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뭐냐, 이 기술은?”

마계의 마왕 샤럿.

그녀의 눈동자가 당혹스러움에 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는 미물이 본디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오며 내공을 쌓은 악마조차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마법을 부렸다.

“크윽!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악마가 괜히 악마인 줄 알아? 넌 내가 죽어서라도 원혼이 되어서 평생토록 저주해주마!”

샤럿은 점점 깜깜해지는 눈앞에 악에 받친 목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다.

칼론 이베론.

제국의 황제라는 남자의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샤럿의 감기기 직전 마지막 장면에 담겼다.

그렇게 마족과 인간들의 싸움은 인간들의 승리로 끝났다.

제국의 황제인 칼론 이베론은 당대의 영웅으로서 대륙 전체에 그 명성을 퍼트리며 모든 이들에게 찬양받았다.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세기의 천재.

언젠가 인간들을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마계를 무너뜨려 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전진해나가던 남자가 끝내 마왕의 최후를 내려다보는 영웅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참으로 기분 나쁜 눈동자야.’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마왕이라도 이번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남아있는 의식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황제의 기분 나쁜 시선을 곱씹어가며 음미하고 있었다.

죽은 생선이 더 생기가 있을 것 같은 눈동자.

샤럿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서 다른 인간들과는 사뭇 다른 기운을 느꼈다. 마치 삶을 포기한 듯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존재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거슬리고 짜증 났었다.

그냥 단순히 인형 같은 존재였다면 샤럿이 이토록 거슬려 하며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다 죽어가던 벽안을 제대로 마주한 순간,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로 빨려 들어가며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한낱 인간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단 말이야.’

샤럿은 한낱 미천한 인간 따위에게 잠시나마 압도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런 인간이 자신의 최후를 마지막까지 미동도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는 것 역시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말했던 바는 반드시 지켜주마. 원혼이 되어서 널 평생토록 저주할 것이다. 네 반려와 자식들 역시 이 마왕 샤럿의 저주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야.’

악마가 달리 악마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마족의 정점이자 악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마왕.

그것이 바로 샤럿이었다.

‘네놈이 가장 행복한 때를 노려 절망을 안겨주마. 그때에도 과연 전과 같이 날 내려다 볼 수 있을까? 그 기분 나쁜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희열감에 전율이 오는구나.’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샤럿은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원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지, 지금 나의 의식이 남아있으니 이제 곧 원혼이 될 것이야. 조금만 참을성 있게 기다려보자.’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에 가까운 마왕이라도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건 내 성품에 안 맞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그러나 참고 기다리자고 다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한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했다.

‘빨리 내 의식을 원혼으로 만들어줘. 난 진심이란 말이야. 이대론 억울해서 절대 못 가.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기만 하면 그곳을 아예 박살을 내버릴 테다.’

샤럿은 열심히 허공을 향해 고함을 내지르며 협박까지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옴짝달싹 없이 혼자서 의식 속에 갇혀버린 상태가 여간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샤럿은 한참을 더 씩씩대며 화를 내다가 결국 제풀에 지쳐 얌전해졌다.

***

“카밀 영애가 실종됐다고? 흐음, 확실히 황후 후보인 영애 중 하나이니 황궁이 어수선했던 거로군.”

“그게 저희가 단장님을 찾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마 나보고 그 영애를 찾아달라는 건가?”

“맞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카밀 공작가에 은혜를 입었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는군. 하지만 사사로운 일에 움직이라고 검은 늑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서 말이야.”

“그런!”

난감한 얼굴의 기사는 머뭇거리면서도 입을 떼지 못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장발의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둔 가면을 쓴 기사.

황제의 충견이자 검은 늑대의 기사 단장인 테오슬리는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는 법이 없었다.

그가 안 된다고 하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럼 황제 폐하께 언질이라도 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요 며칠간 황제 폐하를 알현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납득하실 수 없는 모양들이십니다.”

“어째서지?”

“네?”

“한낱 공작가의 영애 따위가 없어진 일을 황제 폐하께서 신경 써야 하느냐는 말을 하는 것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흐음, 황궁에서 기사가 언성을 높여도 되던가?”

테오슬리는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곧바로 언성을 높인 기사를 일갈했다.

“죄, 죄송합니다.”

“결국 자네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황제 폐하임을 잊지 말도록 해. 더 할 이야기가 남았나?”

여전히 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기사는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돌릴 뿐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사는 테오슬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무래도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후속 대처라도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줄행랑을 친 것이었다.

“하아, 나도 궁금하다고. 도대체 뭘 하고 계시길래 며칠째 얼굴도 비추지 않으시는 건지.”

테오슬리는 주변에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시름이 담긴 깊은 한숨과 함께 한탄을 늘어놓았다.

황제의 충견이라는 별명답게 테오슬리는 유일하게 이 황궁 안에서 황제가 신뢰하고 곁에 두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간접적인 의사 표명에 있어서 테오슬리를 통하려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지금만큼은 테오슬리도 모르기 때문에 더 단호하게 거절한 것도 있었다.

황제의 반려 후보 중 하나였단 카밀 공작가의 에이니안 카밀의 실종 사건.

느닷없이 사라진 공작 영애의 묘연한 행방에 수도가 뒤집혔으니 모두가 황제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제국을 지켜주는 호위 인형 정도로 생각하면서 이럴 때만 애타게 찾아대는군.”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인 황제.

그렇기에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귀족들은 그런 황제를 우러러보는 척하면서도 뒤에서 미친 듯이 견제하며 경계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니겠지?”

테오슬리는 마지막으로 침실에 들어간 뒤 미동도 하지 않던 문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이내 이런 오지랖은 황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몇 걸음 떼지 않고 곧바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뭐,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폐하만의 영역이 있으실 테니까. 문제가 해결되신다면 어련히 행차하실 거야.”

테오슬리의 말에는 황제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 누구도 황제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그를 신처럼 떠받듦과 동시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황제의 충견이라고 불리는 테오슬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다시 행차해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

“당신은 누구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기운을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인 것 같은데.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지?”

“당신은 신인가요? 아니면 악마?”

여인은 흠칫 놀라면서도 도망칠 기미는커녕 오히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며 정체를 묻기 시작했다.

“당신이 어떤 존재든 좋아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드릴 테니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뭐라고?”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과거 마계를 지배하던 마왕이었으나 제국의 황제에게 패배해 봉인된 샤럿이었다.

약 100년의 세월 동안 그 어떤 출입도 허용하지 않았던 결계에 균열이라도 생긴 것인지 처음으로 낯선 인간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대뜸 소원을 빌려고 하고 있었다.

“하아, 오랜만에 대화상대가 생겨서 기뻤건만 이거 원 혼자서 일방적인 소통을 하면서 대뜸 소원을 들어달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인간이로구나.”

“역시 당신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군요.”

“그래, 아주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그러면 제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나요?”

“내가 왜?”

샤럿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봉인의 틈새를 발견하고 들어온 것도 신기한데 다짜고짜 대뜸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다니.

샤럿은 인간은 참 탐욕스러우면서도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하던 동시에 여인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절실함을 눈치채고 이내 태도를 조금 온화하게 바꿨다.

“우선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싶은데.”

“아! 죄송해요. 제가 지금 정신이 너무 없어서.”

“흐음, 질책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야. 그대의 신분을 알아야 나도 대충 상황 파악이 가능하거든.”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듯한 말투와 태도에 여인은 눈을 반짝였다.

“제 이름은 에이니안 카밀이라고 합니다. 카밀 공작가의 영애죠.”

“카밀 공작가라고? 혹시 제국에서 온 건가?”

“네, 맞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샤럿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물론 형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에이니안은 그 미소를 볼 수 없었으나 분위기가 이전보다 온화해졌다는 것을 피부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변화로 알 수 있었다.

“공작이라고 하면 높은 사람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공작가의 영애가 이런 곳에 어쩐 일이지? 애초에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거야.”

“저도 모르겠어요.”

“모르겠다고?”

“네, 그냥 눈앞에 동굴이 보이길래 무작정 몸을 숨기려고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들어오고 나니 입구가 막히면서 잠시 기절했다가 일어났는데 지금 상황인 거예요.”

“그렇군.”

샤럿은 에이니안의 이야기를 통해 봉인에 확실히 문제가 생겼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전 황제 폐하의 반려 후보 중 하나랍니다.”

“반려? 그대가 황제의 아내가 될 사람 중 하나라는 건가?”

“네. 물론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죠. 황제 폐하께서는 100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건재하게 제국을 지키고 계시니까요. 저는 아버지와는 달리 폐하를 신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잠깐, 100년이라고?”

샤럿은 에이니안의 입에서 튀어나온 어마어마한 숫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니야,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해.”

샤럿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다양한 생가들을 떨쳐내고 다시 이야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전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답니다. 황제 폐하를 동경하는 것은 맞지만 사랑을 나누고 싶다든가 하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고자 가문에 뛰쳐나와 도망쳤다는 건가?”

“맞아요.”

샤럿은 손이 있다면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이마를 손으로 짚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종족 번식의 수단이자 권력을 계승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녀의 가치관이었다.

진정한 사랑 따위 샤럿에게는 크게 와닿는 호소력 있는 문장이 아니었다.

“그럴 수 있지.”

그래서인지 샤럿은 굉장히 시큰둥한 반응을 내놓았다.

“한심하다고 생각하시죠?”

“아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 나도 조금 놀랐을 뿐이야. 보통이라면 황제에게 시집가고 싶은 영애들이 줄을 서기 마련이잖아.”

“그렇죠.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영애이지 저는 거기에 해당 사항이 없어요. 가문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황제 폐하께 시집을 가야만 가문이 유지될 정도로 저희 카밀 공작가는 빈곤하지 않다고요!”

지금의 말과 충동적인 행동들을 종합해봤을 때 에이니안 카밀은 철부지 영애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샤럿은 대충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넘어가려고 했다.

시큰둥한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에이니안의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지루한 이야기를 더 듣기보다는 그런 철없는 영애를 꼬드겨 인형처럼 다룰 생각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