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에게 눈길이 갔다. 저도 모를 마음에 혼란스러워 애써 눈길을 돌렸다.

“야. 쟤 괜찮지 않아?”

우연히 옆에 앉은 여자애가 그 애를 콕 가르쳐 말했을 때 채희는 제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누구?”

괜스레 모르는 척 그 애에게 눈을 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여자애는 정확히 채희가 자꾸 눈길이 가는 아이를 가리켰다. 아, 나만 그에게 눈길이 가는 게 아니었구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아니란 걸 안 채희는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그가 다른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우리 쟤한테 말 걸어 보자.”

북적북적한 O.T였다. 들뜬 표정이 역력한 1학년 아이들이 잔뜩이었다. 그런 와중에 왜 저 애에게 눈길이 갔을까?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그랬던 것뿐이었을까? 자신을 잡아당기는 여자애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 채희는 그 애에게로 향했다. 아니, 뿌리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그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지도. 여자애가 쾌활하게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 애가 고개를 돌려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비틀어 뻘쭘하게 서 있는 채희를 바라보았다. 채희가 그 애를 바라보자 그 아이가 우연인지 그 여자애가 인사할 때가 아닌 자신이 바라볼 때 입을 뗐다.

“안녕.”

그게 별거라고 채희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난 이세민이야.”

그는 세민이라는 아이였다. 계속 눈길이 가고 다른 아이들도 인사를 건네보고 싶어 했던 아이. 그리고 자꾸 자신의 눈길 또한 사로잡은 아이.

***

그 이후로 세민이는 채희를 볼 때마다 인사를 건네왔다.

“오늘도 반갑다. 오채희.”

사회성도 좋은 걸까? 그래서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해주는 걸까? 그게 고마웠지만 벌써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친구들을 보자 그는 벌써 자신과 다른 분류가 된 것 만 같았다. 왠지 모를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응.”

친하다기에는 그냥 지나쳐 가는 사이였다. 인사를 하고 바로 다른 아이들 사이로 사라지는 세민이의 뒷모습을 채희는 바라만 보았다. 그의 뒷모습은 자신을 이 자리에 두고 자신은 더 괜찮은 아이들에게로 뛰어가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큰 키 때문이었나?”

자신이 세민이에게 눈길이 갔던 건 귀여운 외모와 달리 190에 가까워 보이는 큰 키 때문이 아니었나 잠시 생각했다.

“뭐가?”

O.T 때 만났던 여자애가 자신의 어깨를 툭 쳤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채희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근데 이세민 진짜 섭섭하네.”

세민이가 뭘 어쨌다고 섭섭하다는 건지. 그 여자애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는 먼저 인사한 법이 없다. 안 친한 애들한테는 싹 선 긋는 건가?”

“먼저 인사를 안 해?”

이상했다. 자신에게는 항상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던 아이였는데. 방금도 인사를 건네고 갔는데.

“네가 착각하는 거겠지.”

“착각? 아니야. 매번 그래. 나 이쪽으로 걸어오는데 아는 척 안 하고 쓱 지나가는 것 봐.”

자신에게는 항상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가는 세민이었다. 묘한 감정이 올라오는 듯했다. 하지만 인사가 뭐 별거라고. 은근히 들뜨려 하는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데 그 여자애는 말을 이었다.

“인기 있다. 이거지.”

인기 있다라. 맞다. 이세민은 벌써 인기 있는 아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아이가 자신에게 특별해질 리가 없다. 이건 단단히 김칫국이다. 오채희.

***

수업이 끝났다. 대학교 올라오면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줄 알았는데 썩 많은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안녕.”

책을 가방에 집어넣고 있는 채희에게 누군가 인사를 건네왔다.

“어. 안녕.”

세민이었다.

“다음 수업 우리 같이 듣는 것 같던데.”

알고 있었나? 그 또한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채희는 다시 가슴이 울렁이는 것만 같았다.

“우리 같이 가자.”

뭔가 걸리는지 채희는 세민이 평소에 같이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들이 저마다 떠들다가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왠지 안도 되었다.

“나랑?”

“응. 너랑.”

왜 나랑 같이 가자고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채희도 그러고 싶었다. 약간 머뭇거렸던 채희가 자리에 일어섰다. 더 환하게 웃으며 세민이 채희 옆에 섰다.

“넌 학교 끝나고 뭐해?”

“그냥 집에 가지 뭐.”

“그래? 그럼 언제 한번 나랑 같이 밥 먹자.”

예의 상하는 말일까? 하지만 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이라 채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좋은지 세민이의 입가가 더욱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

“진짜? 언제? 오늘 어때?”

언젠가 먹자는 소리인지 알았는데 오늘 당장 먹자고 하니 채희는 당황스러웠다. 예의상이 아니었나?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채희를 보자 세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오늘 안 되면 너 시간 될 때 먹자.”

자신의 태도가 싫다는 의미로 보인 걸까? 그것에 채희는 더 당황스러웠다. 그 사이에 어느새 강의실에 도착했다. 먼저가 갔던 친구 무리가 세민이를 불렀다. 손을 흔들며 세민이 그들에게 웃음 지었다.

“그럼 가봐.”

그렇게 말하곤 채희는 빈자리에 눈길을 보냈다.

“어?”

채희의 말에 세민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왜지? 채희는 인사로 작게 꾸벅 고갯짓을 하고 눈길로 찾았던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늘 웃기만 하는 그였는데 저런 표정도 짓고 참 다양한 표정을 지을지 아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곱씹어 보았다. 실망한 표정, 당황한 표정. 뭐에 실망한 걸까? 뭐에 당황한 걸까? 혹시 자신이 실수해서 자신에게 실망해서 그러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자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자기가 뭐라고 세민이의 표정 하나에 애가 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이 나가셨다. 책을 챙겨 넣는 채희 옆 의자가 드르륵하고 밀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세민 턱하고 앉았다.

“안 되겠다. 오늘 나랑 밥 먹자.”

“밥?”

“안돼?”

잠깐 머리를 굴리는 듯 보이던 세민이 또 대뜸 말했다.

“그럼 커피는 어때?”

“커피?”

그가 왜 그러는지 몰라 채희는 계속 되묻기만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안 돼?”

무슨 생각을 하는 세민의 눈이 땡글하고 한 바퀴 굴러갔다. 장난스러운 그 모습에 채희의 애타는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아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어? 웃었다.”

그도 전염이라도 된 듯 같이 방긋 웃어 보였다. 쑥스러운 듯 채희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럼 돼? 밥? 커피?”

자신감이 생겼는지 세민이 채희에게 더욱 얼굴을 들이밀었다. 얼굴을 든 채희가 미소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커피.”

세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자기에게 이렇게까지 다가오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아니 이제 뭐가 됐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마냥 기뻤다.

커피 마시러 매장에 들어섰을 때 채희는 세민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해야 안 어색할지, 무슨 주제를 꺼내야 세민이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한참 고민했다. 근데 매장에 들어서자. 누군가 격하게 세민이를 불렀다.

“이세민.”

“어? 세민이다.”

아이들의 알은체에 세민이 옅게 한숨을 쉬었다. 그와 단둘이 대화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굳어 있던 채희의 마음이 스르륵 풀리는 듯했다. 좀 허무하다고 할까?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중 한 남자애가 자기들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해 보였다.

“아까 쏙 빠져나가더니 결국 우리에게 오는구나. 이세민.”

곁눈질로 세민이 자신의 눈치를 쓱 보는 게 느껴졌다. 그게 신경 쓰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난 괜찮으니까. 친구들이랑 커피 마셔.”

그 말에 세민의 표정이 작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민이는 금방 웃음을 장착하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같이 온 사람이 있어서. 너희들끼리 놀아.”

남자애가 옆 테이블과 의자를 자신들의 테이블에 붙이더니 세민이를 자신의 옆에 앉혔다.

“거기 친구. 우리 알지? 수업 몇 개 같이 듣잖아?”

뻘쭘한 채희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친구네. 거기 앉아. 오늘 이세민 네가 자꾸만 뒤로 빼서 우리 섭섭했다.”

어느 자리에 앉을까 고민하던 채희는 어정쩡하게 여자애들 옆에 앉게 되었다.

“처음으로 말해보네.”

여자애가 싱긋하고 웃었다.

“어…….”

그리고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여자애가 고개를 돌려 세민에게 말했다.

“이세민 우리 섭섭하게 할 거야? 오늘 하루 종일 섭섭해.”

채희는 대답하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여자의 물음에 세민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가 섭섭한데?”

카페에 있는 내내 세민이와 친구들은 죽이 잘 맞는 듯 보였다. 같은 포인트에 모두 웃고 다 같이 맞장구도 쳤다. 참 재밌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할수록 자신과 오래 할 친구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

아이들과 헤어진 채희가 집에 들어왔을 때 언니가 먼저 집에 들어와 있었다.

“웬일로 좀 늦었다?”

“응.”

진이 빠진 듯 채희가 언니가 앉아 있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논거 아니야? 왜 이렇게 축 처져있어?”

“그냥. 좀…….”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왜? 친구들이랑 무슨 일 있었어?”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TV에 눈을 떼지 않는 채 언니 소희는 계속 물어왔다.

“언니는 그런 친구 있어?”

“무슨 친구?”

“나랑 어울리지 않겠구나 싶은 친구.”

“있지.”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안도감이 들었다. 자신보다 대학 생활도 오래 해본 언니가 해답을 줄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어떻게 해?”

“그냥 안 어울려.”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다르게 명쾌한 대답이었다.

“근데 친해지고 싶으면?”

언니가 드디어 고개를 돌려 채희를 바라보았다.

“나랑 안 어울리는 친구랑 왜 친해지고 싶어?”

그러게 왜 친해지고 싶을까? 세민이 친구들이니까? 자신도 모르게 세민이를 떠올린 채희가 말을 더듬었다.

“어? 그…… 그야. 그냥, 그런 마음이 들 때 있잖아.”

“그거 다 환상이야. 그런 애들은 그냥 안 친해지는 게 나아.”

단호한 언니의 말에 채희는 세민이의 친구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 친구들하고는 확실히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재밌는 아이들이었지만 자신과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다만 세민이 하고는…….

“안 맞는 애하고 친구 하려면 노력하는 거, 그게 은근 속 갉아먹는 짓이거든.”

속을 갉아먹는 짓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수긍은 갔지만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채희는 더는 말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