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미련한 짓입니다. 그 사람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고 해서 당신이 받은 상처가 낫지 않아요. 그런 부질없는 짓으로 왜 영혼을 더럽힙니까?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번쯤은 귀에 담아도 봤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수도 없이 저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다니엘이니 응당 격려는 해 주지 못하더라도 이해는 해 줘야 했다. 그런데 이런 비난이라니! 다니엘의 피 끓는 간구를 비난으로 받아들여 버린 설랑은 감춰 두었던 또 하나의 저를 완전히 드러내고 말았다. 입술이 뒤틀렸다.
“난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놓으라고 가르치는 네 신 따위는 믿지 않아.”
다니엘은 제 귀를 의심했다. 신자라고 했었다. 비록 어린 날의 상처로 냉담자에 가깝지만 신을 부정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그의 충격은 흡수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설랑은 그런 다니엘을 가차 없이 채찍질했다.
“나를 기만하고 배신한 놈들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내 믿음이고 신앙이야. 알겠니?”
“슈에랑…….”
망연자실한 다니엘의 두 눈은 설랑을 더욱 극으로 몰아붙였다.
“알았으면 주제넘게 내 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마. 정 하고 싶으면 널 버린 네 신에게 가서나 하든지.”
다니엘의 심장이 발기발기 찢겨 나갔다. 치욕스러운 조롱을 당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자해하듯 독과 같은 말들을 토해 놓는 설랑이 가여워서였다. 강한 척 위장할 뿐 실상은 너무도 여려 저를 보호하기 위해 가해를 끼친 이에게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는 위험천만한 그녀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왜 사람이 이렇게 형편없습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원망이나 자리를 박차고 가 버리는 것을 예상했던 설랑의 짐작을 확 뒤집어엎고 그녀를 호되게 질책했다.
“왜 벼랑 끝에 섰을 때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법을 몰라요! 한 발만 뒤로 물러서면 안전한데 왜 자꾸 위험 속으로 다가가기만 하는 겁니까! 미련이 남은 겁니까?”
“닥쳐.”
가망도 없는 힐난에 소름이 다 끼친 설랑이 경고했지만 다니엘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게 그녀를 다그쳤다.
“남자답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는 저보다는 능력도 있고 남자다운 그 사람이 낫다 싶어진 겁니까?”
어떻게 제가 내어 준 첫 마음을 품은 채로 스스로를 쓰레기 같은 인간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설랑은 절규했다.
“닥치라고 했지!”
다니엘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설랑의 눈을 바라보며 제가 행하려는 일이 기적을 일으키길 바랐다.
‘이루어 주소서.’
마음을 다해 빌고서 선언했다.
“만일 그 일을 계속 진행하시겠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설랑은 거기까지만 들어도 그가 입 안에 담고 있는 나머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終(끝).’
제가 준 마음을 내치고 저를 버리려는 것이다.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진 것처럼 그악한 고통이 덮쳐 와 숨도 쉬지 못하는 설랑에게 다니엘이 그녀를 살릴 것이라 믿는 칼날을 내리쳤다.
“당신을 보지 않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하건만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설랑의 숨줄을 확실히 끊어 놓았다.
“당신이 내게 가르쳐 주었던 그 하찮은 3천 겁의 인연이 끝나는…….”
다니엘은 말을 맺지 못했다.
“끝내.”
조금 덜 상처받기 위해 다니엘의 유일한 무기를 강탈한 설랑은 스스로 지옥을 향해 뛰어내려 버렸다.
“덜 받은 돈은 받지 않겠어. 그 정도 가치는 충분했으니까.”
맑은 눈을 가진 다니엘은 진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들어 있지 않은 설랑의 폭언을 귀에 담지 않았다.
“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겁니까?”
다니엘이 내민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상처 입을 대로 입어 버린 설랑은 그의 손을 내쳤다.
“워더 칭뿌(我的 情夫: 나의 정부). 계약서를 쓴 날 네가 궁금해했었던 말.”
설랑이 발음한 단어들은 다니엘을 오래 전 기억 속으로 데려갔다. 계약서를 쓰고 악수를 나눈 그날 그녀가 들려주었던 첫 중국어.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지금 상황과 아무 상관없는 그때 그 말을 화두로 삼는지 다니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칭뿌. 정부라는 뜻이야.”
날 돋친 설랑의 해석은 둔기가 되어 다니엘의 명치를 후려쳤다.
“정…… 부.”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진실된 관계가 아닌 그저 육체적 유희만을 위한 관계.
‘내가?’
설랑은 벌써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한 눈으로 제게 진실을 묻는 다니엘을 얼음송곳 같은 혀로 공격했다.
“내게서 모든 걸 빼앗아 가 버린 네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널 더럽힌 거야. 내 계획대로 넌 순결을 잃었고, 네 신은 통곡했지. 그것으로 되갚아 줬으니 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설랑의 연기력이 조금만 미숙했더라면 더 심한 모욕에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거짓 연기는 신도 속을 만큼 완벽했고 다니엘의 가슴은 사금파리가 되어 버렸다.
“항상…… 그랬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고서 다시 물었다.
“늘 정부라고만 생각했습니까?”
덧붙이고 싶은 말도 있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날 사랑하지 않았던 겁니까?’
묻고 싶었지만 그렇다 하면 다시는 설랑을 보지 못할 것 같아 다니엘이 차마 묻지 못한 그 말을 설랑이 대신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