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혼 계약

똑똑.

정갈한 소음이 어둠을 갈랐다.

연차 이틀째.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누군가 병문안을 왔나 보다. 사실 몸이 아팠던 건 아니고, 오늘 출근을 안 한 건 어제 온종일 우느라 눈이 부어서였는데.

의욕이 없어서 방문객을 맞이하기가 힘겨웠지만, 더 기다리게 하면 오히려 걱정이 심해질까 봐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내 걱정에 집까지 방문해 주다니 누군진 몰라도 감동적이다.

“누구세요?”

오늘 말을 한마디도 안 했더니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꾀병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문 반대편의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발렛 경. 에스퍼 태래시 로드리만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이 나를 왜 찾아왔지?

이틀간 내가 출근을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

이능력자(에스퍼와 가이드를 함께 부르는 말)를 위한 숙소는 마치 현대식 아파트처럼 여러 세대가 한 건물에서 살 수 있도록 지어졌다. 나는 황궁 밖에 따로 집을 마련하지 않고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응접실이 없어서 거실 한쪽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나름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창 앞에 마련한 휴식 공간이다.

이 사람이 나를 왜 찾아왔지……. 제발 후줄근한 게 아니라 아파 보여야 할 텐데….

뜸을 오래 들이길래 느긋한 척 찻잔에 눈을 박고 있었더니 드디어 앞에 앉은 조각상의 입이 열렸다.

“이틀간 휴가를 내셨다고 들었는데 아프신 줄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내일 찾아뵀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래서 빈손으로 온 거구나.

굉장히 송구스러워 보이는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잘생긴.

“괜찮습니다. 많이 좋아져서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하려고 했으니까요. 늦은 시간에 방문하실 만큼 중요한 일인가요?”

따뜻한 차를 마시니까 갈라져 있던 목소리가 조금 돌아왔다.

태래시 로드리만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가, 이내 매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저에겐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말씀드리지요.”

그리고 단숨에 내뱉었다.

“발렛 경, 저와 결혼 계약을 맺지 않으시겠습니까?”

…….

…뭐…….

…….

‘뭐, 뭐뭐, 뭐뭐뭐뭐라는 거야, 이 ‘태재앙’ 태래시가?’

뭐라는 거야!

‘뭐라는 거냐고!’

아닌 밤중에 이 미친 발언이 날벼락처럼 세상에 꺼내졌는데도 밤은 계속 깊고 고요하기만 했다.

＊

전생을 기억한 건지, 아니면 전생의 내가 그날 이 몸에 들어온 건지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전생을 떠올렸다.

전생의 나는 직장 생활을 하던 30대의 1인 가구 여성이었고 이름은 송안나. 아마도 음주운전이 아니었을까 싶은 차에 치여 사망했다.

현생의 나는 막 스무 살이 된 왕실 소속 3개월 차 신입 가이드였는데, 퇴근 후 저녁 식사를 깨작이다가 ‘아, 라면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전생을 기억해냈다.

난 아무런 정체성의 혼란 없이 두 명의 나를 받아들였다. 상황은 현생의 내가 전생을 떠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내 취향이나 성격, 정체성이 전생의 나를 따라갔기 때문에 확신은 서지 않는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0년이 흘렀는데, 그동안 나는 이 사람 태래시 로드리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

며칠 전.

‘컴퓨터 왜 없어…….’

펜촉에 잉크를 찍어 가며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전생의 컴퓨터가 너무 그리웠다.

원래 보고서도 휘황찬란한 수식어로 문장을 창작해 가며 작성하던 걸 내가 어르고 달래고 설득해 지금처럼 필요한 정보만 간략히 작성하는 형식으로 바꾸었다. 처음엔 왕실의 품격이 어쩌고 하던 인간들도 일 처리 속도가 다섯 배는 빨라지니까 다들 좋아하더라.

글자 수가 많이 줄었더라도 이걸 다 손으로 쓰는 건 현대 사회를 살던 나에게 너무 고역이었다.

‘으… 어차피 써야 하잖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송안나 집중해!’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전생부터 좋아하던 영화 대사로 나를 세뇌하며 머리는 비우고 손만 움직였다.

삐빅삐빅.

보고서 작성을 마치자마자 가이드 호출 벨이 울렸다. 이 세계는 전기는 없지만 건전지처럼 사용할 수 있는 마력석이 있다. 그걸로 조명을 밝히거나 이런 간단한 호출 벨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보고서를 단장실에 전달하고 가이딩실로 향했다. 나를 호출한 에스퍼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주 본 사이라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고 가이딩을 시작했다. 이 에스퍼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먼저 양손을 내민다. 그 손을 마주 잡고 상대방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집중했다.

가이드나 에스퍼마다 가이딩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모두 다르다고 한다. 내가 가이딩할 때는 파동처럼 느껴진다. 불안정한 파도처럼 질서 없이 물결치는 파동. 그런 상대의 파동이 컵 속에 담긴 물처럼 잠잠해지도록 인도하는 것이 내가 느끼는 가이딩이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따라오라고 하면 아이가 선생님을 따라가듯이, 에스퍼의 파동이 나의 파동을 따라오며 점차 진정된다. 가이딩이 잘되면 잘못 맞춰진 라디오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는 것처럼 파동이 튀지 않고 일정해진다.

이곳엔 매칭률을 수치화할 방법이 없지만, 이능력자는 가이딩 시 본능적으로 상대방과 자신의 상성(매칭률)을 대충이나마 느낄 수 있다. 나의 경우엔 매칭률이 높을수록 상대가 나를 더 잘 따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매칭률은 가이딩을 할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처음 매칭률이 크게 중요하진 않다. 그래도 처음부터 높으면 좋긴 하지.

“10분쯤 걸릴 것 같아요.”

이 세계에서 가이드는 등급이 없다. 매칭률도 가이딩 실력도 할수록 좋아지기 때문이다. 일종의 레벨 업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그중 나는 능력으로 치면 대륙에서 한 손에 꼽히는 선임 가이드다. 자랑이라면 자랑이지. 이런 말 하지 말까?

“역시 발렛 경! 늘 감사합니다.”

“제 일인데요. 대화하면서 하면 더 걸려요.”

“제가 침묵을 못 견뎌서….”

“예, 압니다.”

웨이든 로히셀. 주 능력은 순간 이동이다. 한 가지 능력만 가진 에스퍼는 없다고까지 할 수 있고 다들 여러 개씩 갖고 있다. 다만 주 능력 외에 다른 능력은 아무한테나 밝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 모르는 상태다.

“최근 낌새가 심상치 않네요. 히시온 산에 사는 동물들이 모두 산을 떠나고 있는데, 뭔가 큰일이 벌어질 징조가 아닐까 주시하고 있습니다.”

히시온 산은 이곳 수도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산이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수도가 날아가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 나라엔 태래시 로드리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슨 일이 일어나든 태래시 경이 감당 못 할 일은 없겠지요.”

전생에는 모두의 기대를 받는 영웅이 책임감에 매몰되는 클리셰가 대세였는데 우리 태래신 경은 괜찮을지 모르겠다.

가이딩이 끝나고 다시 가이드 사무실로 돌아오자 양반은 못 되는 태래신이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를 발견하기 전에 먼저 나를 발견했을 태래신은 내가 가까워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최근 나타나는 이상 동향과 관련하여 전달해 드릴 사항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그럼요, 없어도 있어요!’

나는 얼굴을 너무 집요하게 쳐다보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애를 쓰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태래신이 찾아오면 항상 안내하는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며 시종에게 차를 부탁했다.

태래시 로드리만.

현존하는 대륙 최강의 에스퍼로, 에스퍼 등급은 ‘논외’이다. 가이드는 등급이 없고 에스퍼는 능력에 따라 밑에서부터 F, E, D, C, B, A, S 등급으로 나뉜다. 태래신은 이중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측정 불가 등급, 논외 등급이다.

능력도 좋지만 키, 얼굴, 몸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태래신은 본인은 알고 있을지 모를 몇 가지 별명을 보유하고 있다.

첫 번째는 재앙보다 더한 재앙, ‘태재앙’이다. 나는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에스퍼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 별명이 현재 대륙에서 가장 유명할 것이다. 무시무시한 대명사지만 두려움보다는 경외나 인류의 희망 같은 느낌으로 쓰인다.

두 번째는 ‘대륙의 수호자’인데, 이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수식어다. 대륙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쓰이고, 논외 등급 에스퍼에게만 붙여지는 족보 있는 별명이다. 현재는 태래신을 지칭한다. ‘태재앙’의 어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별명을 많이 사용한다.

세 번째는 ‘태래신 네멘드리안’으로, 나와 동료 가이드들이 속으로 가장 많이 부르는 별명이다. 우리가 지었다!

태래신의 ‘신’은 잘생김이 인간급이 아닌 신급이라는 뜻이다. 네멘드리안은 합성어인데, 이 세계의 신화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천사의 이름 ‘네멘다이아’를 ‘로드리만’과 결합한 것으로 사실 별명이라기보단 주접이다. 길어서 우리끼리 대화할 땐 그냥 태래신으로 부른다.

‘걸어 다니는 조각상’도 비슷한 부류의 별명이다. ‘살아 숨 쉬는 조각상’ 같은 변주도 가능하다.

…그렇다. 다 내가 부르는 별명이다.

“……해서 에스퍼는 오늘부로 3급 경계 태세로……. …지금보다 더 많은 가이드분들이……. ……밤에 호출 벨이 울릴 수도…….”

나는 태래신의 얼굴, 어깨, 팔뚝, 흉부로 돌아가는 눈동자를 막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를 기울이며 그가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대충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에스퍼가 경계를 강화하는데, 당장 심각한 상황은 아니고 가이드는 다음 주부터 동참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건 태래신이 나에게 전달할 사안은 아니다.

나는 평범한 가이드 중 한 명일 뿐이고, 이건 내가 가이드 단장님에게 전달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에스퍼가 아니라…….

물론 태래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전에 이런 건 가이드 단장님께 말씀드리라고 했더니, 이미 말씀드렸고 가이딩 받는 김에 전달을 자청한 거라고 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성실해서 내가 수혜를 입는다!’

다만 어차피 단장님께 한 번 더 전달받으니 쓸모없는 일이긴 했다…….

오늘 치의 굳이 안 해도 될 전달을 마친 태래신이 천천히 양손을 내밀었다. 나는 속으로 심호흡하면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1분이면 끝나겠는데?’

“10분쯤 걸릴 것 같아요.”

내 욕심은 둘째치고 1분 만에 가라고 했다가 불성실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해.

‘최대한 천천히 하는 거야.’

가이딩을 시작하자 테이블 위로 침묵이 깔렸다.

내가 언제부터 태래신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입사했을 땐 다른 부서의 까마득한 직장 상사라(고 생각해)서 연예인을 좋아하듯이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신입 딱지를 떼고 가이딩 실력이 늘어 가니까 어느 날 이 사람과 가이딩 매칭이 된 것이다.

‘그날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지.’

나랑 매칭률이 꽤 높은지 가이딩에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 그 후로 종종 가이딩 매칭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 사람을 진짜로 좋아하고 있더라.

‘솔직히 불가항력 아니냐?’

얼굴이 되면 싸가지라도 없어야 하는데 모난 성격도 아니다. 거기에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능력도 출중하고. 특이 취향이 아닌 이상에야 살다가 마주쳤다면 한 번쯤은 좋아하게 되지 않겠냐고.

“지진이네요.”

깜짝 놀랐다.

“네? 지진이요?”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는데 방금 작은 지진이 지나갔나 보다. 최근 그런 잔지진이 잦았다. 마치 누군가가 곧 벌어질 큰일을 미리 알려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전조 증상은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어서 솔직히 좀 불안하다. 그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눈앞의 에스퍼가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안전할 겁니다.”

그 말씀을 태래신께서 하시니 정말 안심이 되었다.

＊

“태래신 왔었다며?”

이 녀석은 동료 가이드이자 나의 친구인 제니 올가튼 경이 되시겠다.

“응. 에스퍼는 오늘부터 3급 경계 태세 들어간다고 하더라.”

“흐음…. 하긴 요새 좀 심해지긴 했지. 지진이든 뭐든.”

얘는 가이드 사무실에 태래신 다녀갔다는 소식만 들으면 항상 나를 찾아온다. 내가 태래신을 ‘진짜’로 좋아하는 건 얘만 안다.

나는 회의에서 스크린 대용으로 쓸 커다란 종이에 마지막 글자를 적어 넣고 펜을 놓았다. 복사기가 없어서 개별 인쇄물은 못 만든다. 오늘 회의 가기 전에 마력석 연구실에 들러서 복사기 연구 언제 끝나냐고 물어봐야겠다.

“가이드도 곧 야간 근무 인원 늘리고 상시 출동 대기 돌입할 거야. 자세한 건 이따 3시 브리핑 때 전달할 건데, 그 브리핑에 폐하가 오신다고 하네. 아마 회의 초반에 한 말씀하시고 바로 가시지 않을까.”

“아, 그래서 대회의실이 아니고 연회장으로 장소가 변경된 거구나.”

이럴 때 작은 연회장은 회의실로도 쓰인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 황제는 혼자가 아니라 가이드인 레이젤 황녀와 함께 나타났다.

제3황녀, 레이젤 로사린 이드 젤카이나.

그는 현존하는 황족 중 유일한 이능력자다. 이능력은 유전이 아니라서 황족은 대륙을 통일했던 초대 황제 이후 이능력자가 극히 드물었다.

레이젤 황녀는 황족이라서 이능력부 소속이 아니다. 그런데도 황녀 본인이 성심껏 우리를 도우려 해서 꽤 자주 마주친다. 정말 훌륭한 황족의 교감이 아닐 수 없다.

‘황녀님도 비상시에 힘을 보태시려고 회의를 끝까지 참석하시나 보네. 같이 온 폐하도 덩달아 함께하시고.’

이 생각은 잠시 후 와장창 깨지고 말았는데……. 회의의 마지막에 황제가 태래신을 호명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발언을 던진 것이다.

“경도 슬슬 결혼할 때가 되었지. 짐이 레이젤 황녀를 소개해 주고 싶은데 어떠한가?”

이때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직전까지 내가 발표했던 브리핑 내용이 머릿속에서 모조리 사라졌다.

“…….”

……사실, 이것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긴 했다. 대륙에서 제일 강한 에스퍼와 황족의 유일한 이능력자. 둘 다 미혼에 나이까지 비슷하니, 오늘 이 발언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완성됐을 미래였다. …특별한 것 없는 나 같은 가이드는 그 완벽한 조합의 어디에도 끼어들 구석이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어마어마한 이슈였는데,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여기서 더 엄청난 발언이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폐하의 제안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거절할 수 있는 대륙 최강의 에스퍼의 입에서 뱉어졌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폐하.”

전혀 감사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답하는 것조차 귀찮아 보였다.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으니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바로 이 발언이, 내가 예정도 없이 연차를 두 개나 소모하게 된 원인이다.

＊

휴가 1일 차인 어제. 온종일 눈물을 뽑으면서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했다고?’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하루만 쉰다고 했는데…. 밤에 걱정돼서 찾아온 제니에게 연차 하루 더 쓴다는 전달을 부탁했다. 가이드는 경계 태세 돌입이 다음 주부터라 다행이었다.

제니는 내가 밥도 안 먹고 울고 있을 줄 알았다며 음식도 챙겨 왔다. 우울할 땐 생각도 맛있는 거 먹으면서 해야 한단다.

“씻었어?”

“아니…….”

강제로 욕실에 밀어 넣어졌다. 목욕하고 나와서 남이 사준 맛있는 걸 먹으니까 정말 기분이 나아졌다. 제니는 설거지까지 싹 해주고 갔는데, 여덟 시간 이상 안 자면 기절시키겠다고 협박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