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안녕’''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면서 고개만 뒤로 돌렸다. 꽉 잡힌 손에서 느껴지는 엄마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그녀의 손을 타고서 내려왔다. 어쩌면 자신이 한국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꼈다. 그러자 모든 사물들이 흐릿하게 일그러져서 보였다. 마침내 참고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뚝하고 떨어졌다. ''꼭 가야만 하는 건가? 안가면 안 될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전혀 없었다. 선택권이 주어줬다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과연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일게 틀림없었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어느 길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감은 항상 존재할게 분명했다. ''김포국제공항!'인주는 지금 엄마를 따라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디자인 공부를 떠나는데 혹이 되어 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 이제 11살이었다. 정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새로운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사실에 온몸이 움츠려들었다. 그녀가 가고 싶어서 가는 길이라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을 테지만 그녀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었다.''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걸어가는 엄마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느끼는 긴장감을 엄마의 얼굴에서도 똑같이 읽을 수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엄마의 표정에서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건 왜일까?''엄마와 아빠의 이혼얘기가 나왔을 때조차도 인주는 이런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차라리 후련하다는 안도의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정도로 아빠가 싫었던 것일까? 항상 집에서는 아빠의 고함소리만이 들렸다. 그것에 반해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아빠의 얼굴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한 엄마의 표정 때문에 아빠는 더욱더 화가 솟는 듯 온 집안의 물건을 깨트리고서는 집을 나가곤 했다.''그리고 이혼 후, 처음으로 아빠와 대면했을 때의 아빠의 표정은 넋이 나간 듯 초점이 흐릿했다. 엄마를 따라가는 대신에 아빠랑 같이 이곳에 남아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그녀는 가끔 했다.''“그만 돌아봐!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거야. 지금은 초라하게 떠나지만 돌아올 땐 화려하게 돌아오는 거야.”''그 말을 하는 엄마의 눈은 이곳이 아닌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인주는 요즘 엄마의 다른 얼굴들을 발견할 때마다 혼란스러워졌다. 마치 그녀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어디론가로 훌쩍 떠나가 버릴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자신만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리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인주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몰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