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서 면접

또각. 또각. 또각.

대리석 바닥을 딛는 구둣발 소리가 경쾌하고도 위협적으로 들린다. 다소 묵직하고도 위엄 있는 구둣발 소리의 주인은 바로 줄리엣 화장품 대표이사인 강시혁.

190에 육박하는 장신에 단단하고 곧은 척추를 가진 시혁은 마치 모델이 워킹하듯 늘 위풍당당하다. 봉황의 눈처럼 좌우로 길게 찢어진 눈은 마치 360도 좌우 전방을 살필 것처럼 매서우며 오뚝한 코는 날벌레가 달라붙었다가 바로 미끄러질 정도로 날렵하다. 마치 과거 고구려 시대의 개선장군 같은 그의 기세에 그의 회사 직원들은 그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화들짝 놀라 머리를 조아리기 일쑤다.

사실 시혁은 대한민국 최고의 화장품 제조업체인 로미오 화장품가의 차남이다. 로미오 화장품은 화장품 제조업에서 시작해서 생활, 주방용품에까지 손을 뻗어 현재는 준재벌 업체로 성장한 기업이다. 만약 그가 순순히 부친 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더라면 로미오의 차기 회장 후보가 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쉽게 후계자가 되길 원치 않았다. 편한 자리를 마다하고 손수 화장품 제조업에 뛰어든 그는 5년 사이에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줄리엣 화장품을 일으켜 세웠다. 맨손으로 8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중소기업 업체로 성장한 것이다. 줄리엣은 나날이 성장 속도가 가팔라 10년 안에 로미오를 따라잡을 거라는 전망도 경제 분석가에 의해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었다.

퇴근 시간.

약속 시각에 맞춰 대표실에서 나온 시혁은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비록 7층 높이의 작은 건물이기는 하나, 이 건물은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매입한 소중한 회사다.

엘리베이터가 6층에서 섰다.

땡.

문이 열리자 이제 막 엘리베이터에 한 발을 내딛으려던 직원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예상치 못했던 대표님이 이미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표님은 일 중독자라서 대개 늦은 밤까지 일하다가 가곤 하는데 오늘은 어인 일인지 일찍 엘리베이터에 올랐나 모르겠다.

차마 타지 못하고 망설이는 직원들을 향해 시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탈 겁니까?”

그의 말에 직원이 성은이 망극한 신하처럼 몸을 조아렸다.

“아! 그게. 저희는 계단 통해서 내려가려고요.”

“그러면 운동도 되고 좋을 것 같아요.”

“맞아. 맞아.”

세 명의 여직원들이 이제 막 급조한 의견에 다들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시혁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바로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그러세요, 그럼.”

별로 아쉬울 것 없다는 투였다.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자 옹기종기 서 있던 세 명의 여직원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 아까 대답 잘한 거 맞지?”

“그럼, 그럼. 한눈에 봐도 딱 싫어하는 표정이잖아.”

“대표님이 늦게 퇴근하시는 이유가 우리랑 같은 엘리베이터 타기 싫어서라는 말이 있잖아.”

“어머, 진짜? 왜?”

“그야, 냄새나니까.”

다소 기이한 답변에 다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비상구 문을 열고 계단을 통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혁이 탄 엘리베이터는 6층에서뿐만 아니라 5층에서도, 4층에서도 잠깐씩 멈췄다. 퇴근 시간이라서 각 층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각각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직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았다.

“저희는 계단으로 내려가려고요. 먼저 가세요. 대표님.”

결국 시혁은 층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음에도 혼자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다.

벽면에 붙은 거울을 바라보며 넥타이를 가다듬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다들 안 타고 계단으로 내려가겠다네. 하긴, 계단을 이용하는 게 운동도 되고 좋지.”

과연 그는 알고 있을까? 직원들이 다들 저를 피하느라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는 것을? 어쩐지 오늘도 그가 탄 엘리베이터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타지 않았다.

***

H 호텔 로비의 커피숍.

이제 막 커피를 주문한 시혁은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연한 화장에 파스텔톤 플라워 프린트가 돼 있는 시폰 원피스를 입은 긴 머리의 그녀가 생글거리며 미소 짓자, 그도 예의상 입꼬리를 슬며시 올려 주었다.

시혁의 부친인 로미오 화장품의 강 회장은 서른두 살인 차남을 어떻게든 장가를 보내려고 안달이었고 그렇게 그는 부친의 안달에 못 이겨 몇 달 동안 선을 봤다. 그러다가 겨우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했다. 현재 그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HK 그룹가의 막내딸이자 발레리나다.

시혁은 딱 하나의 조건만 그녀가 충족한다면 기꺼이 그녀와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 집안에서 워낙 결혼을 독촉하는 바람에 웬만하면 결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원하는 단 하나의 조건을 과연 충족할 수 있을까?

“이런 말 남자에게 하는 거 처음인데요, 해도 될까요?”

여자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뭐든지 말씀하세요.”

“남자한테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이에요. 사실 저는 남자 보는 눈이 높거든요. 영국에서 발레 유학하면서 키 크고 잘생긴 발레리노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한국 남자들은 제 눈에 안 찼어요. 그런데 시혁 씨는 로열 발레단 발레리노와 비교해서 전혀 손색없어요. 아니, 더 우월해요. 키도, 외모도, 성격도 마음에 쏙 들어요.”

“솔직해서 좋군요. 저도 그쪽이 마음에 듭니다.”

“정말이요?”

그녀가 소녀처럼 두 손을 모으며 설렘을 표현했다.

시혁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딱 하나, 냄새만 나지 않는다면요.’

시혁은 냄새에 병적으로 예민했다.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마약 탐지견의 후각을 능가할 정도다. 개의 후각 기관 면적이 사람보다 스무 배 넓으며 냄새를 담당하는 세포도 인간보다 마흔 배는 많다고 할 때, 시혁이 냄새를 맡는 범위는 일반적인 개보다 두 배가 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그는 어떤 장소에서든, 누구와 있든 늘 고유의 냄새 때문에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커피가 차갑게 식었을 무렵, 시혁이 기다렸다는 듯 예의 바르게 말했다.

“이제 저녁도 먹고, 차도 마셨으니 나갈까요?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과연 이 여자가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서 전혀 냄새가 안 날 수는 없겠지만, 제 후각을 크게 힘들게 하지 않는다면 그녀와 결혼할 의향이 있었다.

시혁이 몰던 차가 어느 부자 동네의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이렇게 헤어지려니 아쉽네요. 그럼, 안녕히.”

그녀가 작별 인사를 하는데 시혁이 말했다.

“안전벨트, 제가 풀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제 앞으로 상체를 기울이자, 그녀는 숨을 훅 들이켰다. 가슴이 쿵쿵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어쩌면 남자한테서 이리도 좋은 냄새가 난단 말인가? 그가 화장품 회사 대표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체취는 지금껏 맡아본 그 어느 냄새보다도 아찔했다. 수컷의 냄새와 그윽한 우디 향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페로몬을 강렬히 발산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남자, 빨리 벨트를 안 풀고 미적거리는 느낌이다. 내게 키스라도 하려는 걸까? 그녀의 심장은 터질 듯 빨리 뛰었다. 혹시라도 입 냄새가 날까 봐 숨을 참았는데, 하도 그가 미적거리는 바람에 더는 참기 힘들었다.

결국, 참았던 숨을 한 번에 터뜨리고 말았다.

“후아.”

이때 풍겨 오는 그녀의 입 냄새.

그는 조금 전 굼뜬 행동과는 반대로 긴 팔을 뻗어 얼른 그녀의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떠밀 듯이 제 차에서 튕겨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얼떨결에 차에서 튕겨 나간 여자는 놀란 눈으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럼, 살펴 가세요. 또 연락할게…….”

하지만 그녀가 말을 마쳤을 땐, 이미 차가 사라지고 난 후였다.

HK 그룹 막내딸에겐 미안하지만, 시혁은 도저히 그녀의 입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엉망이 된 기분 상태로 차를 모는 와중에 그의 핸드폰에 문자 알림이 떴다.

띠링.

슬쩍 시선을 내려 확인해 보니 역시나, 여자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친한 후배가 다음 주에 예술의전당에서 발레 공연을 하는데, 같이 보러 갈래요?]

그녀의 문자에 시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따지고 보면 오늘 그녀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었다. 데이트 내내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그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잘 웃어 줬다. 문제는 그저 입 냄새 하나뿐이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쥔 시혁은 몇 번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신호에 걸린 틈을 타 그녀에게 재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안녕히.]

문자 전송 버튼을 누른 후 그는 핸드폰을 던지듯 조수석에 던져 버렸다.

“후! 나도 이런 내가 싫다.”

시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모처럼 좋은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외모도 괜찮았고, 발레를 오래 전공해서 그런지 몸태도 아름다웠다. 성품도 괜찮았었는데, 어째서.

상대를 탓할 순 없었다. 이건 오로지, 냄새에 병적으로 민감한 자신의 문제였으니까.

“시은이가 날 가만 놔두지 않겠네.”

벌써부터 여동생의 잔소리가 귓가에 왱왱 맴돌았다.

***

HK 그룹 막내딸과의 마지막 데이트를 끝낸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시혁은 이실직고했다. 더는 그녀와 만나지 않겠노라고. 그러자 예상대로의 반응이 나왔다.

“뭐? 또 끝냈다고?”

여동생 시은이 개구리처럼 눈을 크게 뜨며 목청을 드높인 것이다. 서른두 살인 시혁보다 다섯 살 어린, 키로는 30센티나 더 작은 여동생인 시은은 외향적이면서도 기가 셌다. 게다가 둘째 오빠의 일이라면 늘 발 벗고 나섰다. 이번에도 그 누구보다 오빠와 HK 그룹의 딸이 잘되길 바랐는데, 이번에도 꽝이라니 오빠가 정말이지 미웠다.

식탁에는 시혁과 여동생 시은, 로미오 화장품 회장인 강윤석과 그의 아내 김경실, 그리고 시혁의 친조부인 강철수 명예회장이 앉아 있었다. 로미오 가에서 빠진 가족은 재작년에 결혼해서 출가한 승혁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테이블을 둘러싼 가족들의 관심은 온통 시혁에게로 쏠려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

시혁이 변명하듯 말했다.

“또 냄새 때문이냐?”

강 회장이 안 봐도 비디오라는 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시혁이 맞선녀와의 만남을 파기한 이유가 죄다 ‘그녀에게서 나는 향긋한 냄새’ 때문이었으니까.

“네.”

아들의 대답에, 김 여사가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냄새가 어땠는데? 이번에도 음식 냄새가 고약하디?”

시혁이 냄새 때문에 거절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어떤 여자는 간장게장의 비릿한 냄새가 난다며, 또 어떤 여자에게는 양곱창 냄새가 난다며 거절했었다. 그 이후로 강 회장은 아들에게 웬만하면 냄새나지 않는 음식을 먹으라고 조언했었다.

“참치회를 먹고, 아메리카노를 마셨습니다. 특별히 냄새나는 음식은 안 먹었어요.”

“회라면 괜찮지 않니? 아메리카노에서도 특별히 나쁜 냄새가 나는 건 아니잖아.”

“아니요. 분명, 은지 씨가 호텔에서 차를 마신 다음 화장실에서 양치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집까지 바래다주는데 냄새가…….”

“냄새가 어땠는데?”

이번엔 호기심 어린 고양이 눈을 하며 시은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온갖 냄새가 뒤섞여서. 아무튼.”

“오빠가 이상한 거야.”

“여자 탓하지 마라.”

“시혁아, 네 코가 이상한 거야.”

가족들의 타박에 여태껏 입을 다물던 강철수 옹도 대뜸 호통쳤다.

“이놈아, 네가 문제다.”

“저도 알아요. 할아버지. 하지만, 도저히.”

시혁이 저도 힘들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세 가족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들도 시혁의 문제가 하루 이틀 만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시혁의 후각 문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거였다. 그 때문에 시혁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후각 반응에 고통스러워했고, 지금까지 이비인후과, 신경과, 정신과 등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지. 다음 주에 선 자리 하나 더 만들 수밖에.”

강 회장의 말에 시혁이 바로 맞받아쳤다.

“아버지, 선은 당분간 못 볼 것 같습니다.”

“왜?”

“일이 부쩍 늘어나서요.”

그건 사실이었다. 줄리엣 화장품은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고, 작년에는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더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서 작년보다 더 바빠질 전망이었다. 그러니만큼 시혁은 일을 핑계로 더는 맞선을 보지 않으려 했다.

“일이 바쁜 건 이해한다만, 결혼도 일만큼이나 중요해.”

강 회장의 말에, 강철수 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결혼이 중요하지. 자고로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지 않느냐?”

그러자 시혁이 말했다.

“할아버지, 저도 결혼이 중요하다는데 동감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특히 바빠서요, 내년부터…….”

“내년에는 안 바쁘고?”

이번엔 시은이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