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세상을 잠식한 시간, 반갑지 않은 친구의 초대를 받은 연우의 걸음이 무거웠다. 한때는 피붙이만큼이나 가깝게 지냈었는데 언제부턴가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친구는 타인보다 더 냉정하고 무서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만남을 청해오자 꺼림칙한 마음에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연우는 그냥 보고 싶어서 라는 만남의 이유 뒤에 묘하게 끌리는 친구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집에서 보자는 친구 때문에 낯선 건물로 들어서던 연우는 밝은 실내의 조명에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미간 사이에 약한 주름을 잡은 연우는 친구가 가르쳐준 주소로 가기 위해 올라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곤한 눈가를 꾹꾹 눌렀다. 뻑뻑하게 감긴 눈 안으로 급하게 뛰어 나오는 그녀를 잡지 못하고 망연히 서있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연우는 요즘 들어 남편인 민성의 얼굴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연우가 운영하는 공방 겸 작은 전시관에서도 틈만 나면 파고드는 얼굴은 사랑하는 태인이 아닌 이름뿐인 남편 민성이었다. 그건 얼마 전 두 사람의 언쟁 끝에 민성의 공허한 눈빛을 본 후로 더 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