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진우는 지루하고 피곤했다. 뉴욕으로부터 16시간의 장거리 여행에서 돌아온 지 고작 5시간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하루 정도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쉬고 싶었다.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루한 행사는 그의 인내심을 바닥내고 있었다. 평소 냉정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기에 아무도 그의 속마음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축 서진 그룹 창립 30 주년’ 그는 입가에 슬며시 비어져 나오려는 비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는 살아남은 것이다. 연회장 중앙에 모여 공작새 무리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웃고 떠드는 ‘사장단과 이사진’ 그들로부터 말이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장직을 처음 맡았을 때, 그들은 ‘그가 얼마나 갈 것인가?’ 을 두고 공공연히 내기를 했으며, 언론은 경제 전문가들을 내세워 재벌2세의 세습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했었다. ‘서진구’, 그의 아버지는 한국 경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거목이었다. 그 누구도 서진구, 그를 대신할 수 없었으며, 진우는 특히 더 아버지를 대신해 서진을 맡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끊임없이 비교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아버지, 서진구에겐 오직 서진 그룹만이 존재할 뿐, 어머니 김 여사나 어린 여동생 서희 그리고, 아들 서진우는 모두 관심 밖이었다. 어린 시절 한 때,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얻고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 했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늘 무관심과 냉랭한 눈길뿐이었다. 그 후, 진우는 의식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잊고 살려 했고, 거의 성공했었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떠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경영학 석,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자 했었다. 하지만 3년 전 어느 날 새벽, 김 여사의 전화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곳으로 그를 되돌려 놓았다. ''“돌아갈 준비를 할까요.” ''뒤에서 낮고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난 3년간 항상 그의 뒤를 지킨 문혁이었다. ''“피곤하군.” ''“이제 돌아가셔도 별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어머니는?” ''“방금 본가에 도착하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다들 모였군.” ''특급 호텔의 초대형 연회장 안엔 소위 잘 나간다는 정치인들과 경제계 인사, 연예인, 기자들까지 한 자리에 뒤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