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one’, 또 하나의 미아가 이곳에 와서 인연을 만나고 그의 곁에 남기로 한 후 처음으로 마련한 선물의 이름이에요.”

계획만 거창할 뿐 아직 열쇠 비슷한 형태도 띠고 있지 않았지만.

뚫어지게 적색패를 응시하던 헤이른이 명패를 상자에 넣고 닫았다. 좋다 싫다 보통이다 어떤 의견도 내어주질 않았다. 짧았지만 고개를 내젓는 모습을 발견하고 쿵, 심장이 뛰었다. 이 선물은 별로였나? 딴에는 희소성 있고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야심차게 내놓은 제안이었는데 부정의 의미가 들어 있는 듯한 헤이른의 태도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고작 축하인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하는 듯했는데 뭐가 문제인걸까. 알 수 없는 불안에 콩콩거리는 심장을 애써 다스리며 그의 안색을 살피려고 했을 때였다.

헤이른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따듯하다. 헤이른이 한 발짝 움직이고, 손이 잡힌 내가 따라 이동했다. 하나, 둘, 셋. 그는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넷, 다섯. 헤이른이 멈춰 섰고 나도 멈췄다. 우리 앞에는 내가 아까 준비했던 하트모양의 단상이 있었다. 여섯, 일곱. 그가 단상을 올라가고, 손이 잡혀 있는 나 역시 뒤따라 계단을 올랐다. 여덟, 아홉. 우리는 널찍한 단 가운데로 이동했다.

단상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양초는 아직도 맹렬히 타오르며 방을 어름어름 비추고 한층 더 어둑해진 바깥 하늘에서는 동그란 달이 슬쩍 옆으로 자리를 바꾼 채였다. 이미 코가 마비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장미꽃잎 속으로 이동하자 꽃향기가 새삼 후각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봄 타는 처녀마냥 밤을 타며 울적해진 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열, 헤이른이 뒤로 한 발 물러섰다.

“……?”

척,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개를 숙였던 탓에 내 쪽으로 올려다보는 헤이른과 시선이 교차했다. 여전히 잡혀 있던 내 손을 서서히 올렸다. 손등과 헤이른의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지고 그가 눈을 떼지 않고 입술을 열었다.

“평생을 걸고 지금 이 순간, 꼭 받고 싶은 유일한 선물이 있다면.”

“유일한 선물…….”

“줄 수 있겠는가.”

내가 주겠다고 한 열쇠보다 더 받고 싶은 선물이라고? 지금 꼭 받고 싶은 유일한 선물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준비하려 하지 말고 진작 물어볼걸 그랬다. 그래, 생일선물은 받고 싶은 사람이 가지고 싶은 것, 필요한 것으로 줘야 가장 실용성도 있고 시간낭비 노력낭비도 안 하지. 그래도 나름 기뻐하는 헤이른의 모습을 살짝 기대하기도 했던 나는 찡그려지려는 이마를 애써 펴면서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만회해야겠다.

“가린 아이리넬.”

“말해요…….”

무엇을 요구하든 배포 있게 준다고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야지. 쳇, 핏, 칫, 흥이다.

“나와 결혼해줬으면 한다.”

“네. 알았어요. 까짓, ……네?”

잠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감사히 받겠다.”

저, 저기요?

“물론 열쇠도.”

“…….”

헤이른 놈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며 서 있는 내 손등에 다시 입을 쪽 맞추곤 일어서서 입술에 키스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대체 그 말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파악하는 동안 악덕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리는 오늘이 악덕 대마왕의 생일이었는지, 아니면 사실은 알고 보니 만우절이었는지를 갈팡질팡했다.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꿈도 꾸지 않았던 두 글자를 듣고 패닉에 빠져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악덕이 웃고 있건 뭘 하건 무시하고 그가 제정신인지 파악하려 재차 물었다.

“저기 악덕, 아니, 헤이른. 지금 제정신……?”

“정신관련 질환은 앓은 적 없고, 유전적으로 병력은 없으며 술도 마시지 않았고 그대도 오늘은 술 마신 상태가 아니다만.”

“아, 아니다. 내 귀가 이상해졌음이 틀림없어. 그렇지. 헤이른, 미안해요. 다시 한 번만. 선물로 뭐가 가지고 싶다고요?”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향에 취해서 내가 정신이 나간거야. 여기 뿌려진 꽃잎은 사실은 장미꽃이 아니고 환각작용을 하는 양귀비꽃이었던 거야. 그럴 것이다.

“내 청혼에 대한 그대의 승낙이 가지고 싶다고.”

그러나 푸들거리며 확인차 되묻는 내게 헤이른은 환히 미소 지어주며 내 볼을 쓰다듬고는 윗입술에 가볍게 베이비키스를 하며 확인사살을 했다.

“열쇠는 약혼선물로 미리 받아둘까?”

“…….”

취소할까. 잡아뗄까. 무를까. 시, 싫은 건 아니지만……. 우리는 아직 알콩달콩 연애도 많이 못 해봤고 사랑싸움도 아직 못 해봤으며 연애 권태기도 맞이하지 못했는데. 결정적으로 서로가 결혼 상대자로 좋을지 나쁠지 계산기 두드리는 과정도 겪지 못했는데 네놈이 무슨 배짱으로 나의 어디를 믿고 결혼인 것이냐. 이러다 후회하고 파기하면 나만 닭 쫓던 멍멍이, 낙동강 오리알, 애 딸린 돌아온 싱글 되고 악덕 놈은 잘났으니까 다른 여자랑 재결합도 거뜬하게 잘만 할 것 같은데 근데 진짜 나의 어딜 보고 좋다고 결혼하자고 하는 거지? 사고뭉치 울보에다 기껏 좋다는 집안도 걷어차고 혼자 살겠소 떵떵거리는 바보 같은 여자애한테 등등 정신없이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다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려 이름을 불렀다.

“저기, 헤이른.”

그리고 내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악덕 대마왕은 해사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 귀여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지나쳐 갔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내가 받고 싶은 생일선물은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