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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보니, 좋아하던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꿈이겠죠. 비록 소설 본문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엑스트라지만요. 저도 사실 방금 전까지 여기가 소설 속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멜리아 매그놀리아’. 제가 빙의된 엑스트라의 이름입니다. 15세의 남주인공과 같은 학교, 같은 반 소속의 여학생입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저는 장기간 등교 거부 학생이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등교 준비를 할 때 부모님의 반응이 이상했죠. 정확히는 아멜리아의 부모님이지만요.

이 학급에는 두 명의 장기간 등교 거부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저입니다. 아니죠. ‘아멜리아 매그놀리아’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개근상을 받았으니까요. 다른 한 명은 ‘레슬리 클레마티스’라는 이름의 남학생이라고 합니다.

황족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공작. 그리고 그 공작가의 차남.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귀족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다니는 이상한 소년입니다. 제가 좋아하던 소설 속의 주인공과 설정이 완전히 똑같네요.

그 소설 속 남주인공의 이름은 레슬리. 그 소년은 남주인공 본인이겠죠. 아마도요.

‘그는 천재지만 외로웠다’. 레슬리가 주인공인 소설의 제목입니다. 남주인공 레슬리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그에 비례하는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술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국 최고 공작가의 차남이죠. 하지만 그로 인해 레슬리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을 질투하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당한 레슬리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레슬리가 걱정하는 일들은 전부 잘 풀렸습니다.

레슬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범죄 누명을 씌웠지만 그 누명은 빠르게 해명됐습니다. 레슬리가 부렸던 히스테리들도 제국 전체에 소문이 났지만, 범죄가 성립되지 않았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말에서 레슬리는 수십 세기 뒤에도 이름이 남을 정도의 유명 화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슬리는 평생 사람을 믿지 못했고, 평생 외로웠습니다.

레슬리는 미술 분야에서는 굉장한 천재였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굉장한 바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볼 때마다 레슬리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을 생각합니다. 백 번 넘게 읽었으니까, 백 번 넘게 생각했겠네요.

학교가 끝나고, 저는 클레마티스 공작 저를 찾아갔습니다. 클레마티스 공작 저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설에서 클레마티스 공작 저를 언급할 때 ‘경찰서의 바로 옆, 굉장한 규모의 대저택.’이라는 구절이 있었으니까요.

공작 저에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문이 보이면 계속 열고 들어갔습니다. 자물쇠를 따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자물쇠는 공작 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요. 자물쇠 비슷한 것도 없었고요.

클레마티스 공작 저는 소설에서 언급된 것처럼 굉장한 규모의 대저택이었지만, 평범한 집보다 훨씬 더 보안이 허술했습니다. 고용인들은 여기저기 문을 열고 다니는 저를 봤으면서도 제지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침입자를 환영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소한 것들은 다 적당히 넘어가는 거겠죠. 꿈은 자주 그러니까요. 적어도 제 꿈은 항상 그랬고요.

“뭐야. 너 누구야?”

43번째 방의 문을 열었을 때, 저는 드디어 소설의 남주인공 ‘레슬리 클레마티스’를 찾았습니다. 레슬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왜 이 부분에서만 현실적인 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꿈이라는 게 이상한 곳에서 현실적인 거죠.

레슬리는 반짝이는 백금발과 에메랄드 빛의 눈동자. 순한 것도 날카로운 것도 아닌 눈매를 가졌습니다. 소설에서 묘사된 그대로의 외모입니다. 예쁘네요. 레슬리는 그림을 그리던 도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 실력 역시도 소설에서 언급된 그대로입니다. 굉장히 잘 그리네요.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지만, 완성된다면 엄청나겠죠.

…생각해보니 여기 찾아온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레슬리를 붙잡고,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습니다.

“너 바보야? 한 번이라도 같이 즐겁게 놀면 무조건 친구인 거 몰라?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사람이 비정상인 건데 그것도 몰라? '나만 친구라고 생각하면 어쩌지'같은 걱정을 왜 하는데? 그리고 또,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까봐 모르는 사람들한테 말을 못 걸어? 네가 먼저 말을 걸었다면 네 절친이 됐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또 하나, 누가 이상한 누명 씌울까봐 무서워서 마음대로 그림도 못 그려? 헛소문이면 해명하면 되잖아! 아니면 유명해졌다가 히스테리 부렸던 거 소문날까봐 무서워서? 이건 진짜라서 해명도 못 하니까? 불법인 것도 아닌데 뭐가 어때서!”

저는 일단 말을 멈추고 레슬리를 보았습니다. 레슬리는 아마도 울기 직전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뭐? 사람들이 다 너 싫어한다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사람들 생각이라도 읽어봤어? 다들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네가 밀어내니까 말도 못 거는 거잖아! 진짜로 몰라서 그래? 너네 형, 너네 부모님,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다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네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니까 너한테 말도 못 거는 거잖아!”

저는 다시 한번 말을 멈추고 레슬리를 보았습니다. 레슬리는 울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제 방에 들어와서 일방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면 무서워서 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한 번 이상 즐겁게 같이 놀았으면 친구인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비정상이고. 한 번 이상 즐겁게 같이 놀았던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두 명 만났다면 그냥 이상한 사람을 두 번 만난 거고. 세 명 만났으면 세 번 만난 거고. 백 명 만났으면 백 번 만난 거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네가 먼저 말 건다고 해서 절대 이상한 사람 취급 안 받아! 이상한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거지! 이상한 말이 뭔지는 너도 다 알잖아! 그 말들만 안 하면 되는 거야!”

이걸로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했습니다. 레슬리는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울고 있지만 달래기도 애매한 상황입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했으니까 간다! 내 말 절대 잊어버리지 마!”

저는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서 대저택 밖으로 나갔습니다. 들어올 때와 같이 아무도 저에게 말을 걸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벽에 예쁜 그림들이 많이 걸려있네요. 전부 레슬리가 그린 걸까요?

***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확히는 아멜리아의 집입니다. 이사를 하면 최소 세 번 정도는 길을 헤매고서 집의 위치를 외우는 수준의 길치이지만, 어째서인지 길을 전혀 헤매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꿈이라서 일까요? 어쩌면 아멜리아의 기억이 제가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준 걸지도 모르겠네요.

학교에서 들은 바로 오늘은 9월 16일. 달력을 보니 금요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면서 학교를 간 거였네요. 주말에 학교를 가는 바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할 것도 없고 꿈에서 깨기를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있으니 어제 꿨던 꿈이 생각났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이었죠. 고통이 엄청 생생했었어요. 팔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서 움직이지 않게 되고, 머리에서 피가 엄청 많이 나고…. 어쨌든 절대로 다시 꾸고 싶지 않은 꿈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참 신기한 꿈이네요. 꿈속에서까지 졸린 건 이번이 확실하게 처음인데 말이죠. 일단 자야겠네요. 마침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

자고 일어나는 걸 세 번 반복했지만 여전히 꿈속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전 6시입니다. 저는 왜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걸까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월요일이 찾아온다면 저는 다시 학교에 가게 되겠죠.

월요일에 레슬리는 등교를 할까요? 만약 레슬리가 등교하게 되면 저는 어떻게 레슬리의 얼굴을 봐야 하죠? 심지어 제 바로 옆이 선생님이 정해주신 레슬리의 자리입니다. 절대로 피할 수 없어요!

솔직히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던 거죠! 다시 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적어도 그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죽으면 깨어날지도 모르겠지만, 이 몸의 주인은 제가 아니니까 마음대로 죽으면 안 됩니다. 저에게는 꿈이지만 아멜리아에게는 현실이니까요. 그러니까 진짜 간절하게, 7시가 되기 전에 꿈에서 깰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오전 6시 17분. 뭔가 아멜리아의 방 바깥에서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목소리가 세 명분이네요. 아 참, 저는 어제 아멜리아가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멜리아의 부모님은 누구랑 대화를 하는 걸까요?

사실 저는 부모님과 대화하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저번 주 금요일에 들었던 레슬리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레슬리가 저를 찾아올 이유는 없습니다. 아마도 없을 겁니다. 없어야만 합니다!

잠시 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는 척이라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제가 레슬리에게 불법적인 무언가를 저지른 건 아닌…게 아니었네요. 주거침입은 명백하게 불법이니까요.

“…방금 일어났어요. 왜요?”

저는 아멜리아의 부모님이 레슬리에게 어디까지 전해 들었을지 모르기에, 일단 모른 척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가 찾아왔어. 같이 학교 가자고. 학교에서 하루 만에 친구도 사귈 수 있으면서 왜 이제까지 학교를 안 갔던 거야?”

레슬리는 제가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지금 나가지 않으면 레슬리가 아멜리아의 부모님에게 뭔가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일단 서둘러 등교 준비를 하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집 앞에서 레슬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슬리는 제가 나온 것을 확인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학교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레슬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

말없이 걷다 보니,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솔직히 레슬리가 저에게 뭘 바라고 이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레슬리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확실하게 제가 해낸 일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저는 레슬리와 함께 교실로 들어갑니다.

저는 레슬리와 함께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교실에는 저와 레슬리 이외에는 누구도 없습니다. 시계는 오전 6시 51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6시 51분입니다. 당연히 아무도 없겠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이 시간에 등교할 수도 있겠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레슬리는 무언가를 찾는 듯 여기저기를 둘러봅니다.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는 레슬리는 9학년 때 최소 출석일수만 전부 채우고 그 이후에는 학교를 전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하게 서양입니다.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였죠. 확실하게 레슬리를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여럿 있었고요. 하지만 레슬리의 인간 불신적 성향이 그들을 전부 밀어냈습니다. 말하자면 로맨스 판타지의 수많은 갈래 중 피폐물이라 불리는 장르네요.

그렇지만 레슬리가 주변 사람들을 조금만 더 믿어줬다면, 그냥 평범한 로맨스가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더 행복한 로맨스 말이죠.

…말의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갔네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서양은 입학식과 시업식이 9월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9월 19일. 덧붙이자면 월요일입니다. 아멜리아도, 레슬리도 10학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죠. 그리고 레슬리는 10학년이 된 후 단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10학년이 된 후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은 레슬리는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죠. 이야기가 많이 새서 길게 말했지만 결국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레슬리가 찾고 있는 건 자신의 자리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습니다.

“…창가 쪽 맨 뒷자리. 거기가 네 자리야.”

굉장히 어색합니다. 레슬리는 저를 한 번 바라보고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습니다. 저는 레슬리의 옆 자리에 앉습니다. 솔직히 다른 자리에 앉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자리에 앉지 않으면 다른 학생이 피해를 보니까요.

저는 때마침 할 만한 것도 없었기에 공책을 꺼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마 공부를 할 때 쓰기 위해 넣어둔 공책이었겠지만, 그렇기에 공부가 아닌 용도로 사용했을 때 더 즐거운 것이겠죠.

저는 강아지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공책에 강아지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그림에는 재능이 없었기에 최선을 다해 그렸지만 예쁜 강아지는 그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림이 이상하게 그려지면 주변에서 누가 보고 있을까 살짝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레슬리 쪽을 살짝 봤습니다. 제가 레슬리를 살짝 봤을 때 레슬리는 제 공책, 그러니까 제가 그린 강아지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죽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렇게까지 쉽게 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레슬리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야겠죠.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저 그림 같은 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게 될 거니까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좋아해.”

“종이 한 장 줄 테니까 그려볼래?”

레슬리는 5살 정도의 아이 같은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레슬리에게 종이와 펜을 주었습니다.

저는 레슬리에게 종이와 펜을 주고 나서 다시 시계를 보았습니다. 오전 7시 48분이었습니다. 확실하게 몇 명 정도 등교했을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조용했기에, 저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주변에는 같은 반 학생들 몇 명이 있었습니다. 같은 반 학생들은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레슬리와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나오지 않던 두 명이 다 학교에 나온 것도, 그 두 명이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놀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교실에는 아멜리아와 레슬리에게 적의를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아멜리아도 레슬리도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요? 확실히 세상에는 경계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극소수의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멜리아와 레슬리는 경계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경계하게 되어버린 거겠죠.

그러고 보니, 아멜리아는 어떻게 된 걸까요? 저는 아멜리아가 아니니까요. 지금의 저를 아멜리아로 볼 수 있다고 해도 그 전까지의 아멜리아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살아있는 건 맞겠죠?

“아멜리아.”

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레슬리가 그림을 완성한 후 저를 불렀습니다. 펜 하나만으로 그렸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퀄리티의 고양이 그림이었습니다. 본인은 고양이파라는 뜻이었을까요? 그렇지만 사실 저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비슷한 정도로 좋아하는 편입니다.

“고양이 좋아해?”

“좋아해.”

“나도 고양이 좋아해.”

레슬리가 살짝 웃으면서 저를 바라봅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멜리아보다 키가 많이 큰데도 말이죠. 참고로 저는 아멜리아보다 살짝 키가 작습니다. 지금은 아멜리아의 몸을 쓰고 있으니까 아멜리아의 키가 저의 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저에 대한 것들은 궁금하지 않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저는 아멜리아가 아니기에 계속해서 말할 예정입니다. 아멜리아의 인생은 아멜리아에게 돌려주는 게 맞으니까요.

레슬리는 수업시간 내내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습니다. 아멜리아의 가방에는 개봉조차 하지 않은 공책이 하나 더 들어있었습니다. 그 공책은 레슬리에게 통째로 주었습니다.

레슬리는 그림이 완성되면 다음 장에 다른 그림을 그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카페테리아에 공책과 펜을 가져가서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생님들은 레슬리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레슬리가 귀족의 아들이기에 말렸다가 무서운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 거겠죠.

점심시간에 저는 주거침입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점심으로 나온 핫도그를 레슬리의 입에 들이미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정도로는 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참작을 받기 어렵겠죠. 하지만 제 죄책감은 줄어들었습니다.

레슬리는 점심을 먹지 않고 그림만 그리려고 했습니다. 카페테리아로 데려왔지만 공책에 그림을 계속 그리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입 앞에서 음식을 들어주면 진짜 싫어하는 음식이 아니라면 거의 먹으니까요.

레슬리의 입 앞에서 핫도그를 들어주고 있으니 카페테리아 안의 모든 시선이 저와 레슬리 쪽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수많은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레슬리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와서도 레슬리는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마지막 교시가 되고, 슬슬 레슬리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나 오래 그리고 있는데 질리지 않았을까? 그것보다 손목은 괜찮은 거 맞겠지?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서 결국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손목 안 아파?”

“집에서 안 나갈 때는 더 오래 안 쉬고 그렸어.”

돌아온 답은 손목보다 다른 부위들을 더 걱정하게 되는 답이었습니다. 소설에서도 레슬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다가 쓰러지는 일이 많았다고 여러 번 언급되었고, 건강을 챙겨달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아서 레슬리의 가족들도 결국 레슬리의 건강에 대해서는 포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 건강 안 챙겨서 나보다 먼저 죽으면 매일 니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 들고서 네 무덤 찾아갈 거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뭔데?”

“토마토.”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내 생각을 다 읽는 것 같네. 저번 주에 했던 말들도 그렇고.”

“심리학자가 꿈이라서.”

“…나도 심리학 배워볼까.”

사실 저는 심리학에 관심이 없습니다.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되고 싶지는 않은 직업.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직업 있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심리학자라는 직업입니다. 그렇지만 레슬리가 납득해줬으니 일단은 심리학자가 꿈인 걸로 하는 게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