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아이

#프롤로그

판결에 승복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헐뜯으며 욕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법정 밖 대기실을 걸어 나오던 시애는 눈물범벅이 되어 남자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자신 또래의 여자가 업고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자가 남자를 붙잡는다는 건 헤어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여자가 자신의 아버지처럼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해서일까.

시애는 자신의 상황은 뒤로한 채 아이를 업고 있는 여자에 대해 모든 생각을 집중했다.

대기실 안에 있을 때 수십 쌍의 부부를 보았지만, 그들은 텔레비전을 켜면 숱한 채널들 중 한 곳에서 나오는 흔한 중년 부부들과 같아 시애의 시선을 붙들지 않았다.

그들이 법정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판결에 승복하지 못한다고 악다구니를 써대며 온갖 욕설을 퍼붓는 모습에도 시애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 흔했고, 또한 그들만큼 시애는 지금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남자, 곽재우와 긴 세월을 살아 본 적이 없어서였다.

이런 그녀가 남자의 다리를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 모습에서 누군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녀 자신, 최시애를 말이다.

‘나중에 후회가 생기지 않도록 꼭 붙들어요. 그렇게 붙들면 안 떠날지도 모르니까요. 어쩌면요…… 어쩌면…….’

22년 전.

“앞으로 내 눈에 띄면 너랑 이 애 둘 다 죽여 버릴 거야! 알았어! 이 병신아!”

“…….”

“병신 주제에 어디 감히 남의 남자를 넘봐! 야! 얼굴 좀 반반하다고 니가 사람인 줄 알아? 너 같은 건 그냥 병신이야! 병신이라고!”

방바닥에 나뒹구는 음식들과 뭉개져 있는 케이크 사이에서 긴 머리를 한 움큼 잡힌 채 이리저리 발에 차이는 여자는 6살 난 시애의 엄마였다.

시애는 여자들의 발을 붙들고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겨우 6살일 뿐이었다.

딸의 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음식을 만드는 엄마, 그리고 옆에서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시애. 2명의 아줌마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행복한 모녀였다.

케이크는 아빠가 오면 먹자는 엄마의 말에 마냥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시애는, 화가 날 대로 난 아줌마들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들어와 엄마가 준비하던 음식들을 발로 차는 모습이 꼭 꿈꾸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한 아줌마가 시애가 좋아하는 분홍색 장롱 속의 옷들과 이불을 모두 꺼내 찢고 밟는 동안 또 다른 아줌마는 엄마를 때리고 밟았다.

“주제도 모르고 사람 뒤통수를 쳐도 유분수지! 어디 감히 조강지처 흉내질이야! 이년아!”

“이건 사람도 아니야! 언니, 이년 오늘 아주 죽여 버릴까?”

“죽인다고 죽을 년이 아니야, 그년은! 어떻게 떼어 놨는데 또 그 사람을 꼬여 내! 나쁜 년! 원앙금침이 네년한테 가당키나 한 줄 알아? 명지야, 이거 불 질러 버려! 내가 아주 원통해서 못 살겠다. 아이고! 난 못 살아! 내 이불은 아직도 새것 같은데, 이 이불 좀 봐! 이것들 아주 매일 부둥켜안고 자느라 이불이 헐었어! 아이고! 못 살아! 명지야! 불!”

“알았어, 언니. 울지 마. 언니 억울한 거 이 대한민국에서 모를 사람 없을 거야. 언니, 흥분하지 마. 응?”

“아니, 이봐요!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한바탕 난리가 난 시애의 집에 들어온 사람은 주인집 아줌마였다. 자신을 친딸처럼 예뻐해 주던 아줌마를 보자마자 시애는 아줌마 품으로 달려갔다.

“아줌마, 우리 엄마 좀 살려 줘요! 저 아줌마가 우리 엄마 막 밟아요! 아줌마…….”

“시애 엄마! 아니, 댁들은 누군데 이런 행패를 부려요?”

“아줌마는 누군데요?”

“난 이 집 주인이요.”

“아하! 그래요? 마침 잘 오셨네. 아줌마! 사람도 보면서 집을 세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디 이런 병신 첩년에게 세를 줘요?”

“뭐라고요? 시애 엄마가 첩이라고? 무슨 소리에요? 시애 아빠는 그런 사람 아닌데, 댁들이 뭐 잘못 알고 온 거 아니에요?”

“훗! 아주 아줌마한테 제대로 사기 쳤구나. 이 병신 같은 년. 아줌마, 그 애 아빠라는 사람 바로 여기 우리 언니 남편이고, 내 형부에요! 알아요? 이년이 우리 형부 꼬여 내서 이 집에서 애 낳고 살고 있었던 거라고요!”

“어머나…… 세상에……. 시애 엄마, 사실이야? 아니지? 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온 거지?”

“거참, 이 아줌마 말귀 못 알아듣네. 그 애 아빠 최현규, 여기 재개발 책임소장이 내 형부라고요!”

“시애 엄마처럼 고운 여자가…….”

“그게 다 이년의 수법이라고요. 다리병신 아니었으면 이 나라 남자들 다 홀릴 꽃뱀이라고요, 이년이! 알아요, 아줌마? 아줌마 남편도 홀릴 년이라고요!”

“아니, 이런 요물 같은 것! 당장 나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첩질이야! 나가! 당장 애 데리고 내 집에서 나가!”

순식간에 시애를 품에서 떼어 놓은 주인아줌마는 먼저 온 두 아줌마들보다 큰 소리로 시애의 엄마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동네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시애네 방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주인집 아줌마의 말을 듣고 상황을 파악하고는 시애 엄마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저런, 저런……. 저 다리로 그래도 애 낳아서 열심히 산다고 예뻐해 줬더니 첩년이었어?”

“무섭다, 무서워. 어떻게 저런 얼굴로 남의 남편을 빼앗아 산다니? 정말 무섭다.”

“그러게. 사람 얼굴 보고 모른다니까. 저 얼굴 보고 누가 첩질하는 년이라고 생각이나 하겠어? 술집 나가는 년들은 티라도 나는데 저 얼굴에 속았구만, 속았어. 양가집 규수 같은 저 얼굴에 속았어. 그나저나 애는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첩년 자식 가는 곳이 뻔하지. 고아원에 보내야지. 안 그래? 방 안에 있는 키 큰 여자가 본처라는데, 여간내기가 아닌 것 같아. 자기 동생이랑 왔나 본데 아주 시애 엄마 작살을 내네, 작살을 내. 쯧쯧쯧! 하늘이 다 보고 있는데 어디서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살아.”

“엄마! 아줌마! 우리 엄마 때리지 말아요!”

“어린것이! 넌 저리 가 있어! 아주 제 엄마를 쏙 빼닮았네. 저리 안 가!”

“아줌마…… 우리 엄마 못 때리게 해 주세요. 네?”

시애는 눈물을 흘리며 동네 아줌마들에게 엄마를 구해 달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생일 파티는 몇 시에 하냐고 물어 오던 아줌마들은 시애의 손길이 더럽기라도 한 듯 툭툭 털어 내며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방 안에 있는 아줌마들과 함께 시애의 엄마를 향해 욕설을 쏟아냈다.

그 말들은 모두 어린 시애로서는 들어 본 적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이라 시애는 무작정 아줌마들에게 매달릴 뿐이었다.

“더 밟아야 해, 저런 건! 이 동네에 아예 저런 여자는 발도 못 디디게 해야 하니까 더 밟아요!”

보름달처럼 하얀 엄마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가는 모습에 시애는 엄마 앞으로 달려가 엄마를 밟으려는 아줌마의 발을 잡았다.

“하지 말아요! 우리 엄마 아파요! 우리 엄마 피 흘리잖아요! 하지 마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경찰에 신고하면 너희 엄마는 바로 경찰서에 들어가야 해! 아니, 꼬마야?”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잘못한 거 없어요! 아줌마가 우리 집에 맘대로 들어와서 우리 엄마 때렸잖아요! 아줌마가 경찰서에 가야 해요!”

“어려도 머리는 있나 보네. 너희 엄마한테 물어봐.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시애는 그 말에 다른 아줌마들이 웃는 소리가 꼭 귀신 웃음소리 같아서 무서웠다.

시애는 피범벅이 된 엄마의 얼굴을 부둥켜안았다.

“엄마…… 아줌마들이 이상해. 엄마…….”

“시애야…… 우리 시애……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시애를 무섭게 만들어서 미안해. 시애야…… 엄마는 괜찮으니까 아빠한테 가. 아빠 사무실 알지?”

“이것들이! 뭐라고? 아빠 사무실? 명지야, 택시 불러!”

“택시는 왜, 언니?”

“저년 태워서 다시는 내 눈에 안 띄는 곳에 버리고 와! 얼른!”

“아, 알았어. 아줌마, 여기 콜택시 번호 어떻게 돼요?”

“내가 불러 줄게요. 내가 아니까. 어디까지 가요?”

“이 서울만 아니면 되니까 멀리 간다고 하고 불러 줘요.”

“알았어요.”

“언니, 애도 같이 보낼 거야?”

“아니, 애는 내가 데려갈 거야.”

“뭐? 왜!”

“나중에라도 애 앞세워서 그 사람 만날 구실 만들어 주면 안 되니까.”

“언니, 그래도 저 애 데려가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요. 아무리 화가 나도 애는 데려가지 마요. 차라리 고아원에 보내요.”

예전의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모습을 버리고 무서운 마귀 같은 얼굴을 한 주인아줌마였다.

“배는 달라도 내 남편 씨야. 내 남편 씨, 조강지처인 내가 거두는 걸 누가 뭐라 하겠니?”

그 말에 엄마를 향해 욕을 하던 아줌마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왕님 같은 아줌마에게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시애는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지 못한 채 바닥에 찢겨져 있는 옷 조각으로 엄마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엄마의 목발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