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게 괴로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젯밤 프림로즈 힐은 제이신다에게 자신이 빈민굴을 드나든다고 말하기에 적당한 시간도, 장소도 아니었다. 그녀는 리지와 작별한 일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였으므로 그는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그녀를 배려하기로 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앤서니 경의 명령을 어기고 아직도 밤에 야만인처럼 싸운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니라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복수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음에도 그는 다시 빈민굴로 찾아가기 전에 상처가 낫기를 기다렸다. 사실 제이신다를 독차지한 지금은 그다지 서두르고 싶지도 않았다.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리지가 떠난 뒤 며칠 동안 두 사람은 계속 붙어 지냈다. 제이신다가 드러먼드 경과 결혼하겠다는 계획에 회의를, 랙퍼드에 대한 그녀 자신의 깊어지는 감정에 의문을 품고 있음을 그는 알아챘다.'그는 제이신다가 순진하게도 매력적인 남작 부인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디 캠피언이 앨릭을 연인으로 삼아 저도 모르게 리지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서 스스로의 계획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비록 그러한 사실은 언제나처럼 쾌활한 모습 뒤에 감추어져 있었지만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그러는 게 당연해, 랙퍼드는 매 시간마다 깊어져만 가는 그녀에 대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초조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생각했다. 그는 절대 제이신다가 에바 캠피언 같은 매춘부가 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레이디 캠피언은 그가 사교계에 등장한 뒤 두 번이나 유혹을 해 왔다. 하지만 제이신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에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에는 당나귀처럼 고집이 셌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게 내버려둬야 했다.'그는 대프니 테일러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