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독 들기(成年禮)

마을 입구를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는 당산나무 앞이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이 담장처럼 둘러싸서 만든 둥근 원의 한가운데 크기가 서로 다른 돌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들독이었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성년례 날, 열다섯 살이 되는 사내아이들만을 위한 의식이었다. 들독은 둥글고 길쭉한 원형 모양으로 생긴 돌덩이였다. 평소에는 당산나무 옆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리를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기도 하고 개구쟁이 아이들이 타고 넘는 놀잇감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성년례가 열리는 날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아침부터 여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정성스럽게 목욕을 시키듯이 쌓인 흙먼지를 벗겨내면 마을 어른들이 새로 꼬아 만든 동아줄로 몸을 감아 치장을 해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성년례를 주관하기 위해 궁에서 파견된 관리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대백제 덕솔(德率) 은성이다. 오늘 성년례 의식의 주례자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행사를 시작할 것이니 들독 들기에 나서는 아이들은 앞으로 나오너라.”

덕솔의 말에 열 명 남짓한 사내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덕솔의 눈길이 그 아이들의 몸을 차례로 훑고 지나갔다.

“모두들 알고 있는 것처럼 들독 들기는 ‘땅 뜨기’, ‘가슴에 얹기’, ‘뒤로 던지기’ 세 가지가 있다. 앞에 놓인 돌은 그 크기에 따라 소동돌, 진서돌, 장사돌로 나뉜다. 소동돌은 어린아이들도 들 수 있으니 너희들은 당연히 진서돌을 들어야 합격이다. 진서돌의 무게는 쌀 한 가마니와 비슷하다. 으뜸으로 통(通)을 받은 아이의 집에서는 진서턱을 내야 한다. 누가 먼저 나서 보겠느냐?”

덕솔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을까 아이들이 딴청을 부리듯 눈빛을 피했다.

“그렇다면 서 있는 순서대로 시작한다. 맨 앞에 너부터 나오너라.”

지목을 받은 아이가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름이 무엇이냐.”

덕솔이 물었다.

“연 돌입니다.”

아이가 대답했다.

“연씨(燕氏) 성을 가졌구나. 명부에 기록해 두어라.”

덕솔이 옆에 붓을 들고 서 있는 방좌(方佐)에게 명했다.

“자! 연씨 성의 명예를 걸고 도전해 보거라.”

덕솔이 아이의 등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아이의 얼굴은 걱정으로 이미 반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왜소한 체구가 누가 보아도 혀를 차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기권은 인정 안 한다. 포기한다면 관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엄벌을 내릴 것이니 최선을 다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보아라.”

덕솔이 보아도 아이는 들독을 들 수 없을 만큼 유약해 보였지만 다른 아이들이 요령을 피우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은 것이었다. 마른 흙을 한 줌 집어 손바닥에 문지른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돌을 끌어안았다.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힘을 주고 있었지만 진서돌은 미동도 없었다.

“불통이오!”

방좌가 아닐 부(不)자가 선명한 목판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아이고!”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식이 일었다. 돌 뜨기에 실패한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방좌가 소리쳤다. 아이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돌 뜨기에 도전했다. 다행히 들어 올린 아이도 있었지만 실패한 아이들이 더 많았다.

“올해는 유난히 아이들이 약해 보이는구먼.”

지켜보고 서 있는 덕솔의 미간에 잔주름이 잡혔다.

“꾀를 부리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제대로 힘을 쓰는 아이도 없는 듯 보여 걱정입니다. 이 고을에서는 올해 병사로 뽑힐 재목은 안 보입니다.”

방좌가 덕솔을 보며 불통을 받은 아이들이 많은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도 되는 양 안절부절못했다.

“아직 두 명이 더 남았다. 남은 아이들은 제법 쓸 만해 보이는구나.”

덕솔의 시선이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향했다. 둘 중 하나는 덩치가 크고 힘도 세 보여 ‘뒤로 던지기’까지 해낼지는 의문이었지만 무난히 통은 받을 것 같았다. 다른 하나는 몸피는 육중하지 않지만 제법 단단하고 강단이 있어 보였다. 덩치가 큰 아이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

“진가모(眞嘉謨)입니다.”

아이가 망설임 없이 이름을 댔다. 자신이 있어 보이는 몸짓이었다.

“너라면 진서돌 뿐만 아니라 장사돌도 들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구나. 구경꾼들이 올해는 진서턱을 못 먹을까 봐 미리 실망한 표정이니 네가 힘 좀 써 보거라.”

덕솔이 말했다.

“어머니가 진서턱 준비는 미리 해놓으신다고 하셨으니 덕솔 어르신은 염려 놓으시지요.”

아이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어요.”

갑자기 구경꾼들 사이에서 여인 하나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

“어미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받아온 염주다. 이것이 너에게 힘을 줄 것이다. 미리 땅에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여인은 손목에 감고 있던 염주를 진서돌 위에 경건하게 올려놓고 합장을 했다.

“걱정 마시라니까 뭘 염주까지 받아오셨어요. 금방 기뻐서 춤추게 되실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고 계셔요.”

가모가 어머니의 등을 가볍게 밀어 구경꾼들 속으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금방 돌을 들어 올리지 않고 사람들 속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눈치였다. 키가 큰 어른들 틈에서 까치발을 하고 손을 흔들고 있는 순이가 보였다.

‘그러면 그렇지. 약속을 지켰네.’

가모의 얼굴에 이내 웃음기가 떠올랐다.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어제 저녁나절 만났을 때 수줍게 내밀던 머리 끈이 만져졌다.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가모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움직인다. 움직인다.”

“영차! 영차!”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점점 커졌다. 가모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순간 들독이 가모의 무릎 위에 얹혀졌다.

“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한 가모가 크게 힘을 한번 주더니 돌을 가슴까지 끌어 올렸다.

“자! 이제 한번 남았다. 가모야,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어머니의 주먹 쥔 손이 아들과 함께 힘을 주느라 벌겋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돌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당황한 듯 가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머니도 순이도 실망시킬 수 없는데….’

방심한 탓이었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생각해 초반에 힘을 아끼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돌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싶었는데 그것도 아주 잠시, 무게를 이기지 못 한 가모가 돌을 놓아버렸다.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한번 바라보더니 땅바닥에 떨어진 염주를 주워 들고 아이들 옆으로 돌아갔다.

“아이쿠! 아깝다. 조금만 더 올리면 뒤로 던질 수 있었는데….”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식이 일었다.

“그래도 ‘가슴에 얹기’까지는 해냈잖아요. 오늘 참가자들 중에 제일 잘했구먼. 보아하니 뒤에 남은 아이는 체구도 가모보다 작고 살집도 없어 보이는 것이 잘해야 ‘땅 뜨기’ 정도 하게 생겼네요. 가모가 으뜸입니다. 진서턱 낼 준비나 하면 되겠어요.”

함께 응원을 하던 여인이 가모 어멈을 다독였다.

“아마 내년에는 그 집 백기도 열다섯이 되지?”

가모 어멈이 물었다.

“그래서 더 남 일 같지가 않아요. 들독을 들면 어른 품삯도 받고 남들 눈에 우셋거리야 안 되겠지만 통을 받아도 걱정인 것이 전장에도 나가야 하고, 성벽 쌓는 일에도 불려 가야 하고 점점 험한 일들만 기다리고 있으니….”

백기 어멈의 낯빛이 금방 어두워졌다.

“…몇 년 전 왕실에 흉사가 있고 나서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언제 또 전쟁이….”

“쉿.”

갑자기 가모 어멈의 손이 백기 어멈의 입을 막았다.

“함부로 입 놀렸다가 덕솔 어르신이 들으면 경을 칠 것이니 조심해야 해.”

“덕솔 어른 댁도 과년한 아들이 있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올해는 그 댁 자제분도 나올 줄 알았더니 안 보이네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말게. 조정 귀족의 자제들이 언제 들독 들기에 나오는 거 봤나? 높은 담장 안에서 따로 잔치를 열어 준다고 들었네. 우리 같은 천것들 하고야 천양지차(天壤之差)지.”

가모 어멈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모 어멈은 좋겠네. 얼굴까지 들어 올렸으니 ‘뒤로 던지기’까지 한 것이나 진배없지 뭐. 오늘 오랜만에 고기 좀 뜯어보는 건가? 진서턱으로 무슨 음식이 나올지 벌써 궁금해지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진서턱에 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이 누구인지 알기에 기대감이 조금도 없는 까닭이었다. 기적처럼 ‘뒤로 던지기’까지 해낸다 해도 진서턱을 낼 수 없는 집안의 아이가 남아 있었다.

“아직 안 끝났소. 한 명 더 남았으니 조용히 하시오.”

방좌(方佐)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까지는 진가모가 으뜸이구나. 마지막 남은 한 명은 얼른 앞으로 나오너라.”

덕솔이 줄의 끝을 보며 말했다.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마지막 남은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가 천천히 걸어 나와 진서돌 앞에 섰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방좌가 물었다.

“성은 없사옵고 그저 도하라고 불립니다.”

“성이 없다? 아비가 없느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신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셨고 저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혼례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하시고 전쟁에 나가셨기에 가문의 인정을 못 받아 성씨조차 물려받지 못했다 들었습니다.”

도하가 담담히 말했다.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고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숨길 필요조차 없었다. 사람들의 기대감이 모두 진가모에게 쏠린 이유이기도 했다. 장사돌을 든다고 해도 그는 진서턱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그래서 네 미천한 신분이 부끄러우냐.”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덕솔의 시선이 찌를 듯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부끄러워한 적 없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았지만, 누구에게 해를 입힌 적 없고, 악행을 저지른 적도 없습니다. 부친이 전사하셨지만, 나라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한평생 어렵게 사신 어머니를 그저 편안하게 모시고 싶을 뿐입니다.”

백제의 4품관직 덕솔인 자신의 앞에서 기죽지 않고 또박또박 할 말을 다하는 아이를 보며 은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마음에 백제를 향한 원망이 가득하구나. 지금의 어려운 처지가 모두 나라의 덕이 부족해서 그리되었다고 들리는데 맞느냐.”

덕솔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억지십니다. 아직 성년례도 거치지 못한 아이를 상대로 덕솔 어르신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저는 그저 저의 신분을 물으셔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해 드린 것뿐입니다.”

도하는 혹시라도 자신도 모르게 말실수를 한 것이 있나 되새겨 보았지만 틀린 말을 한 것은 없었다. 부친이 백제를 위해 싸우다 전사를 하셨지만, 어머니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관리 입장에서는 귀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아시면 걱정하실 일을 만들었구나.’

도하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게 조금도 눌리지 않고 할 말 다하는 그 기개가 아주 마음에 든다만 어디 힘도 그렇게 쓸 줄 아는지 궁금하구나. 진가모처럼 ‘가슴 얹기’까지 성공하지 못한다면 입만 살았다는 증거이니 백제에 불평불만을 품었다는 죄를 물어 네게 벌을 내릴 것이다. 나라에 대한 불평불만은 언제든지 역모와 이어질 수 있다. 억울한 누명 쓰기 싫다면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이들의 성년례 자리에서 역모를 말하는 덕솔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말이 과했다는 눈치였다.

“역모라니요. 저는 사실을 고했을 뿐 불만을 품은 적은 없습니다. 들독을 들지 못하면 벌을 내린다는 법이 있다는 말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명백한 억지요, 트집이십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덕솔 어르신의 눈에 들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이니 더 큰 사달이 나기 전에 진서돌을 들어 보이고 돌아가겠습니다. 꾀를 부려 일부러 불통을 받지는 않을 것이니 심려 놓으셔도 됩니다.”

도하도 지지 않고 단호하게 맞받았다.

“억지? 네가 진서돌을 들지 못하면 어른으로 인정받기 싫어 꾀를 부리고 관을 기만한다고 나는 생각할 것이다. 내 말이 억울하다면 들독을 들어 넘겨라.”

덕솔의 어조는 차가웠다.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깐 멈추어라.”

갑자기 덕솔이 무슨 변덕이 생겼는지 진서돌 앞에 다가선 도하를 만류했다.

“이 아이가 반드시 들독을 들겠다고 내게 호언장담을 했다. 벌을 면하려면 부디 그래야 하겠지. 내 가엾은 생각이 들어 작은 호의를 하나 베풀까 한다. 앞에 보니 진가모 어미는 염주를 들독에 올려 아들을 응원하던데 자칫 잘못하면 돌을 들어 올려도 벌을 면하기 어렵게 된 이 아이를 위해 돌독에 무언가를 올려 응원해줄 사람은 없는가? 보아하니 이 아이의 어미는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은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혹시라도 아이의 어미가 왔으면 앞으로 나오라.”

덕솔이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일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서로서로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덕솔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애석하게도 네 편은 아무도 없구나. 그것도 네 복이니 어쩔 수 없지. 해 떨어지겠다. 그만 시작해 보거라.”

덕솔이 말했다.

“잠시만이요.”

갑자기 무리 중에서 앳된 소녀 하나가 앞으로 달려 나왔다. 차림을 보아하니 귀족 집안에서 심부름을 하는 몸종 아이 같아 보였다. 손에는 진달래를 닮은 연분홍 머리 끈이 들려있었다.

“제 것은 아니고… 모시는 아가씨께서 대신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부디 들독을 꼭 들어 올리셔서 벌을 면하기 바란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소녀는 머리끈을 들독 위에 올려놓더니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도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 끈을 돌 위에 놓는 대신 자신의 손목에 휘감았다. 흙을 한 줌 집어 든 도하가 자신이 들어 올릴 돌에 곱게 분칠을 했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양손에 충분히 바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발을 어깨너비로 벌려 자신의 다리 사이에 돌을 가두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둥근 돌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무게를 가늠하듯 돌을 양옆으로 움직여본 도하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들어 보겠습니다.”

덕솔을 향해 도하가 허리를 굽혔다. 어머니 모르게 혼자 무술을 연마하면서 비슷한 모양의 돌을 캐다가 여러 번 연습을 했었다.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 가까이에 다리를 붙인 도하가 손을 돌 밑으로 넣었다. 깊게 호흡을 하고 단전의 힘을 이용해 단번에 무릎까지 들어 올렸다. 주시하고 있던 덕솔의 표정이 살짝 꿈틀거렸다.

“얍!”

기합 소리와 함께 돌이 이번에는 순식간에 가슴까지 올라갔다.

‘힘을 숨기고 있었나?’

자신보다 가벼운 도하의 몸놀림에 지켜보고 있던 가모가 깜짝 놀랐다.

“저러다 ‘뒤로 던지기’까지 하는 것 아니야?”

“이게 무슨 일이래? 가난한 집에서 먹을 양식도 없었을 것인데 무엇을 먹고 저리 힘을 쓰는 것이지?”

“듣기로는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산삼이라도 먹은 모양이네.”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조용히 하시오.”

방좌의 호령에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 절대로 눈에 띄는 일은 하지 말거라.’

도하의 뇌리에 어머니의 음성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더 힘을 쓰면 ‘뒤로 넘기기’까지 가능할 것 같았다. 어머니의 당부와 자신의 생각 사이에서 도하가 잠시 망설였다.

“거기까지가 끝이더냐. 뒤로 넘기기는 역시 안 되는 모양이구나. 다행히 벌은 면한 것 같으니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

지켜보고 있던 덕솔이 인심 쓰듯이 말했다. 도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돌을 들고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뒤로 넘기기’는 제게 무리입니다. 억지로 힘자랑하려다 제 어깨만 다칠 수 있으니 이쯤에서 포기하겠습니다.”

도하가 담담하게 말했다.

“뒤로 넘길 자신이 없다? 진심이더냐.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덕솔이 도화를 자극했다.

“이미 제가 진서돌을 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통과가 목적이었을 뿐, 천하장사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니 지금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보자면….”

도하가 갑자기 앞에 놓인 돌독 위로 사뿐히 올라섰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빙긋 웃더니 돌 아래로 내려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덕솔 어른도 내 발밑에 계시니 이것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