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만남

‘오늘도 우리 가족 모두 무탈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

23살. 23년을 살면서 자신이 기억하는 날부터 매일 아침 기도를 했다. 종교는 없지만 모든 신이 듣고 보잘 것 없는 소원을 들어주었으면 했다.

“차 조심하고, 앞 잘 보고 다니고.”

“에휴. 아빠, 나 세 살 아니고 스물셋이에요. 그런 건 아기한테나 하는 거라고.”

“아직도 나한테는 아기야. 늦겠다. 오늘도 즐겁게 보내고.”

“네. 아빠도, 무리하지 마시고 즐겁게 보내세요.”

희수는 현관문을 닫고 계단을 조심해서 내려가 뛰듯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지금 버스를 타야 사람도 많지 않고 조금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버스 도착 시간을 보고 나왔지만 항상 맞는 건 아니기에 미리 가서 기다려야 마음이 편했다.

[오빠. 오늘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좋은 하루 보내.]

이 문자에 답은 항상 정각 8시에 온다. 희수는 아직 8시가 되지 않았기에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타야 하는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너도 좋은 하루 보내.]

음악을 듣기 위해 꺼낸 핸드폰에 찍힌 답. 매일 복사해서 보내는 것 같은 똑같은 답이지만 희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래, 좋은 하루 보내보자!’

*

“으….”

“냉장고에 약 있….”

“약 말고 뜨끈한 국물 없냐?”

“나가서 사 먹어.”

“인정머리 없는 놈.”

하늘은 사무적으로 이야기하는 지호를 바라봤다. 자신과는 다른 날카로움이 얼굴에도 묻어났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걸 알기에 스스로 움직여야 했다.

“문자 온 것 같은데. 이 아침에 누구야?”

“…동생. 나 먼저 나간다.”

“그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나가라.”

“알았다.”

여긴 하늘의 집이 아니었다. 원래 아파트 계약 기간이 끝나 할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집이 엉망이라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늦어져 이곳에 와 있었다. 여기는 출퇴근이 쉽다는 것 빼고는 좋은 게 없었다. 호텔처럼 편한 곳이 있는데 주인이 자꾸만 가라고 하는 이곳으로 왜 자꾸 오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반찬도 많으면서, 국 좀 끓여주지.”

어제 과음을 한 하늘은 야박한 주인의 냉장고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왔으니 콩나물국이라도 끓여서 먹으면 얼마나 좋은가. 반찬도 많으니 맛있게 먹고 가면 기분도 좋을 것 같은데 주인은 무심하게 나가버렸다.

“그래도 약이라도 챙겨줬으니, 감사하다고 해야지.”

아직 나갈 시간이 남았는데 왜 저렇게 일찍 가는지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은 약을 먹고 소파에 다시 누웠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찾았다.

-윤 하늘!

“엄마, 아침부터 무섭게 부르면….”

-너 어디야?

“친구 집.”

-왜 집 놔두고 밖으로 돌아. 아주버님께서.

“엄마. 거기 가면 나 답답해서, 죽어.”

-하….

하늘은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떨어뜨렸다. 평소에 잘 들리지 않는데 왜 엄마인 주영과 통화할 때는 한숨 소리마저 잘 들리는지, 아니 귀가 아플 정도로 큰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머니. 아침부터 혈압 올리지 마시고….”

-그럼 시간 내서 잠시 찾아봬. 아니면 전화라도 드리던가.

“넵! 오늘도 즐거운….”

하늘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어진 전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늘의 직장 상사이기도 한 큰아버지도 이 동네에 사셨다. 그러니 지낼 곳이 없으면 당연하게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어른들은 생각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이 미성년자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데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집주인보다 거기 주인은.

“으, 속이 더 쓰리네.”

생각만으로도 속이 답답하고 쓰렸다.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는 큰아버지의 기대를 막아주셨는데 안 계시니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그래서 더 만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거였다.

“공사가 빨리 끝나야 나갈 수가 있는데. 그런데 왜 나가기가 싫어지냐. 진짜 엄마가 말하는 청개구리 띠인가? 나가라니 더 나가기가 싫어지네.”

하늘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서 100m만 가면 되지만 주인이 없는 집에 있으려니 심심했다. 그렇다고 주인이 있다고 재밌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만 지나면, 주말이다!”

*

“차 가지고 가지.”

“나 아직 초보 운전이나 다름없는데, 무서워.”

“그럼 내일 같이 가던가.”

“내일은 내가 일이 있다니까.”

“무거운데. 조심해서 다녀와.”

“전화할게요.”

희수는 어제 준비한 반찬을 담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가야 하지만 교통이 좋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말이라 차를 가져가는 게 더 힘들었다. 아빠인 윤석의 배웅을 받고 역으로 향하며 희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도착하면 문자 해.]

윤석이 미리 연락했는지 지호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많이 오고 갔던 곳이라 나와 있지 않아도 알아서 갈 수 있는데 윤석과 지호에게 희수는 아직도 ‘애’인 듯했다. 지호가 대학을 다닐 때는 자신이 애였던 게 맞다. 그래서 아빠인 윤석과 함께 갔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혼자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엄연히 사회인인데도 매번 두 사람은 불안한 듯했다.

-도착했어?

“응. 지금 내려서 나가고 있어.”

-항상 있는 곳에 있어.

“응.”

희수는 오랜만에 오는 거였다. 그렇다고 지호를 오랜만에 보는 건 아니었다. 윤석과 희수가 오지 않으면 바쁜 와중에도 지호는 집에 왔었다. 2주 전에도 지호는 집에 왔다가 갔다. 그럼에도 희수가 지호를 찾은 건 반찬을 가져다주려는 것도 있지만 할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

“오늘 쉬는 날이라 괜찮아. 그런데 뭘 또 싸 왔어?”

“반찬이지 뭐. 어제 겉절이 좀 했거든.”

“내 거 신경 쓰지 말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거 해드려.”

“알았어.”

대학을 다닐 때부터 희수가 해 온 일이지만 이제는 그만하길 바랐다. 지호는 희수가 23살을 즐기며 살길 바란 거다. 아버지와 오빠인 자신에게 그만 신경 쓰고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했다. 그래서 오는 걸 막으려는 거였다.

“누구, 있어?”

“하…. 윤 하늘, 오늘 나간다며?”

“나, 씻고 나가려고….”

“으악!”

“어?”

희수는 집안으로 들어서 누군가 있는 걸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욕실에서 나오는, 옷은 걸치지 않은 남자의 모습에 놀라 뒤돌아섰다. 욕실에서 나오던 하늘도 놀라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입으며 잠깐 보았던 희수를 떠올렸다.

“여자친구 데리고 오려고 계속 나갈 건지 물었던 거냐?”

“준비 끝났으면, 나가라.”

“하, 여자는 관심도 없는 것 같더니.”

하늘은 아침에 공사 현장에 갔었다. 그런데 지호에게 연락이 온 거다. 먼저 연락이 온 게 흔하지 않아 놀랐는데 여자친구를 데려오려고 그랬다니 어이가 없었다.

“오빠, 누구셔?”

“…….”

“저는 지호 친구입니다. 같이 일하고 있고요.”

답이 없는 지호 대신 자신이 누군지 답하고 하늘은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말에 그럴 수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빠 동생, 이 희수입니다.”

“…….”

“…….”

“그러니까. 진짜 이 지호 동생이라고…. 요?”

“네.”

“와, 대박! 10년 넘게 알고 지냈는데 동생이 있다는 소리 처음 들어요.”

“나도 너 형제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

하늘은 급하게 약속을 취소하고 남매 사이에 앉아 궁금증을 풀고 있었다. 20살에 이 지호를 처음 알았는데 말을 한 건 1년에 몇 번, 그것도 사적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호가 다른 누군가와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동기 중에서 자신이 제일 많이 이야기했을 거다.

“아. 그러네.”

“나는 외동이다.”

“안 궁금해. 그리고, 안 나가냐?”

“응. 약속 취소되었어.”

“…그럼 우리가 나갈게.”

“어? 나는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서.”

지호는 오늘 희수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이 있는 게 불편했다. 평소라면 시끄러운, 아니 말이 많은 하늘이 전혀 귀찮지 않은데 오늘은 아니었다.

“나가자.”

“이것만 넣어놓고.”

“제가 할게요. 이런 거라도 해야 주인 눈치가 덜 보여서요.”

“아, 네. 그럼 이것만 냉동실에 넣어주세요.”

“네.”

희수는 하늘에게 당부하고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지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뒤돌아서 하늘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남매가 진짜, 안 닮았네.”

하늘은 희수가 가져온 가방을 열어 안에 있는 걸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었다. 냉동실에 넣으라는 건 냉동실에 넣었다. 그러다 김치로 보이는 통을 열어 하나 꺼내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 밥 생각이 났다.

“설마 동생이 한 건 아니겠지? 아, 이름을 안 물어봤네.”

나이도 궁금했다. 화려하게 예쁜 스타일이 아니라 단아하고 부드러움을 가진 외모였다. 하늘의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기에 더 눈에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오빠. 오늘 진짜 안 올 거야?]

“하…. 그래 안 간다. 그리고 앞으로도 안 갈 것 같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었다. 지난 주말에 술을 마시다가 알게 된, 대학원에 다닌다고 한, 화려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시간 있고, 심심할 때 만나기 좋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지금의 상황과 비슷했다.

“하, 다시 보려면 어째야 하나?”

*

“친구랑 같이 지내는 거야?”

“이사할 집이 공사 중이래. 곧 나갈 거야.”

“아….”

지호가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면 윤석이 알았을 테고 그럼 희수에게도 오기 전에 이야기했을 터였다. 그런데 들은 게 없으니 궁금했다. 지호는 불필요한 행동이나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에게 해야 할 이야기는 꼭 했다. 오늘처럼 친구가 있는 것도 불필요한 이야기라 하지 않았을 거다.

“무슨 일인데?”

“그게. 아빠가 요즘 속이 안 좋다는 말을 자주 하셔. 내가 걱정할 거 아시니까 다 말씀하지 않으셨을 텐데도, 많이 하셔.”

“정기 검진 언제 받으셨지?”

“작년 초에. 1년 넘었어.”

지호는 희수가 왜 이렇게 걱정하는지 알았다. 5년 전, 희수의 엄마인 정은이 암으로 고생하다 떠났다. 수술도 하고 항암 치료를 세 번이나 받았다. 본인은 건강한 체질이라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걸 버티지 못했고 끝내 가족의 곁을 떠났다. 희수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렇게 많이 운 걸 처음 봐 지호의 기억에 박혀 있었다. 희수가 후회하는 건 조기 발견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거였다. 그래서 윤석의 말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일 테다.

“직접 말씀드리지.”

“내가 말을 안 했겠어? 약 먹으면 괜찮다고 하시니까 그러지. 그리고 오빠가 해야 더 잘 먹히잖아.”

“예약하고 연락드릴게.”

“고마워.”

“그런 인사는 됐어. 먹고 싶은 건?”

희수가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았으니 할 일을 해야 했다. 용건을 끝났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먹고 싶은 걸 사주려는 거였다.

“닭갈비지. 나는 그게 진짜 맛있어.”

“그래. 가자.”

“지난번에 아빠랑 같이 갔던 데 가자.”

“그래.”

올 때마다 먹지만 올 때마다 생각이 났다. 평소에는 먹지 않아서 그런 건지, 닭갈비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먹고 싶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네.”

“다른 데로 갈까?”

“아니야. 여기가 제일 맛있었어.”

“그래. 기다리자.”

외곽에 있는 곳이고 내부가 굉장히 큰 곳인데 대기를 해야 했다. 주말이고 맛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라 그런 듯했다. 닭갈비 집은 어딜 가나 많으니 다른 곳으로 가도 될 듯한데 희수는 여기가 제일 맘에 드는 것 같았다.

“어? 저기 오빠 친구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