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언제부터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며칠째 고민 아닌 고민으로 밤을 새우다 보니, 수아는 어느새 정신이 몽롱한 채로 운전하고 있었다.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에게는 쉽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온 지 8년째 되는 어느 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 안이었다.

그녀가 엄마와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은 ‘그놈’ 때문이었다.

뭐 딱히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도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단 한 번 연락이 없던 이모가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자리만큼은 지키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는 말을 듣고 치가 떨렸다.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던 엄마임에도 자신은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부탁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빠를 버리고 돈 많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 알콩달콩 사는듯했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수아와 엄마는 점점 멀어져 모녀지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삶을 살았고, 결국 엄마는 췌장암에 걸려 발견한 지 6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이모에게 연락은 받았을 때 슬프거나 눈물이 나지 않아. 자신 역시 모진 딸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그녀의 사랑을 나름 응원했지만, 그럼에도 아빠에게 한 짓은 두고두고 용서되지 않았다.

이미 장례식은 끝난 상태, 그녀의 이모가 한국에 와서 모친의 유산 정리와 짐 정리를 부탁했다. 돈도 필요 없고, 그동안 남남으로 지낸 세월에 왜? 짐 정리를 권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수아는 공항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삼 일 전 급하게 티켓을 끊었다.

실수인지 아닌지 한국을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 정말 가기 싫다.”

진절머리가 났는지 쉴 새 없이 머리카락이 흩어질 정도로 고개를 휘젓는데, 옆에 앉은 백인 여자가 괜찮냐며 걱정하는 듯 바라봤다.

민망했는지 그녀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며 말을 건넸다.

12시간의 비행 동안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 상태의 민낯으로 공항 택시 정거장 앞에 가만히 서 있게 되었다.

“저기… 택시 안 타실 거예요?”

“아, 죄송해요. 먼저 타세요.”

막상 한국에 도착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

긴 한숨만 나오는 수아 앞에 차 한 대가 섰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여자였다.

“수아야! 엇갈릴 뻔했네. 타.”

“누구?”

“야. 나야. 진혜. 양진혜. 네 사촌.”

선글라스를 벗은 진혜는 수아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뿌루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혜? 설마… 양진혜?”

“미친… 벌써 날 잊어버린 거야? 실망인데? 타. 여기 오래 있으면 딱지 끊겨.”

 트렁크에 짐을 싣고 수아가 사촌의 옆자리에 앉았다.

 “정말 오랜만이야. 계집애 얼마 만이야? 10년까지는 아닌데,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지?”

 “8년 정도 됐어. 내가 프랑스로 건너간 게 8년이니까.”

 “잘 지냈어? 어디 아픈 곳은 없어? 진짜 너 많이 보고 싶었어. 우리가 사촌이기만 했니? 절친이었잖아. 날 두고 떠나니 속이 시원해? 어쩜 지독하게 연락 한번을 안 하는 거야?”

“내가 떠날 때 얘기했잖아. 연락 안 하겠다고….”

“진짜! 안 할 줄은 몰랐지!!”

“진정해. 운전자가 이렇게 흥분해서 되겠어?”

수아는 사촌 진혜와 초·중·고를 모두 함께 나온 절친 중의 절친이었고, 그녀에게 엄마의 도리를 따지든 이모의 딸이다.

프랑스로 떠날 때 진혜는 울며불며 매달렸고, 두 번 다시 한국에 있고 싶지 않다며 떠나려던 그녀를 붙잡고 자신도 데려가라며 난처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진혜가 자기 엄마보다 더 따르던 사람이 수아였고, 그녀 역시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살면서 지친 하루하루를 기댄 이가 진혜였다.

그녀들은 서로 위안이었고 휴식처였다.

“아주 온 거지? 그렇지?”

“…….”

대답 없는 수아를 빤히 쳐다보는 진혜는 파란불로 바뀌었는데 출발하지 않았다. 심지어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화가 단단히 나버렸다는 그녀만의 표현이었다.

“파란불이야. 뒤에서 난리 났네. 양진혜. 얼른 가. 어?”

“대답해야 갈 거 아냐?”

“어어… 아주 온 거라고 보긴 그런데… 우선 가면서 이야기하자? 어? 양아치… 빨리 가.”

양진혜의 별명이자 수아가 놀려댈 때 부르는 ‘양아치’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 다시 운전하는 진혜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까지 가는 길에 신호등은 수없이 많다. 민수아.”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말릴 수 없다니까. 네가 날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다드리면 선물 줄게. 됐지? 네가 좋아하는 가방 무진장 많이 들고 온 거 알아? 너도 알지?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 말이야?”

“잘 알고 있다. 너의 소식을 네 입으로 들을 수 없어 고모님께 들어야 하냐? 하여간 넌 나쁜 년이야.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일들을 저질렀는지 내가 1부터 100까지 다 따질 거야. 각오해. 오늘부터 며칠 동안 잠잘 생각은 추호도 않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야. OK?”

“OK. I‘m looking forward to it. 나 며칠째 잠 한숨도 못 잤어. 좀 잘게. 도착하면 깨워줘. 널 보니 조금 편안해져서 긴장이 풀린다.”

“그래. 좀 자둬. 아직 1시간은 더 가야 도착하니까. 꿀잠 주무셔.”

“아. 근데, 너 출근은 안 한 거야? 이 시간에 날 데리러 온 거야?”

“연차 쓴 거지. 내가 널 위해 이 귀한 연차를 냈다, 내일까지. 휴가 반납 겸 너랑 놀 거야. 암튼 좀 자둬. 울 엄마 보면 또 잔소리 들어야 하니까? 알았지?”

“응. 좀 잘게. 운전 조심히 하고 알았지?”

 “걱정도 팔자야. 얼른 주무셔.”

수아는 며칠을 회사 업무 정리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한국행에 대해 고민하다 날밤 새워 폐인이 된 상태에서 피곤한 기색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

“이렇게 보니 좋구나. 수아야 이모가 미안해. 네 엄마의 일은 내가 어쩔 수가 없었어.”

“이모 원망할 생각 없어요. 엄마의 잘못이지. 이모 잘못은 아니라는 거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어.”

“지영이는 잘 지내니? 결혼한다고 연락은 왔었어. 가보지도 못하고 괜히 미안하네. ”

“고모는 늘 잘 지냈어요. 이모 많이 보고 싶어 했어. 지금은 아들 키우느라 정신없어요. 5살이거든.”

“걔는 비혼주의라고 그러더니 언제 그렇게 된 거야?”

“인연이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에 있었나 봐요. 프랑스에서 한국인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데 회사에서 형부를 만났으니 그만큼 인연은 따로 있나 봐요. 왜? 엄마도 그렇잖아요. 첫사랑 못 잊어서 그렇게 아빠와 날 괴롭히더니 결국 그 남자 따라가서 살다가 버림받은 꼬락서니 우습지 않아요?”

“야. 너 적당히 해! 계집애야. 엄마 듣기 거북해. 쌍둥이 언니 욕하는 거 싫어해 우리 엄마.”

“됐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아가 하는 욕은 엄마 다 들을 수 있어.”

“쌍둥이인데도 어쩜 이렇게 달라요? 이모는 일편단심이잖아. 이모부가 일찍 돌아가셨어도 진혜, 진우 잘 키우려고 혼자 얼마나 애를 썼는지 내가 잘 알아요. 그런데 엄만 안 그랬어. 너무 비교되잖아.”

“넌 뭘 또 비교하니? 이모와 이모부가 인연이 짧았다고 생각하면 되지. 넌 아직도 그 일로 원망하니? 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잖아.”

“진혜야. 난 결혼 생각은 없는데, 아이는 가져보고 싶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자식보다 남자에 목을 매는지 궁금해지더라. 난 준우 떼놓고 한국 들어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아무튼 이해가 안 돼. 이해가… 그건 그렇고 이모. 무슨 짐 정리하라고 프랑스 있는 사람을 불렀어?”

“언니가 너에게 남긴 유산도 있고, 이 일기장을 너에게 주고 싶어서 들어오라고 했어.”

이모 은심은 언니 은재가 평생 쓴 일기장을 딸인 수아에게 주고 싶어 타국에서 일하는 아이를 야단치면서 불렀다. 잠시나마 언니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조카에게 아픔만 주고 간 언니가 안타깝기만 했다.

은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 언니 은재였다.

12살 때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자매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여럿 먹고 살아왔지만, 다행하게도 언니인 은재의 독한 마음으로 은심을 다독여 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은재는 은심의 언니이자 부모였다.

마음이 여린 은심은 늘 어두웠고, 은재는 늘 밝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은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늘 주위를 눈여겨보고 동생을 괴롭히는 이들이 없는지 살피는 게 그녀가 할 일이었다.

그런 언니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 췌장암이었다. 손을 대지도 안 댈 수도 없는 상태로 고통스러워하는 언니의 마지막 소원이 딸 수아를 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 늙은 남자보다 제대로 키우지 못한 딸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은심이었다.

그런 언니의 마음을 알기에 수아에게 부탁했다.

“수아야. 네 엄마이기 전에 나에게 언니이자 부모였다. 어릴 적 우린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왔지. 그 와중에도 언니는 날 끔찍하게 생각했어. 그런 나이기에 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수아 네게 언니가 모진 말들과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 한 사람이었기에 쓸쓸히 떠났어. 아마 네 아버지가 언니를 보면 크게 혼내겠지? 그렇게 떠나더니 왜 이리 일찍 왔느냐고 말이야.”

“이모, 내가 궁금한 것은 왜 나에게 그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지야. 그 꼬맹이도 있잖아. 아무리 이혼했어도 그쪽 아들에게 물려줘야지, 안 그래?”

“야. 이모 이혼하고 받은 위자료가 우리에게나 어마한 것이지. 그쪽은 껌값이야.”

진혜는 이모가 이혼할 때 받은 위자료로 꽤 많이 돈을 늘리면서 살아온 것을 지켜봤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은재가 할 수 있는 일은 딸에게 물려줄 돈을 불리는 것 이외에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난 받을 생각 없어. 그 사람 돈을 내가 왜 받아야 해? 찝찝하고 싫어!”

“야… 그럼 나 줘. 그 많은 돈이면 평생 먹고 놀아도 후대에 남기겠다. 그 재벌 아저씨가 바람피우고 아니 바람을 한 번만 폈어? 샐 수도 없다. 없어. 그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 줄 알았더니,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으면 췌장암이 걸리냐고? 세상에 난 이모가 그렇게 살이 빠진 거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아니? 마지막에 몸무게가 35킬로였어. 이년아. 아무리 이모가 잘못해도 널 낳아준 엄마야.”

“그래. 날 낳았지. 그리고 버렸지. 아빠와 함께….”

“진혜야. 수아 피곤해. 그만하고 쉬게 하자. 수아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네. 눈이 빨갛다. 밥도 제대로 못 먹었지?”

“네. 저… 자고 싶어요.”

“얼마나 못 잔 거야? 눈이 퀭한 게… 좀비가 따로 없네.”

“일이 많았어. 론칭한다고 계속 날밤을 새우고 했더니 정신 하나도 없어. 나 잘 거니깐 깨우지 마. 아마 시차 적응 때문에 며칠 걸릴 거야. 2층에 내 방 아직 있어?”

“당연하지. 이불 하나 안 바꿨어. 우리 엄마가 너 언제든 오면 쓸 수 있게 맨날 쓸고 닦고 딸내미 방보다 더 지극정성이야.”

“뭐. 엄마 부탁이겠지? 그렇죠. 이모?”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리는 은심은 언니의 부탁을 항상 들어주고 싶어 했다.

제 어미가 자기 집에는 절대 오지 않는 아이라 혹시나 한국에 들어오면 호텔이 아닌 이모 집에서라도 머무르라며 동생에게 이층집 주택을 사줬다.

동생 은심은 남편이 일찍 죽고 고생하며 진혜와 진우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어서 자신의 위자료 일부를 은심의 집을 마련했다.

“안 깨울게. 너 3일 정도 걸리겠지? 시차 적응 말이야. 2층에 냉장고도 있고 인덕션도 있고 이것저것 있으니 불편함 없이 지낼 거야.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새벽이라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어. 알았지?”

“고마워요. 이모. 덕분에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을 것 같아.”

“가기만 해봐. 가만두나 봐!! 두 번 다시 안 볼 거야.”

“야… 이래 봬도 나 직장인이야. 아무리 고모부 회사라지만 한 달 휴가 받아서 온 거야. 어찌 안가냐? 밀린 일 다 동료들에게 넘기고 왔어.”

“알았어. 우선 자고 일어나서 말해. 나 내일도 출근 안 해. 이야기는 너 일어나면 하자. 나도 2층 쓰니까 신경 쓰지 마. 1층에는 엄마랑 진우 써.”

“이모. 진혜야. 오랜만에 너무 반가워. 날 환영해 주는 느낌 참 좋아. 히히.”

수아는 한국을 떠나던 그날 그리움보다는 미움일 거로 생각했다.

문득 밀려오는 서러움에 프랑스로 떠나 먼 이국에서 생활이 뭐 그리 좋았을까?

언어의 부족함과 피부색의 다름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엄마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끔찍하게 여겼던 아빠의 사랑이 있었고, 고모와 이모 그리고 진혜, 진우가 가족이었다.

그 가족들을 한순간 멀리하고 돌아선 수아는 늘 이모네 식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더 연락할 수 없었고 잊으려고 노력했다.

수아는 며칠 날밤을 새워서일까? 오랜만에 온 집에 안도감이 들어서인지 침대에 눕자, 약도 필요 없을 정도로 깊은 잠을 잤다.

수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잠시 엄마와 살기는 했지만, 그 집에서 견디기 힘들어 이모와 진혜, 진우와 함께 살았다. 진혜는 같은 나이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쭉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가 잠시 엄마 집에서 사는 동안 전학 갔다가 반년도 채 되기 전에 다시 본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왔었다.

원래 살던 집은 방 2칸에 있는 집에 이모와 진혜가 같은 방을 쓰고 진우가 남자라 남은 방을 따로 썼다. 그러다 수아가 그 집을 들어오게 되면서 거실을 방으로 만들어 이모가 쓰고 큰방을 애들에게 내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