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호호 오빠, 결혼해!”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하고 놀던 꼬미가 호경을 발견하고는 다다다 뛰어와 품에 폭 들어와 안겼다. 그러고는 당돌하게도 혀 짧은 목소리로 청혼했다. 귀여운 녀석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이상한 걸 주워들었다. 호경은 순간 웃음이 크게 터질뻔한 걸 꾹 참아냈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지 않았더라면 진짜 배를 잡고 웃어버렸을지도 몰랐다.

“결혼? 나 누구랑 결혼해?”

호경은 품에서 꼬미를 떨어뜨리며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췄다.

“나랑. 나랑 해.”

꼬미는 자신만만하게 작은 손을 올려 제 가슴을 약하게 톡톡톡 두드렸다.

“우리 꼬미가 결혼을 알아?”

“알아. 엄마 아빠 되는 거야.”

“오! 똑똑하네?”

호경은 손을 올려 꼬미의 머리를 살살 헝클었다.

“지금 결혼해.”

“안돼.”

고개를 흔들며 안 된다고 말하는 모양새가 제법 단호했다. 딱 꼬미 한정이지만, 늘 말랑말랑한 푸딩 같았던 호경이로서는 최고의 단호함이었다.

“왜?”

커다란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고개까지 갸웃했다. 호경은 꼬미의 귀여운 표정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고 말았다. 사실 호경에게 꼬미의 귀여움은 참아낼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꽉 끌어안고 뭐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나는 네가 하라면 뭐든 다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호경에게 꼬미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꼬미 네 살이잖아.”

“다섯 살이야.”

꼬미는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에이, 다섯 살은 아직 한참 남았지.”

“케이크 두 번 후후했어.”

작고 귀여운 입술을 더 작게 오므린 꼬미는 바람을 후후 불면서 촛불 끄는 흉내를 냈다. 며칠 전 제 생일날, 케이크 촛불을 불어서 꺼놓고 다시 촛불에 불을 붙여달라고 하더니 한 번 더 끈 적이 있었다. 꼬미는 그렇게 두 번 껐으니까 두 살 먹었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꺼도 다섯 살 아니야. 네 살이지. 네 살은 아직 아기야.”

“히잉.”

호경의 냉정한 지적에 꼬미 입에선 칭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우는 건 아니었다. 그저 우는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엄마 아빠 해. 하자. 할 거야! 할래!”

“떼쓰면 오빠 화낼 텐데. 괜찮아?”

꼬미가 본격적으로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호경은 제법 엄한 표정으로 꼬미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작고 귀여운 입술을 검지로 약하게 톡 때렸다.

“안돼? 왜?”

“엄마 아빠는 엄청 큰데? 꼬미는 이렇게 작잖아.”

호경은 손을 꼬미의 머리에 턱 올려 약하게 꾹꾹 눌렀다.

“호호 오빠도 작아. 똑같아.”

“다 작아서 안 돼. 나중에 아주 많이 크면 그땐 돼.”

호경은 크면 된다는 부분에 조금 힘을 주어 강하게 말했다. 물론 놀릴 생각도 아니었다. 당연히 제 나이와 꼬미 나이는 결혼할 수 없으니까 안 된다고 했고, 이다음에 나이가 더 들어서 할 수 있으니까 크면 된다고 말했던 거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이라 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꼬미는 슬플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눈동자 안에 그렁그렁 물기가 차오르고 입술까지 이리저리 삐죽거리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꼬미 울어? 우는 색시는 싫은데?”

“색시가 뭐야?”

울면서도 용케도 색시란 말은 들었다. 꼬미는 똑똑 커다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면서도 궁금한 건 물었다.

“엄마가 색시야. 아빠는 신랑이고.”

“나 색시야?”

“응. 오빠는 신랑이고.”

“결혼 안 해?”

“음, 그건 크면 해야지. 지금 오빠랑 꼬미가 어려서 안 돼. 색시하다가 결혼하면 돼. 그건 돼.”

“색시는 돼?”

깜빡, 깜빡, 커다란 눈동자가 눈꺼풀이 깜박일 때마다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했다. 그리고 깜박이는 횟수에 따라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도 계속되었다.

“색시는 오빠가 시켜주는 거니까 돼.”

“색시해.”

“난 신랑이고?”

마지막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굴러내려 아래로 뚝 떨어진 그때, 꼬미의 얼굴에 배시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응, 호호 오빠는 신랑이야.”

꼬미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꼬미, 이젠 오빠 색시니까 절대로 잊지 마? 알았지?”

호경은 손을 올려 꼬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그런 호경의 손길 덕분일까. 꼬미의 얼굴에 웃음꽃이 더욱더 어여쁘게 피었다.

*

시선이 언제부터 느껴진 건지는 모른다. 그냥 시선이 느껴졌고, 주위를 둘러보면 특별히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저를 지켜보는 시선이었다. 근처에 있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송아리 자신을 보는 시선이 맞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아리가 커피를 받아 든 그 순간 또다시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카페 안에는 역시나 각자의 일로 바쁜 사람들뿐이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시선에 예민한 건 사실이다. 특히나 저를 관찰하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그랬다. 그런 시선은 늘 다른 뜻이 동반되었다. 대체로 어둡고 좋지 않으며 더 나아가 범죄 같은 것과 연결된 사람들, 그게 아리가 아는 시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이 시선은 좀 달랐다. 관찰은 하는데 악의는 없다. 그냥 지켜만 본다. 다가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 멀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 시선이 짜증으로 느껴지는 거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중간하니까.

“시발, 용기 없는 새끼들이 제일 짜증 나. 인간이면 밀어붙일 땐 확실하게 밀어붙여야지.”

낮은 욕설에 짜증 섞인 말을 담아 흘린 아리는 턱, 턱, 턱, 걸었다. 저가 몸담은 직장, 경찰청을 향해서…….

*

“너한테 앙심 품은 놈 아니야?”

몇 달째 느껴지던 시선이 오늘도 느껴졌다는 말에 파트너인 민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형사를 지켜보는 시선이 선의일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악의를 품고 해코지하고자 지켜보는 시선이 거의 구십 퍼센트 이상이었다. 그중 한두 시선이 다른 뜻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그래서 하는 걱정이다. 어떤 범죄자 새끼가 따라붙었을까 봐.

“아닌 것 같아요. 피부에 닿는 느낌이 날카롭지는 않아요. 그냥 보는 정도? 그렇다고 뜻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의미까지는 모르겠고.”

“너 좋아하는 순진한 총각?”

같은 팀인 인수의 말에 근처에 있던, 역시 같은 팀인 준우가 헛구역질했다. 그건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에 짧게 웃음을 흘린 아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선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누군지라도 알면 어떻게든 그 생각 한번 헤집어 볼 수도 있을 텐데, 이건 시선이 어디서 온 건지도 알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조심해. 요즘 미친 새끼들 많아. 형사 따고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 새끼들이 여기저기 깔렸어. 각자 몸 알아서들 챙겨.”

역시나 같은 팀 선배인 호성의 말에 아리는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짧게 “네.”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시선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선은 진짜로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뭔가 다른 뜻이 담긴 듯한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든 언제 시간 되면 이놈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신경 쓰이고 짜증 나는 시선인 건 확실했다.

“회의!”

팀장의 등장에 모두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진 건 바로 이때였다.

*

찬빈은 몇 달째 딱 한 사람, 지금 제 눈앞에서 아메리카노를 사는 아리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날 좀 알아봐 줘. 나 여기서 너 보고 있잖아!’

이 말을 담아 꾸준히 지켜보는 중이다. 하지만 막상 아리가 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길 반복하고 있는 사람도 찬빈이었다. 맞다. 알아봐 주길 원하면서 알아봐 주지 않길 바란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 그는 계속 아리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난 우리 아리가 더 좋아. 저 아리보다는. 쟤는 너무 무섭게 생겼어.”

“귀여운데, 왜? 난 얼굴부터 하는 행동 하나하나 다 귀엽던데?”

“네 놈은 예전부터 눈이 콩깍지로 꽉 막힌 놈이고.”

정운의 말에 찬빈의 입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객관적으로 예쁘잖아. 아이고, 인상 쓰는 것도 예쁘네. 우리 아리.”

“객관적으로 예쁜 건 우리 아리고, 저 아리는 잘 말해서 멋있는 거로 하자?”

“둘이 똑같은 얼굴이거든!”

“다른 얼굴이지 저게 어떻게 똑같냐? 사람이 다른데.”

“나랑 싸우고 싶냐?”

테이블 위에 올려진 찬빈의 두 손이 손끝에서부터 차곡차곡 말려가자 정운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예뻐. 아주 예뻐!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저 아리.”

결국 폭력 앞에 굴복한 정운은 찬빈이 원하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물론 마음은 전혀 다른 말을 했지만 당연히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사실 또라이 이찬빈은 정운이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싸움을 엄청나게 잘해서가 아니라, 싸움에 임하는 자세가 일단 이성을 저 멀리 날려 보낸 후, 두 눈을 뒤로 까뒤집은 뒤에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미친놈이 나 미쳤으니 건들지 말라는 식으로 싸우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죽자고 물어뜯는 개싸움도 이찬빈보다는 이성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라, 싸움에 있어서 그의 미친 짓은 1등급, 아니, 특등급의 기피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