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들러도 이곳 풍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의 안식처가 되기로 작정한 것처럼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달라지지 않는 그 모습이 지겹기보다 오히려 서럽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데 그녀만 그곳에 없으니까.'살랑, 앞으로 흘러내린 재혁의 머리카락을 바람이 흩트려놓았다. 무심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그의 시선은 웅장한 자태로 거대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나무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나무는 앞으로도 족히 몇백 년은 더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190에 가까운 재혁의 키가 태양 아래 아지랑이에 갇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태양보다 더 뜨거운 햇살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이미 까맣게 타버렸는데 한국에서 더 까만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다. '날이 선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뿐만 아니라 숱 많은 눈썹 위 이마에서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자를 때가 다 된 머리카락이 땀으로 인해 젖어들고 있었다. 사람을 구워 먹을 것처럼 내리 쬐는 햇볕으로 인해 재혁의 SUV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지만 그는 자동차에 기대 꿈쩍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