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건곤일척(乾坤一擲)'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승부를 겨루다.)''''1979년.'“여보…….”'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눈망울로 애원하는 아내의 모습에 환은 미칠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조용히 아픔을 삼켰다.'“제발…….”'어린 나이에 시집온 아내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같았지만, 오 년이 지난 지금은 푸르죽죽한 색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비록 재벌가의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를 알아가면서 사랑 또한 싹 틔워 나갔다. 해맑게 웃는 낯빛으로 자신을 대해 주는 아내의 순수한 미소와 마음씨에 환의 사랑도 그녀에게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하늘 아래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 그렇게 환과 지아는 서로를 사랑하며 오순도순 세월을 보냈다.'부부금실이 좋으면 하늘도 시샘한다 했던가. 서로 죽고 못 살 정도로 애정을 과시하던 환은 오 년 동안 아기가 들어서지 않자,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5대 독자인 자신의 입장 때문인지 어른들의 성화는 하늘을 찔렀고, 씨받이를 들이라는 시어머니의 강압적인 말에 두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지아야…….”'안타까움이 물씬 묻어나는 환의 음성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지아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허락해 줘요.”'곱디고운 그녀의 얼굴이, 햇살을 머금은 듯한 화사한 미소가 항상 걸려 있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함만 담고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여 환의 눈가가 조금씩 젖어들었다.'된다는 보장도 없잖아.'차가운 손.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아내의 차가운 손을 꼭 움켜잡은 환은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미안하다.”'“무슨 말씀을요.”'입가에 살짝 걸린 미소가 저토록 시릴 줄은 예전에는 정말 몰랐다. 그저 함께 희로애락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줄 알았던 어리석은 자신을 탓하던 환은 떨리는 눈가를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강한 사람. 지난 세월 동안 어른들의 성화에도 자신을 지켜준 내 사람. 자신의 반려자는 오직 그녀 하나만이라며 절대로 다른 여자에게서는 자식을 보지 않겠다 선언하며 완강하게 버티던 그도 세월이 조금씩 더 흘러가자, 의지도 그만큼 꺾이고 있었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아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소원이라 소리치는 어미의 말을 무정하게 무시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성공했다 했어요.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가 성공했다 했어요. 그러니 저에게도 희망은 있잖아요. 슬퍼하지 말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그렇게 하기로 해요. 만약에 그렇게 해도 아니 된다 하면 저도 포기할게요. 당신을 다른 여자랑 공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밭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그래야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