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제목: 개 주인을 찾습니다.]

대형견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발견 장소: 서호시 가산면 연화리 바닷가

-발견 일시: 5개월 전 1월 11일 새벽.

-신체 사항: 189cm, 82kg, 근육질 몸매, 얼굴 개잘생김

-성격: 난폭, 포악함. 주인에게만 애교 많고 순종적임.

-특이점: 기억을 모두 잃음.

이렇게 생긴 대형견의 주인을 아시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사례비는 협의 가능)

***

노트북 화면을 굽어보던 남자의 눈이 커졌다.

“내가 개새끼예요?”

“댕댕아, 그게.”

소율이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남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인터넷에 이런 글을 썼으니, 화가 났을까?

“네가 지우라면 지울게. 화 많이 났어?”

“아니요. 나 개 맞잖아요.”

남자가 스르륵 주저앉더니, 개처럼 두 팔을 땅에 짚고, 엎드렸다.

“무섭게 왜 그래?”

“개니까 네발로 기어야죠.”

소율을 향해 엉거주춤 기어간 남자가 소율의 홈웨어 원피스 아래로 머리를 박았다.

“너 뭐야. 비켜.”

“가만히 있어요. 개새끼가 주인 좀 핥겠다는데.”

힘껏 남자의 머리를 밀쳐 보았지만, 역시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뒷걸음질조차 칠 수 없게 남자의 두 손은 소율의 다리를 잡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가 끌어 내린 팬티가 소율의 무릎 사이에 걸렸다.

곧이어 다리 사이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퍼졌다.

따뜻하고 촉촉한 혀로 할짝할짝 핥아대더니, 어느새 뾰족하게 세운 혀끝으로 민감한 곳을 공격해댔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았다.

“흐으, 댕댕아. 그만.”

“뭘 그만해, 이렇게 젖어 놓고.”

소율의 다리 사이를 핥고 있는 이 남자는 소율이 임시 보호 중인 대형견, 아니 사람이다.

소율이 기억 잃은 대형견을 주워다 기른 것도 어느덧 5개월째.

남자를 처음 만났던 그날 아침은 유난히도 추웠다.

#1. 대형견과의 첫 만남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날만큼은 아침 산책을 건너뛰고 싶었지만.

소율이 모시는 상전인 몰티즈 ‘똘이’는 하루라도 밖에 나가지 않으면 난리를 치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소율의 외투 중 가장 따뜻한 하얀 롱패딩을 입었지만,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저만치 앞서 나가던 똘이가 왕왕 흥분하며 짖어댔다.

“똘아 너, 왜 그래?”

똘이를 쫓아가던 소율의 발이 멈칫했다.

‘헉!’

축 늘어진 시커멓고 기다란 형체, 저건 분명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겠지?

머리털이 쭈뼛 섰다. 시체를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신고만 하고 돌아가고 싶은데, 똘이는 그 주위를 배회하며 맹렬하게 짖어댔다.

그게 꼭, 아직 숨이 붙어 있으니 빨리 오라고 부르는 듯해서 소율은 용기를 쥐어짜 그에게 다가갔다.

검정 슈트 차림의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조각 같은 얼굴은 파랗다 못해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와중에 남자의 얼굴에 잠깐 넋을 놓았다. 사람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깎아 놓은 듯 생겼을까?

다행히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가슴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봐요, 정신 들어요? 정신 차려요.”

소율이 남자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남자의 뺨을 가볍게 때렸다. 뺨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꾹꾹 119를 눌러, 신고부터 했다.

신고는 했고, 이제 뭘 해야 할까?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저체온증 응급처치 영상이 떠올랐다.

일단, 물에 젖은 옷부터 남자의 몸에서 벗겨야 할 것 같다. 그나마 남은 체온마저 모두 앗아 가기 전에.

소율은 서둘러 재킷을 벗겨내고,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헤쳤다.

마침내 드러난 남자의 상체는 마치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쩍쩍 갈라진 복근, 적당한 부피감을 자랑하는 가슴 근육, 바지 라인 위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선명한 치골근까지.

촌각을 다투는 상황만 아니라면, 넋 놓고 남자의 몸을 감상했을 것이다. 소율은 패딩을 벗어 남자의 몸에 덮었다.

그리고 코 밑에 손가락을 대어 보니,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미약한 숨결이 느껴졌다.

소율은 바로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남자의 턱을 잡아 젖혀 기도를 확보하고 코를 막은 뒤 크게 숨을 불어넣었다.

인공호흡을 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남자의 힘없는 눈꺼풀이 열렸다.

“이봐요? 정신 들어요? 저기요, 저기요.”

“……추, 추, 추워요.”

보랏빛으로 변한 남자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패딩은 덮었지만, 매서운 겨울 칼바람에 노출된 맨살이 얼마나 추울까?

그렇다고 티셔츠마저 벗어 덮어 줄 순 없고.

어떻게 해야 남자를 좀 더 따뜻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소율이 남자의 몸 위에 엎드렸다.

순간, 정신이 꺼져 가던 남자가 소율을 꽉 끌어안았다. 제 몸을 덮은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도 못 쉴 정도로 남자에게 세게 안긴 소율은 그렇게 제 체온을 나눠 주었다.

어느덧 쿵… 쿵… 느리게 뛰던 심장이 조금씩 제 속도를 찾아갔다.

눈사람처럼 차가웠던 남자의 살결도 조금씩 온기를 되찾아갔다.

“저기요. 눈떠요. 정신 잃으면 안 돼요.”

“…추, 추워요. 사, 살려 주세요.”

“조금만 참아요.”

구급차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남자의 정신 줄을 붙들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름이 뭐예요? 몇 살이에요? 하는 일은? 취미는? 여기 살아요? 시시콜콜한 것들을 끊임없이 질문했다.

물론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러는 사이,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쪽 살았어요.”

병원으로 이송된 남자는 바로 응급처치를 받았다.

물에 빠진 사람치고 의외로 폐는 깨끗했으나 저체온증이 심각했다.

그나마 소율이 응급처치를 잘한 덕에 살았다고,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되었어도 남자는 목숨을 잃었을 거라며,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 했다.

가장 심각한 건 손가락이었다. 어쩌다 이런 상처를 입었는지 손가락 끝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긴급 봉합 수술을 위해 소율이 얼떨결에 사인을 하고, 남자의 보호자가 되었다. 남자의 주머니엔 핸드폰도 지갑도 없었기에 소율은 기꺼이 그의 수술비를 대신 결제했다.

남자가 깨어나면 병원비야 당연히 돌려받을 테고, 그 이상의 보상을 기대하며.

소율이 기대한 보상은 취업 시 써먹을 수 있는 업적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일을 자기소개서에도 넣으면? 인성 점수만큼은 만점이지 않을까.

***

서호 종합 병원, 8인실 병동의 구석 자리에 누운 남자는 꼬박 24시간하고도, 반나절을 더 잠만 잤다. 바닥까지 끌어써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이라도 하듯.

소율은 하루가 지나도록 깨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보며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의사는 그냥 깊게 잠든 거라 했다.

드디어 남자가 눈을 떴다. 병원에 실려 온 지 이틀 만이었다.

‘여긴 어디? 내가 여기 왜 누워 있는 걸까?’

느릿느릿 눈알을 굴리던 남자는 자신이 딱딱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 깨어나셨네요?”

소율은 남자의 정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기에 남자가 깨어난 게 이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남자는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소율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여자인데, 왜 날 보며 환히 웃고 있는지.

“나 기억나요?”

소율의 물음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그쪽 발견했어요.”

“저를요? 어디서요?”

바싹 마른 남자의 입술 사이로 낮고 굵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닷가죠. 물에 빠졌잖아요.”

“제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떠올려 보려던 순간, 남자는 찌릿한 두통을 느꼈다. 뾰족한 바늘로 누가 뇌를 콕콕 쑤셔대는 느낌이었다.

“윽!”

“왜 그래요? 어디 불편해요?”

그러고 보니 청아한 저 목소리 어디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봐요. 이봐요. 정신 차려요.’ 하던 목소리가 설핏 떠올랐다.

“제가 그쪽 살렸잖아요. 나 기억 안 나요?”

뺨을 때리고, 흔들어 깨우고, 꼭 끌어안은 채 종알종알 끊임없이 떠들고, 키스도 했던 그 여자?

“기억납니다.”

기억난다는 말에 소율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조금만 늦게 발견됐어도 정말 큰일 날 뻔했대요.”

소율의 생색에 남자가 진지하게 답했다.

“그럼 당신이 제 생명의 은인이시군요.”

“그런 셈이죠.”

소율이 살짝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깨어나셨으니 전 가보겠습니다.”

외투를 입고 갈 채비를 마친 소율이 배시시 웃으며, 계좌번호를 쓴 메모지를 건넸다.

“이거 제 연락천데, 나중에 가족 찾으시면 연락 주세요.”

공손하게 인사한 소율이 병실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왜요?”

“제 가족을 좀 불러 주시겠습니까?”

“네? 제가 그쪽 가족을 어떻게 알아요?”

남자가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모르는데요… 내 가족이 누군지.”

“네?”

짧은 침묵이 흘렀고, 소율이 헛기침을 했다.

“나 기억난다면서요.”

“네, 당신만 기억납니다.”

“……?”

“난 누구입니까?”

“……!”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남자의 황당한 질문에 소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정말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예.”

불과 몇 분 전 의사에게 기억상실증이란 말을 함께 들었건만, 도저히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기억상실증이라니, 드라마도 아닌 현실에서 그런 일이 흔하냐고.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남자는 목숨을 구한 대신 기억을 잃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사고 충격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했다.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나요?”

“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납니다.”

남자의 머릿속은 컴퓨터 본체로 치자면 깨끗이 포맷된 상태였다.

“그럼,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 아무거나 말해 봐요.”

눈을 지그시 감은 남자는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기억의 파편들을 붙들어 보려 애썼다.

남자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뭔가 떠올랐어요?”

“저한테 키스하셨죠?”

남자의 말에 소율이 순간, 얼굴을 붉혔다.

“키스라뇨. 인공호흡이거든요?”

“아, 천사의 키스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었군요.”

소율이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개처럼 킁킁대며 소율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맞아요. 바로 이 냄새였습니다. 천사의 향기.”

“무슨 소리예요?”

“너무 추웠습니다. 전 제가 얼어 죽은 줄 알았죠. 천사가 폭신한 날개로 저를 덮어 줬거든요. 천사의 날개에서 나던 향긋하고 포근한 향, 바로 이 냄새였습니다.”

소율이 남자에게 패딩을 내밀었다. 천사의 날개처럼 새하얀 패딩이었다.

“그쪽이 덮었다는 거 제 패딩이에요.”

“아, 그랬군요. 참 따뜻했는데. 천사의 품이 아니라 당신의 품이었다니.”

“정확히는 품이 아니라 패딩이죠.”

남자는 무언갈 떠올리려는지 살짝 미간을 구겼다.

“아니요. 패딩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꼭 껴안고 키스를 나눴던 게 기억납니다.”

남자의 말에 주변 환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소율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