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1. 지독한 의심

하이힐을 신은 세영의 가는 발목이 걸을 때마다 유난히 불안정하게 뒤틀렸다.

그 모습이 마치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위태했다.

그런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넘어질 듯 위태위태한 상태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세영의 두 눈엔 공포만이 가득했다.

핸드폰을 얼마나 세게 잡고 있는지 가뜩이나 앙상하게 마른 손의 뼈마디가 허옇게 도드라져 보일 정도였다.

20여 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순간부터 세영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아!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제발…… 제발…….’

불안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세영은 핸드백을 고쳐 매고는 또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제집 문 앞에 도착한 세영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가슴 한복판을 쓸어내렸다.

폐 속으로 공기가 가득 들어찰 정도로 숨을 한참 들이마시고 나니 그나마 불안함이 조금씩 밀려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하아!”

잇새로 긴 숨을 뱉어냈다.

그래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뛰어대는 제 심장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번호를 누르고는 문을 열었다.

퍽!

와장창!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으헉!”

다행스럽게도 본능이 훨씬 빨랐다.

벽에 부딪혔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면서 요란한 파열음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건 파열음과 파편뿐만이 아니었다.

병 안의 액체도 사방으로 튄 듯 냄새가 진동했다.

“…….”

세영은 무서운 마음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제게로 날아든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주변에 진동하는 냄새로 알 수밖에 없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야! 이세영. 지금 몇 시야. 엉?”

무서운 마음에 무진의 표정까지 살필 용기는 나지 않아 그저 눈을 꼭 감은 채였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화가 잔뜩 났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예감이 썩 좋지 않았다.

‘아! 최대한 빨리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바짝 독이 오른 모습으로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을 무진의 모습이 떠올라 세영은 전율했다.

“하아!”

질끈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려서는 눈동자를 굴려 좁디좁은 거실을 재빨리 훑었다.

무진의 주변에 널브러진 술병들을 보니 소리 없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얼굴이 벌게진 게 취기가 제법 오른 듯 보였다.

무진의 성질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사달이 제대로 날 수도 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럴 땐 되도록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미안. 그게 나도 일찍 오려고 했는데…… 회식이었잖아. 자기도 허락한 거고.”

“회식이라, 그래서?”

무진의 말투는 숫제 따지는 투였다.

그러자 세영의 혀는 두려움에 점점 더 꼬여 갔다.

“그, 그게 1차에서 몰래 나오다가 직속 사수한테 딱 걸려서 붙들렸어. 아무튼 미안해. 자기야. 정말 미안해.”

1차인 식당에서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사수한테 붙들려 어쩔 수 없이 2차로 술집까지 간 것이 화근이었다.

“미안하다면 다야? 내가 늦는 거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말이야. 1차만 참석하고 빠져나오면 되잖아. 그게 어려워? 이럴 거면 앞으로 회식도 참석하지 마. 알았어? 혹시, 그 사수 너한테 사심 있는 거 아니야? 아님, 이세영 네가 그 사수한테 사심이 있든가. 아니야?”

“아,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그 사수 유부남이야. 애도 둘이나 있고.”

세영은 넘겨짚지 말라고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최대한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야만 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그래 사수가 술 따라 주니까 꿀맛이디? 간만에 술이 들어가니까 왜 집구석에 들어오기가 싫었어?”

“그런 거 아니야. 나도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어. 정말이야.”

“이세영. 행실 똑바로 하고 다녀라. 그 사수 영 이상하네. 사람이 싫다는데 억지로 술자리에 끌고 다니는 거 그것도 엄연히 직장 내 갑질 아니야? 내 말이 틀려? 아니 버젓이 남편이 있는 여자를 늦게까지 잡아 두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것도 회사야? 완전히 비정상적인 거 아니야? 그런 회사는 다닐 필요도 없어. 당장 다른 데 알아봐.”

“으응? 응…….”

세영은 무진을 멀거니 바라봤다.

실제 남편도 아닌 그저 동거인이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통제하려 드는 무진이 무섭게 느껴졌다.

무진과는 결혼한 사이도 아니었다.

“무슨 대답이 그렇게 미적지근해.”

무진은 세영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세영은 그걸 따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무진이 한번 화를 내면 그걸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저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는 것만이 상책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으응. 그거야 그렇지.”

그저 웅얼거리다가 말뿐이었다.

술을 꽤 마신 듯한 무진을 보니 무서운 마음에 자연스레 저자세로 움츠러드는 중이었다.

살면서 터득한 바로는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의 성질을 건드려서 득이 될 건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말이야. 전화는 왜 안 받았어? 내가 전화를 몇 번이나 한 줄은 알아? 아냐고.”

“…….”

세영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회식 자리에서조차 결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던 세영은 몇 시간 동안이 가시방석이었다.

집에서조차 벌을 서는 아이처럼 무진 앞에 서 있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 기절해 버려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왜 대답이 없어. 응?”

“미안해. 술 아니, 거기가 너무 시끄러웠고……. 아무튼 미안해.”

무진의 목소리에 잔뜩 날이 서 있어 차마 술집이라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거기’라고 두루뭉술하게 둘러대고는 눈을 굴려 무진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전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온 날이면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자신을 쥐잡듯 몰아세우고는 했었다.

아마도 오늘이 그날인 모양이었다.

자신이 회식에서 늦게 귀가했으니 무진의 입장에서는 화를 낼 이유가 충분했다.

오늘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트집이었다.

더군다나 무진의 전화를 20여 통이나 받지를 않았으니 화를 낼 이유가 차고도 넘쳤다.

무진이 주장하는 이론은 그랬다.

세영이 늦은 것을 꼬투리 잡아 아주 작정한 듯 화를 고스란히 퍼붓기 시작했다.

‘하아! 정말 벗어나고 싶다.’

무진을 바라보는 세영의 얼굴에는 다시금 서서히 공포감이 스며들었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지고 싶을 정도였다.

*

와장창! 퍽!

무진은 한 시간째 폭언을 이어 가다가 분노가 솟구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던지며 성난 황소처럼 포악하게 굴었다.

되도록 재빨리 몸을 움직여 피해야 했다.

어쩌다 피하지 못하면 맞아도 세영의 잘못이었다.

어쩌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최대한 빨리 무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날 출근을 아예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오늘만큼은 다른 날보다 그리 심하게 맞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무진의 폭력에 노출되어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니 우습게도 요령만 생긴 꼴이었다.

“아쭈! 또 피해? 야, 회식 좋아하시네. 바른대로 말해. 어디 가서 뭘 했길래 이 시간에 들어온 거냐고. 응? 입이 있으면 어디 말해 보시지. 입은 말을 하라고 달고 다니는 거야. 먹는 데에만 쓰라고 달고 다니는 게 아니고. 엉?”

제 손을 요리조리 피해 도망가니 폭력 쓰는 건 포기했는지 이젠 악을 쓰며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무진은 전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

세영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당장이라도 오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제 입은 자석으로 붙여 놓은 것처럼 딱 달라붙은 채로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바보 같았다.

무진과 살면서부터 제 자존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바닥을 쳤다.

무진의 횡포가 심해질수록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갈 곳조차 없었다.

갈 능력도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구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무자비하게 쏟아져 나오는 무진의 폭언을 한쪽 구석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뭐라고 대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기서 한 마디라도 대꾸했다가는 또다시 도돌이표가 될 거라는 건 보지 않아도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꾸를 안 하고 버틸 수만도 없었다.

“미안해, 자기야. 화 좀 풀어. 응? 제발…….”

세영은 무진의 눈치를 살피며 되도록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아니,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최대한 그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말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내 변하는 그의 눈초리를 보고는 제 생각이 틀렸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뭐어?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이제 화 풀어?’ 잘못은 네가 해놓고 왜 나보고 화를 풀래?”

“하! 내가 그렇게 얘기한 게 아니잖아. 응? 아, 미안해 자기야.”

순간, 아차 싶어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바꿔 말했다.

강무진이란 인간은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솟구치는지 도대체 알 방법이 없었다.

매번 그 포인트를 알 수 없어 이렇게 사달이 나니 세영으로서도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사라져야 끝이 나려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강무진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불쌍한 제 인생 이대로 끝내 버린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세영은 우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너무 피곤했다.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정말 궁지에 몰렸는지 요양원에 들어가 있는 엄마가 생각날 정도였다.

불안함이 극에 달하자 이대로 더하면 제 엄마처럼 스스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 히스테릭한 상태가 될까 봐 그것도 더럭 겁이 났다.

최대한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이를 앙다물었다.

“이게 말이면 다인 줄 아나. 뭐 미안해, 자기야?”

무진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세영의 머리채를 확 잡아챘다.

우악스러운 무진의 손아귀에 세영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잡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증거였다.

“으억! 자기야…….”

머리채를 잡혀 휘둘리면서도 그래서 머리가 뽑혀 나갈 것처럼 아픈데도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아프다고 징징거리면 또 불같이 화를 내며 손이 날아올 것 같아서 말이다.

눈을 질끈 감고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참아냈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화를 낼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처음에는 무턱대고 같이 화를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진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젠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제발 화 좀 내지 마. 응? 자기야. 이것 좀 놔줘. 나 너무 아파.”

“아픈 게 당연하지. 안 아프면 사람이냐?”

“흐윽. 자기야. 제발 나 좀 놔줘. 응?”

무진에게 애원하고 있는 제 모습조차 꼴 보기가 싫었다.

진저리나게 싫었다.

그렁그렁 매달려 있던 눈물이 양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뭘 잘했다고 울어. 응? 지금 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 지금 시간이 몇 시냐고. 엉? 너 매번 내 말 무시하는데. 아주 이참에 제대로 버릇을 고쳐 놔야겠어.”

분명 알아듣게 상황을 설명했는데도 무진은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있었다.

세영은 점점 옥죄어 오는 답답함에 심장이 그대로 멎을 것만 같았다.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느껴져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이세영. 눈 떠. 아직 멀었어. 이제 시작이야.”

무진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세영의 양어깨를 꼭 그러쥐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세영의 가냘픈 몸뚱어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종이처럼 앞뒤로 흔들렸다.

*

무진은 세영에게 기진맥진해 있을 틈조차 주지 않았다.

휘날리는 종이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세영의 두 눈은 힘겹게 시계로 향했다.

새벽녘이 다 되어 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망연자실했다.

얼른 무진부터 달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비슷한 일로 이웃하고 실랑이까지 벌어졌던 적이 있었다.

이 상황이 곤혹스러워 무조건 굽히고 들어가는 게 문제의 근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영으로서는 달리 해결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상황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 수도 있었다.

자신과 무진의 모습에서 오래전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졌다.

“자기야, 진짜 미안해. 내가 이렇게 빌게. 그리고 정말 앞으로 다시는 늦지 않을게. 응? 제발 자기야, 나 너무 무서워. 응?”

세영은 산발이 된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서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애원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이세영, 너 혹시 나 모르게 딴 놈 만나서 헛짓거리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무섭겠지. 잘못한 게 없으면 미안할 것도 없을 거 아니야. 안 그래?”

“…….”

평상시에도 그랬지만, 술에 취한 무진의 의심병은 극에 달한 듯했다.

무진의 억지에 더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순간, 세영은 체념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뭐야. 그 표정은? 뭔가 찔리는 거야? 하! 아니면 인정한다는 거야?”

무진과의 대화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도돌이표였다.

전혀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질 않았다.

마치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하아!”

잇새로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표정 뭐냐고. 응? 뭘 잘했다고 한숨이야. 어떤 놈이야. 말해. 말하라고.”

술도 마신 데다가 벌써 몇 번째 되풀이되는 상황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 말걸 그랬나, 무섭다고 말을 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그런 거 절대 아니야. 내가 남자가 어디 있어. 자기도 알다시피 자기랑 살기 시작하면서 내가 어디 나돌아다니는 거 봤어? 매일 회사 집 회사 집 그랬지. 오늘은 자기도 알다시피 회식 때문에 늦은 거야. 정말이야. 내가 회식 장소 도착해서 인증 샷 보냈잖아.”

정말이지 되도록 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다가 그것도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참석한 거였다.

“그거야 알 수 없는 거지. 그건 그렇고 아무리 회식이라도 그렇지. 아니 무슨 회식을 새벽까지 하느냐는 거잖아. 회식은 말 그대로 다 같이 모여서 밥만 먹고 헤어지면 되는 거잖아.”

“그게 그러니까 사수가 계속 붙드는 바람에. 내가 그 회사 들어간 지 이제 겨우 1년 되어 가는데 어떻게 집에 그만 가봐야 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

“하아! 그래.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지? 누가 새벽까지 술 마시고 오랬냐고. 응?”

제 말이 통하지 않자 무진은 소릴 버럭 지르며 숫제 악을 쓰기 시작했다.

“새벽은 아니지. 자기도……. 아니.”

세영은 말을 하다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무진의 억지에 따지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끝끝내 참아냈다.

자신에게는 모든 면에서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세영에게는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도 따져 물을 순 없었다.

악을 쓰는 무진이 무서워 세영은 얼른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기서 따졌다가는 일만 더 키우는 꼴이 된다는 걸 아주 잘 알았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한이 있어도 회식에 불참할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따라왔다.

“내 말 그냥 허투루 듣지 마라.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는지 알지?”

“그래, 알아. 미안해.”

이쯤 되면 그냥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인가 보다.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조건 미안하다고 빌기부터 하는 자신이 바보천치 같아도 어쩔 수 없었다.

얼른 분위기가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건넸다.

한편으로는 이러는 자신이 불쌍했다.

애처롭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