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전날의 숙취와 섹스 후의 노곤함에 젖어있던 제임스의 귀에 끊임없이 들리는 전화벨소리는 고문과 다름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침대시트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버텨보지만 전화선 너머의 상대방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는 뒤집어쓰고 있던 시트를 바닥에 내던지고 잠시 천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약간 쉬고 큰 목소리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욕을 해댔다.''“쉣! 안 받으면 없는 줄 알고 끊지, 뻑! 도대체 누구야! 댐!”''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손톱이 말끔히 정돈된 우아하기까지 한 손가락을 뻗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평소대로 나긋하고 매너 있는 톤으로 바뀌어있었다.''“헬로우? 후즈 디스?" ''좀 전의 그의 짜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화낼 사람은 나라는 듯이 퉁명하고 좀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첫째 남동생 지민이었다. ''“아니 네가 웬일로 전화냐?”''“도대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이제 나이도 있는데 좀 쉬엄쉬엄 놀지 그래?”''어떻게 된 게 입만 열면 얼음이랑 꽈배기만 먹은 놈처럼 차갑고 비꼬는 말투만 나오냐. 그리고 화낼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하여간 이 녀석은 3살 많은 내가 자기 위인지 아래인지 모르기는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는군. 가끔은 내가 한국에 있고 이놈이 미국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단 말이야. 내가 여자랑 있는 거는 또 어떻게 아는 거지? 정나미 떨어지는 귀신같은 놈. 하얀 시트만큼이나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가 등을 훤히 다 드러낸 채 엎드려 누워 있다가 조금 몸을 움찔거렸다. 어제 술을 물 마시듯 하더니 완전히 뻗었네. 이런 전화 고문에도 끄덕 없다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자가 부러워졌다. 별로 내키지 않은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 천마일 떨어져 있는 상대편이 볼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누군가, 특히 여자 옆에 있으면 거의 자동으로 작동하는 그의 매력 시스템은 이미 입 꼬리에 완연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지금은 혼수상태라 옆에서 굿을 한다고 해도 모르긴 하겠지만 말이다.''남자라면 10명 중에 5명, 여자라면 10명 중에 11명이 넘어오는 ‘제임스의 스마일’을 띄우자 목소리까지 웃음이 묻어난다. 물론 순도 0%의 가짜이긴 하지만.''“너도 참! 오랜만에 전화해서 하는 소리 하고는. 너 지금 여기가 몇 시 인줄은 아니?”''“새벽 4시16분, 근데 그 목소리 좀 제대로 낼 수 없어? 옆에 여자 있어서 그러는 거 뻔하지만 우리한테는 제발 좀 참아줘! 내 피붙이가 이중인격자란 걸 매번 통화할 때마다 느끼는 거 별로 기분 안 좋은 일이야.”''무덤에서 방금 기어 나왔냐? 목소리 한번 무덤덤하기도 하셔라.'감정제어의 달인인 천하의 제임스라도 천장을 다시 한 번 노려보고 작은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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