생각보다, 많이 말랐네. 치수대로 하긴 했는데 나도 좀 작을 줄 알았거든.”
“진짜 편해요. 이대로 입어도 될 것 같아요.”

설아의 치수를 미정이 직접 재지 못했다. 그래서 필요한 치수를 설아에게 직접 재서 보내 달라고 했는데 일반적인 치수보다 적어 만들면서도 걱정했었다. 입어 보고 작으면 늘려야 할지 몰라 시접 부분에 여유를 두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듯했다.

“사실 평소에도 입을 수 있게 편하게 만들었는데, 좀 그런가?”
“너무 좋아요. 방송 때문에 입는 옷들은 한 번 입고 못 입는 옷도 많거든요. 그런데 이건 지금 입기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미정은 설아가 빈말로 하는 것 같지 않아 안심했다. 이 옷을 입을 자리는 설아가 처음 하는 예능 프로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게스트로 나오는 예능 프로가 아닌 설아를 포함한 여러 명의 연예인이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홍보하는 자리이기에 혼자만 튈 수 없었다. 그래서 평범하지만 예쁜, 어울리지만 눈에 들어오는 옷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고민이 깊었고 공부도 많이 했는데 설아가 좋아해 주니 그동안의 고생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거.”
“어머, 가방도 만드셨어요?”
“그냥 내 스타일로 만들었어. 원단이 남아서.”
“이것도 매고 갈래요.”
“이건 좀….”

핸드폰과 차키 정도 넣을 수 있는 미니백이었다. 원피스를 만들며 남은 원단으로 작은 가방을 만들었는데 가방 쪽은 아직 부족하다고 미정은 생각했다. 그런데 원피스를 입고 설아가 가방을 메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

“아니다. 이거 허리에 두를까요, 벨트처럼?”
“음…. 이렇게 리본으로 묶어도 되겠다.”
“이게 더 예뻐요.”
“그러네. 원단이 같으니까 세트 같다.”

가방끈을 가죽으로 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허리에 매니 원래 디자인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거울을 보며 두 사람은 옷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수정할 게 없는 것 같아요.”
“치맛단 한 번 봐야 해. 마무리해서 보낼게.”
“아니에요. 그날 제가 올게요. 어차피 샵도 이쪽이잖아요.”
“그래. 그럼 그때까지 마무리해 놓을게.”

설아는 지금도 너무 완벽한 것 같았지만 미정의 눈에는 수정할 곳이 보이는 듯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럴 거다. 일이나 작품을 마무리할 때 마음에 들어서 그만두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다 아쉽지만 기한이 있으니 마무리하는 것일 테다. 미정도 그런 것 같아 설아는 아쉽지만 한발 물러났다.

-띵동.
“둘만 있는 걸 못 보네.”
“그러게요. 천천히 오라고 했는데.”

설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은 인터폰을 보지 않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설아는 바로 현관문을 열고 그 사람을 맞이했다.

“좀 늦게 오지.”
“아직 안 끝났어요?”
“일은 끝났어. 둘이 이야기 좀 하려고 했더니….”
“하세요. 방해 안 할게요.”
“에휴. 네가 있는 게 방해하는 거지.”
“흠, 나가 있을까요?”

준석은 현장에서 바로 오는 거였다. 설아를 보고 싶은 마음에 제일 컸고 미정과 있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 서둘렀던 거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설아의 눈빛을 보니 미정의 말처럼 불청객이 된 듯했다.

“왔는데 뭘 다시 가.”
“눈치 없이, 죄송합니다.”
“풉. 준석 씨, 이거 봐요. 너무 예쁘죠?”
“진짜, 만드신 거예요?”
“그럼, 어디서 사 왔겠니?”
“진작에 시작하시지. 멋지네요.”

준석의 본심이었다.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지만 쉽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옷걸이에 걸려있는 설아가 입을 옷을 보니 그 힘든 과정을 해낸 미정이 대단해 보였다. 샵에서 머리를 할 때도 멋져 보였지만 지금은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