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하우스 근처에는 사람들이 운동을 할 수 있게 마련된 러닝 구역과 자전거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파란 하늘과 봄을 가득 실은 봄바람, 꽃까지 피면 향긋한 꽃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청정 러닝 구역. 난 가지고 나온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며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산뜻한 바람과 봄 냄새까지 맡으며 뛰자 내 몸 안에 있던 모든 독소와 노폐물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한참 자연을 만끽하며 뛰고 있는데, 이젠 덥기까지 해서 자연스레 입고 있던 트레이닝 윗옷을 벗었다. 민소매 티가 적나라하게 내 몸매를 드러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래 보여도 내가 꽤 한 몸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릴 적 아빠가 잘나갔던 시절에 리듬체조를 했던 몸이란 말이다. 내가 그 차림 그대로 뛰기 시작하자 운동만 하던 남자들이 날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이런 시선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달리기만 한 지 20분째. 지나가던 남자들이 어느새 내 뒤로 구름떼처럼 몰려들며 따라왔다. 애써 모른 척하며 뛰는데, 꽤 용기 있다고 생각되는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렇게 시작된 물음이 대중심리처럼 곳곳에 퍼져 내게 이름은 물론 나이까지 물어오는 남자들이 계속되었다. 결국 운동을 할 수 없던 내가 달리던 것을 멈추며 뒤를 돌았다. 그러자 남자들이 한발 물러난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람. 왠지 지금 이 남자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내가 더 피곤해질 것 같아 남자들을 향해 뭔가 말을 하려던 찰나에 정확히 내 뒤쪽에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낮부터 운동하는 사람들 너무 방해하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헉, 이 목소리는, 익숙하리만치 익숙한 이 목소리는! 그래. 조폭이었다. 흠칫 놀라며 뒤를 돌자 운동복 차림에 조폭이 서 있었다. 조폭은 영 못마땅하다는 눈치였다. 난 상관 말라는 듯 말했다.
“그쪽이 무슨 상관인데요.”
“상관? 상관은 없지만,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건데?”
“가…… 같이 살다니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우리 같이 사는 것 아니었나?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매너는 지키자고 하는 소리인데.”
조폭의 이상한 말 때문에 주위에 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뀌어 날 쳐다봤다. 급기야 위, 아래로 훑어보기까지 했다. 저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요! 속으로 울며 외쳐 봤자 그 남자들이 알아 줄 일은 없겠지만. 조폭은 점점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마치 그 남자들 들으라는 식에 요상한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 내 방에 침대 시트 좀 갈아 줘야겠어. 전에 네가 누웠었잖아. 뭐가 많이 묻었더라고. 좀 갈아 줘.”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이!”
“왜,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이런 말도 못하나? 같. 이. 사. 는. 사. 람. 인. 데.”
끝에 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힘주어 말하자 주위에 있던 남자들 모두 제각각 흩어졌다. 아악! 나만 이상한 사람 됐잖아! 원망 어린 눈초리로 조폭을 휙 째려보자 조폭이 아니꼽다는 눈초리다. 허, 참. 성질을 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아주 좋아 죽더라? 그렇게 남자가 그리웠나?”
“댁이 뭔 상관인데요!”
“댁이라니. 말했잖아,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매너 좀 지키자고.”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대로 지나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 말 한 번 진 적이 없다. 휴, 짜증나는 인간. 안 들리는 척 다시 달리자 어느새 내 옆으로 따라와 같이 달리는 것이 아닌가.
“그만 좀 따라오죠?”
말에 힘을 주어 말하자 조폭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너 따라가는 거 아닌데?”
“그럼 좀 떨어지던가.”
“이 왼쪽 길은 자전거 구역이야. 착각이 좀 심하네.”
“뭐에요?”
결국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러자 조폭도 날 따라 선다. 우리는 마주 보며 으르렁거렸다.
“왜, 내 말이 찔리나?”
“하, 내가 찔릴 게 뭐가 있는데?”
“그렇잖아. 남자들한테 과시하려고 그 좋지도 않은 몸매 다 드러내 놓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이 아저씨가 근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뭐 들었다시피 복수하는 건데.”
“뭐요? 복수?”
“너야말로 양심에 가책 좀 느껴 봐라. 내가 정성스럽게 간호까지 해줬는데, 그렇게 가버리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너 밖에 없을 거다.”
설마 그날 그렇게 가버린 것 때문에 지금 나한테 일부러 이런다는 거야? 이거 완전 밴댕이 소갈딱지네. 조폭은 여전히 날 아니꼽게 쳐다봤다. 어쨌든 그날에 대한 일은 내가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다 싶어 고맙다고 말을 하려던 찰나에 별안간 조폭이 위에 옷을 벗는다. 후드 집업을 벗는 모습에 황급히 ‘갑자기 뭐, 뭐하는 거예요!’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별안간 내 어깨 위에 조폭의 후드가 툭 걸쳐졌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난닝 셔츠만 입고 있는 조폭의 모습이 보였다.
“이걸 왜 날 줘요?”
“가리라고.”
“네?”
“좋지도 않은 몸매, 남한테 피해 주지 말라고.”
“이 아저씨가 근데! 가져가요!”
그, 그러니까 남들 눈에 피해나 주지 말고, 알아서 가리고 다니라는 거야, 지금? 난 버럭 소리를 치며 어깨 위에 걸쳐져 있는 후드를 집어 그에게 내밀었지만 조폭은 그대로 특유의 시니컬한 미소를 피식, 지으며 유유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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