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대리의 이중생활
#제1화. 험악한 눈빛의 까다로운 고양이
달리는 창밖으로 파도치는 바다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 오후 8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밖이 환했다. 제우는 창을 내리고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은 눅눅하지만,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과는 다른 상쾌함이 있었다.
“야, 문 닫아! 더운 바람 들어오잖아!”
쾅쾅 울리는 음악 소리에 목소리가 묻힐까 봐 그런지 앞자리에 앉은 호준이 거의 악을 쓰며 말했다. 뒷좌석에 앉은 제우는 그 소리가 안 들리는 듯 계속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바다의 짭짤함과 흙의 건조한 내음이 섞인 공기가 코안으로 훅 들어왔다.
“얻어 가는 주제에 말이 많냐.”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은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분한 듯하지만,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었던 호준은 아랫입술을 쑥 내밀며 등받이에 등을 푹 묻었다.
“지는.”
창문을 올려 닫으며 제우가 말했다.
“하긴, 나나 너나 소제우 덕분에 이런 데 가는 거긴 하지만.”
은성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나는 어제 밤잠도 설쳤잖아. 해진이가 오늘 어디 가냐고 자꾸 묻는데 적당히 둘러대느라 혼났어.”
아까의 시무룩함은 잊었는지 호준이 은성을 쳐다보며 재잘댔다. 그러다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제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길고 가는 다리를 꼰 채, 호준의 처진 눈을 쳐다보며 제우가 말했다.
“야, 그런데 가면 어때? 진짜 쭉빵한 언니들이 막 다가와서 몸 비벼대고 그래?”
“뭐 그런 경우도 있지.”
“진짜? 할렐루야!”
“근데 너랑은 상관없는 얘기일 듯.”
은성이 옆에서 또 태클을 걸었다. 호준은 몸을 앞으로 돌리며 은성을 흘겨봤다.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거든요.”
“눠한퉤 무뤄본 궈 와뉘궈둔여.”
은성은 턱을 앞으로 쭉 빼고 입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호준의 말투를 우스꽝스럽게 따라했다.
“야, 이 개색….”
“진정해, 진정해. 이제 다 왔다.”
병 주고 약 주듯 은성이 빙글거리며 말했다. 어느새 차는 호텔 주차장에 진입하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엔 ‘파라다이스 비키니 풀 파티’라고 쓰인 엑스배너가 줄줄이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은성이 망설임 없이 25층을 눌렀다. 25층은 이 호텔의 맨 꼭대기 층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울렸다. 호준이 바지를 더듬더니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렸다.
“왜 그래?”
“해진이야.”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지 호준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어휴, 야. 그럴 거면 헤어지든가. 왜 그러고 사냐.”
“얘 양해진 네 아버지 회사 다니잖아. 임원 자리라도 하나 확보하려고 그러나 보지, 뭐.”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제우가 툭 던지듯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밖의 오션 뷰가 잘 보였다.
“네, 네. 맞습니다. 회장님 아드님께서는 이해 못 하시겠지만요, 평범한 사람들은 기업 안에서 살아남기가 힘든 시대라서요. 이렇게라도 해야 하거든요.”
호준은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제우의 옆선을 바라보며 빈정댔다. 같은 남자인데도 짜증이 날 정도로 자꾸 보게 되는 화려한 옆선이다. 신은 불공평하기도 하시지, 호준은 애써 제우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옮겨 창밖을 바라봤다.
“그런데, 진짜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거야? 입장료가 만만치 않던데.”
은성이 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이 호텔 회장 아들이 납셨는데 무슨 입장료야. 당연히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지.”
호준이 별 소릴 다 듣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아니, 근데 무슨 학원에서 이렇게나 크게 풀 파티를 열어? 학원 이름이 분명….”
“파라다이스 폴댄스 학원. 내가 다 알아봤지.”
호준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폴댄스 업계에서는 꽤 유명하대, 전국에 지점도 많고, 연예인들도 많이 다니고. 여기가 본점인 모양이야.”
“와 씨, 폴댄스? 그 폴댄스 말이야? 그 왜 여자들이 비키니 입고 봉에 매달려 올라가는 그거?”
“이 새끼. 잘 아네? 그 폴댄스 맞아. 그 학원에서 주최하는 풀 파티니까 얼마나 대단하겠냐. 건질 거 많을 듯?”
은성과 호준이 재잘거리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25층에 다다랐다. 문이 열리자마자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음악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양쪽 귀로 달려들었다. 제우는 하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눈앞에선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과 웃통을 벗은 남자들이 속속 오른 방향으로 통통 튀듯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 오른쪽으로 쭉 가면 풀 파티가 열리는 수영장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호준과 은성은 벌써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다. 그 둘은 사람들이 가는 오른 방향으로 몸을 틀어 달려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저기요!”
그때, 앞에서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준, 은성, 제우는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잦아지자, 그 뒤에 테이블이 나타났다. 두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직사각형 모양 테이블의 오른쪽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가운데에서 가르마를 탄 까만 흑발 머리를 어깨 뒤고 넘기고 양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댄 여자의 눈이 번쩍 빛났다. 갈색 아이섀도를 옅게 바른 눈은 크고 끝이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서 까다로운 고양이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분홍색 입술은 일그러져 있었다. 뭔가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저, 저희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호준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쪽 세 분이요.”
여자의 눈은 셋을 뚫을 듯했다. 대놓고 노려보는 건 아니었는데, 치켜 올라간 눈매 탓인지 상당히 못마땅해 보였다. 테이블 위로 드러난 상체는 민소매 티 차림이었다. 가슴 바로 위까지 네모 모양으로 파인 스퀘어넥 디자인이라 그런지 가로 선이 뚜렷한 쇄골이 잘 보였다. 테이블 위에 받치고 있는 팔뚝은 하얗고 가늘어 그녀의 까다로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그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인지 호준과 은성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왠지 주눅이 들었다.
“예약하셨어요?”
“네?”
“예약하셨냐고요.”
“예약…요?”
“안 하셨으면 입장료 내시고, 팔찌 받아서 들어가세요.”
그제야 테이블 위를 살피니, 예약자 명단으로 보이는 A4 크기의 용지와 계좌번호가 쓰인 종이, 그리고 파란색의 팔찌 띠들이 보였다.
“어….”
허둥대는 호준의 말을 받아 은성이 말했다.
“저흰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는데요.”
은성의 말에 여자의 눈꼬리가 더 매섭게 올라가는 듯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의 기세에 은성은 살짝 주춤거렸지만, 이내 가슴을 펴며 말했다.
“저희, 회장님과 잘 아는 사이거든요.”
“회장…님이요? 무슨 회장님이요?”
여자의 눈빛은 그것이 향하는 무엇이든 뚫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아우라가 있었다.
“어, 그러니까….”
은성의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그사이에 용기를 찾은 호준이 말을 이었다.
“저희, 이 호텔 회장님이랑 아는 사이예요.”
“네?”
여자의 하얀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면서 한 번 더 대답을 들으려는지 테이블 쪽으로 왼쪽 얼굴을 갖다 대며 오른쪽 귀를 호준 쪽으로 내밀었다.
“뭐라고요?”
“저희 이 호텔 회장님이랑 아는 사이라고요!”
호준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들어 셋을 바라봤다.
“됐고요, 예약 안 하셨으면 입장료 입금하세요.”
“네?”
은성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여기 호텔 회장님, 몰라요? 소천욱 회장님이요. 저희 그 회장님과 잘 아는 사이라니까요?”
“네, 네. 그쪽이 지금 열 번째 회장님 지인 사칭인이시거든요. 들키고 망신당하지 마시고 이쯤에서 돈 내시죠.”
여자는 입장료와 입금 계좌가 쓰인 종이를 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와, 답답하네. 야, 소제우. 네가 말 좀 해봐.”
은성은 아까부터 고목나무처럼 옆에 서 있기만 한 제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의 눈빛이 그를 향했다. 제우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사선 위로 올라간 커다란 아몬드 같은 눈과, 가늘게 옆으로 찢어진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내려다보는 그 시선에서 앞의 남자 둘과는 다른 무거움이 느껴졌는지, 여자의 철통같던 눈빛이 약간 허물어졌다. 그때였다.
“어? 혹시 소 회장님 아드님, 맞으시죠?”
제우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까만색 모노키니를 입은 두 여자가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위에 하얀색 긴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고, 다른 여자보다 나이대가 좀 있어 보였지만 몸매는 훌륭했다. 홀터넥으로 끈을 목 뒤에 묶는 디자인이었는데, 가운데로 모인 가슴골이 넘칠 듯 풍만했다. 뒤의 여자도 비슷한 몸매였고, 머리 색깔도 분홍색이어서 한눈에도 일반인이 아닌 듯한 포스였다. 호준과 은성은 말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슴을 쳐다보는 둘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금 말을 건넨 여자가 제우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 파라다이스 폴댄스 학원 원장 폴리라고 합니다. 우리 학원 행사 때마다 소 회장님께 정말 도움 많이 받고 있어요. 아드님도 한 번 꼭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저희 풀 파티에 와 주신다는 얘기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폴리라고 소개한 여자는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양손으로 카디건을 잡아 가슴 앞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내리깐 눈 위로 굵은 쌍꺼풀 라인이 드러났다. 고개를 들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커튼같이 접힌 쌍꺼풀 아래의 커다란 눈매에서 섹시함과 정중함이 함께 느껴졌다. 크고 까만 동공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맑았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고급 바의 마담이 이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제우의 눈에는 그저 교태를 부리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와, 소 회장님 아드님이요? 이분이요? 그 말로만 듣던….”
그때, 여자의 뒤에 있던 분홍 머리의 여자가 제우 쪽으로 훌쩍 다가오며 물었다. 짙은 향수 냄새가 훅 끼쳤다. 요란한 화장 탓에 이목구비를 제대로 판별할 순 없었지만, 몸매는 대단했다. 양쪽 허리가 파인 까만 모노키니가 잘 어울리는 개미허리 위엔 풍만한 가슴이 얹혀 있었다. 안 봐도 은성과 호준은 입을 헤벌리고 그녀의 가슴을 보고 있을 것이다.
“체리 쌤, 이따가.”
여자는 왼쪽 뒤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체리 쌤이라고 불린 분홍 머리 여자는 아랫입술을 쭉 내민 채로 작게 ‘네.’라고 대답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어서 들어가지 않으시고 여기서 뭐 하셔요.”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에 제우는 말없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여자는 아직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다시 철통같은 까다로움을 되찾은 상태였다. 제우의 곁눈질이 향하는 곳을 한 번 쳐다본 여자는 뭔가를 눈치챘는지 재빨리 말했다.
“아, 입구에서 막히셨구나. 루리 쌤, 이분은 그냥 들여보내 주셔도 돼요. 이 호텔 회장님 아드님이세요.”
루리 쌤이라고 불린 여자의 올려다보는 눈과 사선 아래로 내려다보는 제우의 눈은 쉽게 서로를 피하지 않았다. 마치 먼저 시선을 돌리는 사람이 지는 기 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폴리의 말에 시선을 거두고 제 할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제우의 예상과는 달리, 여자는 그의 눈을 계속 쳐다봤다. 그 순간, 잔잔했던 제우의 마음에 잔물결이 일었다.
“어서 들어가셔요, 어서. 아! 옷 갈아입으셔야 하죠? 탈의실은 2503호 스위트룸을 이용하시면 돼요. 뒤에 계신 두 분은 각각 2501호, 2502호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키는 이미 객실에 꽂혀 있으니 그냥 문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객실은 저기 왼편으로 가시면 바로예요!”
폴리는 웃음기 넘치는 눈을 살짝 흘기더니 ‘실례합니다.’라며 고개를 까딱해 보이곤 풀장 쪽으로 사라졌다. 분홍 머리 여자는 테이블을 빙 돌아가 루리의 옆에 앉았다. 아마 두 사람이 같이 입장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체크하는 모양이었다. 호들갑을 떨며 빨리 가자고 등을 미는 호준과 은성에게 이끌려 스위트룸으로 향하면서, 제우는 한 번 더 루리를 돌아봤다. 그녀는 지금 들어오는 입장객들의 손목에 팔찌를 채워 주고 있었다. 아까 봤던 오만한 고양이 같은 분위기는 어디 가고, 사람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팔찌를 채워 주는 상대 남자의 손목에 살짝 닿는 순간, 남자 입장객의 얼굴이 붉게 익었다. 그걸 본 제우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쓴맛이 나는 것을 느꼈다.
.
“미쳤다, 미쳤어. 야, 이거 완전 드라마 아냐? 파티에 온 호텔 회장 아들이라니. 거기다가 잘생긴 거 봤어? 그 눈빛 봤어? 차가운 듯하지만 꽤 아련한 사연을 간직한 것 같이 우수에 젖은 듯한 그 눈빛? 그 남자 보고 나니까 태현 오빠가 오징어 같아 보여. 나 어떡하지?”
분홍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붉어진 양 볼을 손으로 감싼 체리는 제우를 본 감상을 멈추지 않았다. 치연은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계속해서 들어오는 입장객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팔에 팔찌를 채워 주고 있었다.
“일 좀 하지? 감상은 이따가 털어놓고. 얼른 마치고 이따 리허설도 해야 하잖아.”
입장객이 잠깐 끊긴 틈을 타 치연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체리는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이미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어휴….”
치연은 한 번 한숨을 쉰 후, 다시 몰려드는 입장객들을 상대했다.
흰 셔츠와 까만 면바지는 흔한 차림새였지만, 180cm는 거뜬히 넘을 듯한 날씬한 보디라인에 감겨 있으니 런웨이를 걷기 위해 대기 중인 모델의 착장 같았다. 이마를 덮고 있던 까만 앞머리는 하얀 얼굴과 잘 어울렸고, 내려다보던 눈은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가 있어 왠지 깔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계속 쳐다보기 힘든 차가움이 있었다. 체크 표시를 연상케 하는 브이라인의 턱 위에 다물려진 입술은 선이 얇고 붉었다. 치연이 일하는 회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미남자였다. 아니, 배우나 아이돌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듯한 외모였다.
치연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제우의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너무 노골적으로 신기하게 봤나.’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건,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28년 평생에 걸쳐서 본 남자 중 이렇게 생긴 남자는 없었다. 거기다가, 옆에서 다급하고 가볍게 재잘거리는 남자들에 비해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회장 지인을 사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공짜로 풀 파티장에 입장하기 위해 두 남자처럼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끝까지 뒤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서 있는 제우에게 치연은 자연스럽게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부산스러운 두 남자에 비해 조용한 그가 이상해서 계속 보다 보니, 생각보다 잘생긴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 편이 인식 순서에 맞을 것이다.
미리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