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웹소설에선 나도 여신

카페 ‘함부로 설레는 커피’의 유리창이 햇빛을 받아 쨍~하니 빛났다.

정오에 작열하는 태양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카페 유리창을 그대로 쳐다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람이 맨눈으로 태양을 직접 쳐다보면 이내 눈이 멀게 된다.

그래서 강력한 태양 에너지를 그대로 받아 반사하는 카페의 유리창에, 거리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낮에 사람들이 ‘함부로 설레는 커피’ 옆을 지날 때는 눈을 찡그리기 일쑤였다.

찡그리고 보는 찰나의 순간에 카페 내부를 훤히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카페 ‘함부로 설레는 커피’ 옆을 지나면서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밤에는 몰라도, 최소한 낮에는 그랬다.

루나도 그랬다.

로맨스 웹소설 작가인 루나는 카페 ‘함부로 설레는 카페’의 창가 자리를 선호했다.

그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루나는 거의 매일 카페를 작업실처럼 드나들었다.

그걸 아는 카페의 다른 손님들은 암묵적으로 루나의 자리를 비워놓았다.

물론 처음 온 손님이 루나의 자리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거기 주인 있어요. 글 쓰는 분 자리에요.”

이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은 굳이 루나의 자리라고 지칭된 곳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걸 본인이 왜 따라야 하냐며 루나의 자리에 앉은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늦게 도착한 루나는 다른 자리에 일단 앉았다. 그리고 원래의 자기 자리가 비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루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스스로 만든 글쓰기 루틴과 패턴에 루나가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나는 익숙한 루나의 자리에서 꽤 속력 있게 글을 썼다. 그렇기에 반대로 루나의 자리가 아닌 자리에서 글을 쓸 때 어색함을 느꼈다.

루나가 창가 자리를 좋아한 이유는, 낮에 거리의 사람들이 루나를 보고 눈이 부셔 피하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루나의 눈부신 모습을 피한 건 아니었다. 햇빛에 반사된 유리창을 피했을 뿐이었다.

루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왜 좋아했냐고?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한 루나는,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보고 눈부시다고 움찔하는 모습에서라도 자존감을 찾고 싶었다.

작가라기보다 작가 지망생인 루나에게는 아무도 ‘우쭈쭈’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루나는 그게 너무 민망했다.

아직 내세울 작품도 없는데, 자기를 작가라고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루나는 그런 대접을 받는 게 창피하기도 했고, 지망생의 자격지심에 자기를 놀리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작가 지망생인 자기가 위대한 작가라고 칭송받을 때 루나는, 자기 자신이 너무 가짜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가짜 행세하지 않았는데 가짜가 된 기분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데뷔 전인 루나에게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우쭈쭈’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랬더니 주변 사람들은 그만두었다. 루나를 치켜올렸던 말과 행동을 진짜로 철저하게 그만두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동시에 그만두었다.

그런데 루나는 자기가 작가로 성공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스스로 버티고 있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루나의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그렇다고 이제 와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를 치켜달라는 말을 하는 건, 루나에게 더욱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제 와 자존감을 구걸할 순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창가에서 빛나는 루나’였다.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자기의 이미지를 몰래 혼자만 만들며, 루나는 버텼다.

하지만 루나가 잘 몰랐던 것이 있다.

웹소설 속에서는 작가가 여신일 수 있다는 것을!

그냥 여신의 아름다운 이미지만 취득하는 게 아니라, 진짜 여신처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신인데 여자인 신! 진짜 여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이기 때문에 마치 신처럼 소설 속 주인공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루나는 그걸 약간은 알면서도 실제로는 잘 몰랐다. 자신의 힘을 제대로 모르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처럼!

루나는 자기가 가진 게 무엇인지 잘 몰랐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나는 내가 가진 걸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걸 창조할 수 있는 작가였지만, 루나 또한 이 말에 철저하게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이드를 만나기 전까지는!

***

땡그랑.

루나가 카페 ‘함부로 설레는 커피’의 문을 열자 풍경소리가, 루나의 입장에 가장 먼저 반응하며 루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풍경소리는 카페에서 잠시의 적막을 깼다.

이드의 연주를 듣기 위해 피아노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루나에게 쏠렸다.

루나는 순간 당황했다.

마치 공연장의 백스테이지 문을 열고 허락도 받지 않고 무례하게 들어간 사람처럼, 루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건 그리 오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이드에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루나는 자기가 크게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루나의 존재감이 3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루나가 열고 들어간 문은 천천히 닫혔다.

그러면서 문 사이로 들어간 햇살이 이드의 손가락을 비추었다.

길고 하얀 이드의 손가락에 비춘 햇살은, 보석을 비춘 핀 조명처럼 이드의 손가락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했다.

이드!

한때 최고로 촉망받았으나, 집안이 몰락하면서 피아노 앞에 차마 앉지 못했던 비운의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오랜 공백을 깨고 이드가 선보인 곡은 라흐마니노프였다.

정식 공연장이 아닌, 피아노가 있는 카페에서 이드는 복귀 아닌 복귀를 하게 되었다.

카페에서의 연주를 두고 이드의 복귀라고 말하는 게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카페에서 그냥 피아노를 친 것일 수 있으니까.

그만큼 이드는 한동안 피아노를 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드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살짝 긴장했다.

오랜 기간 연습으로도 치지 않았던 피아노를, 사람들 앞에서 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을 굴리지 않았던 시간이 많았던 이드는, 준비 운동하듯 손가락을 살짝 풀었다.

그런데 그렇게 움직이는 자기의 손가락에 사람들이 집중한다는 게 느껴지자, 이드는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이드는 첫음절을 시각적으로 연주했다.

그런 후 이드는 바로 피아노에서 양손을 빠르게 움직여 다음 음절의 연주를 이어갔다.

헉.

훅 들어간 후 바로 부드러움을 표출하며 시작부터 역동적인 감정선을 드러낸 이드의 연주에, 루나의 마음이 멎는 것 같았다.

라흐마니노프로 빙의한 듯한 이드는 울분과 분노를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굴리며 박진감 넘치게 표현했다.

이드의 음악은 공기를 바꾸었다.

카페는 어느새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카페의 인테리어를 선택한 테마 공연장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섬세한데 아름다워.’

그렇게 느끼며 루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편안하면서도 필이 충만한 연주를 선사하는 이드를 보고 듣고 공기 중에서 느끼며, 루나는 왠지 눈물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루나는 이드에게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음악으로 들었기에, 루나는 더 절절한 이야기로 느꼈다.

이드는 완급 조절과 강약 조절을 하며 루나의 마음을 더욱 후벼팠다.

춤으로 비유하자면 피아노 건반을 치는 이드의 손가락은 업 바운스의 춤과 다운 바운스의 춤을 넘나드는 절묘한 스텝을 밟고 있었다.

중력에 굴복하지 않고 중력을 거슬러 통통 튀는 업 바운스의 춤처럼, 이드의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에 0.1초라도 머물러 안착하지 않겠다는 듯 건반에 닿자마자 튀어 오르며 공중으로 다시 날아갔다.

이드는 광기의 춤을 추는 듯 역동적으로 연주하다가, 이내 부드럽게 피아노 건반을 타고 흐르는 연주로 전환했다.

이드의 전환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루나는 감정선이 끊어지지 않은 채, 다채로운 감정을 중첩해서 느꼈다.

손가락이 건반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이어지는 이드의 연주는, 두 다리 중 최소한 하나는 땅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운 바운스의 춤을 연상하게 했다.

이드의 연주는 달리기와 경보를 함께 한 연주라고 볼 수 있었다.

두 발 모두 땅에 붙어 있는 시간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달리기와 두 발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시간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경보를, 계속 바꿔가면서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서적인 면에서 보면 더욱 그랬다.

이드의 연주는 진하면서도 부드러웠고, 질주하느라 정신이 없을 법한 시간에도 연주를 듣는 사람에게 음악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현란하게 건반을 치면서 이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어서서 연주하려는 듯 상체를 세우며 엉덩이를 들었다 놓기도 했다.

루나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음악의 본질인 청각적인 측면에서 무척 화려한 연주를 하면서 이드는 작은 움직임을 더했다.

루나는 황홀했다. 청각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행복한 연주라고 느꼈다.

그래서 이드의 음악에 휩싸인 루나는 넘치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미칠 거 같아.’

하마터면 속으로 생각했던 게 말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래서 루나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하지만 루나의 그런 모습은 마치 키스하고 싶어서 입술을 오물거리는 수줍은 여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부드럽기만 한 남자는, 여자에게 편하고 안정적인 면에서 좋다. 하지만 밋밋하고 재미없을 수 있다.

통통 튀거나 격정적으로 질주하기만 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휘몰아치는 감정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남자가 리드하는 속도와 타이밍이 여자가 받아들이고 느끼는 시간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자는 배려받지 못하다고 느끼면서 상처받을 수 있다. 오히려 마음이 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두 가지 상반된 성향과 행동을 적절한 시간에 조합할 수 있는 남자는,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아채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남자는, 여자에게 이상형의 남자가 될 수 있다.

자기의 이상형이 아니어도 그런 남자를 싫어할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루나는 이드의 연주를 들으며, 이드에게 반했다.

사실 루나는 한참 이전부터 이드에게 반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드의 연주를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루나는 이드를 가지고 싶어졌다.

그냥 단순한 호감의 수준이 아니었다.

루나는 이제 이드가 없다면, 자기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지독한 짝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음악의 힘은 대단했다.

주르륵.

루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자기의 눈에 흐른 한줄기 눈물이 이드가 흘리게 한 눈물인지, 라흐마니노프가 흘리게 한 눈물인지, 아니면 그냥 혼자서 감정에 취해 흘린 눈물인지 알지 못했다.

루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이드와 사귀고 싶은 간절한 마음만 중요할 뿐이었다.

이드는 마지막 건반을 눌러 연주를 마친 후, 순식간에 팔을 하늘로 뻗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내려왔다.

그러는 동안 ‘함부로 설레는 커피’의 관객들은 손뼉을 치지도 환호하지도 못했다.

이드의 연주에 빠져, 이드의 매력에 녹아, 마치 영원히 이드가 연주하는 시간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사람들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짧은 시간은 연주의 여운을 더욱 진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루나를 포함한 카페의 관객도 그랬고, 이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카페 손님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직 이드의 연주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 또한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기립 박수, 물개박수를 받으며 이드가 천천히 일어나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루나는 그런 이드의 몸을 위아래로 스캔했다. 자기도 모르게 한 루나의 행동이었다.

루나가 고개를 이드의 가슴에서 얼굴이 있는 위쪽으로 올리는 순간, 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이드는 루나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자로서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예의상 웃어준 것이었다.

쿵쿵쿵쿵.

하지만 그 순간 루나의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그러다 루나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굳이 지금 시간에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하지 말았어야 하는 상상이었다.

이드가 고개를 끄덕인 게 이드 또한 루나의 옷과 몸을 스캔한 것이라고, 루나가 착각한 것이었다.

루나는 자기가 얼떨결에 그랬던 것처럼, 이드도 그랬다고 단정해버렸다.

하지만 이드는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의도 또한 전혀 없었다.

루나는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많은 작가가 평소에 하는 옷차림에 비해서는 준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루나가 세련되게 옷을 입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루나는 생각했다.

‘내 모습이 초라해 보여.’

화려한 이드의 현란하고 매력적인 연주에 빠져든 후라, 루나는 더욱더 자기를 초라하게 느꼈다.

루나가 말했다.

“이런 날 누가 사랑하겠어?”

속으로 한 말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작가는 글로 쓸 때 말로 중얼중얼하면서 글을 쓸 때가 많다. 그런데 루나가 평소에 습관처럼 했던 행동을 이드 앞에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루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으로만 말하지 말고 겉으로 뱉으라고, 밖으로 쏟아내라고 시켜서 한 것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던 것이라면 그건 루나의 무의식이 시킨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루나는 의식적으로는 자기의 행동이 본심에서 의도된 것임을 알지 못했다.

루나는 자기가 한 말을 바로 주워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주워 담을 시간을 이드는 주지 않았다.

이드가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데요.”

루나는 자기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미쳐서 헛소리가 들린다고 단정했다.

저렇게 멋진 이드가 초라한 자기에게 사랑한다고, 그것도 멋진 연주 후에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걸 루나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다 진짜 사고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루나에게 엄습했다.

루나는 자기가 평소에 쓸데없는 상상을 너무 많이 해서, 감정이 격해진 지금 순간,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