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자리 잡은 야영장엔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모두들 잠든 고요한 밤, 내리는 눈이 쌓이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주변은 적막했다. '그 고적함을 틈 타 아담한 천막의 입구가 슬며시 젖혀졌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비교적 크게 느껴지자 은밀한 나들이를 준비한 작은 몸뚱이가 ‘움찔’했다. 사락사락, 점점 더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작은 그림자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이라 판단을 내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밤 나들이를 준비한 이 작은 그림자의 주인은 대천라국의 천자, 해륜강과 영혜황후 청수련의 말녀인[末女] 온경공주 해연지였다.'올해 열한 살인 연지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많이 약해 부황과 모후의 지나친 관심과 염려 속에서 자라 왔다. 그 지나친 걱정은 매년 열어 온 사냥 대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지는 잠시 한낮의 일을 떠올렸다.'혈색 좋은 또래의 귀족 여아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으며 눈 장난을 쳤다.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그 목소리들이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연지는 자신도 그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겉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