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택은 초조한 얼굴로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녹화시간까지 불과 30분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당황한 표정의 기택은 유일한 생명줄인 핸드폰을 들어 1시간 전부터 줄기차게 눌러대던 번호를 다시 한 번 눌러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상대방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 기택의 입에선 체념의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런 기택을 바라보고 있던 스태프들의 한숨 소리도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너무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유명배우라지만…….” '스태프 중 한 남자의 푸념에, 옆에서 소품들을 점검하던 여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서라. 그런 말하다 들키면 우리 같은 사람 목은 바로 끽, 이라고.” '“나 참, 돈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어?” '그때 찬물을 끼얹은 듯 살벌한 녹화장 안으로 당사자인 령하가 잠시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는 모양새로 태연스럽게 걸어 들어왔다. '“죄송해요. 좀 늦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