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꽤 뜨거워진 햇빛을 받으며 지란은 걸음을 재촉했다. 볼기짝이라도 맞은 것 같은 열기가 얼굴을 확 달아오르게 했다. '“택시를 탈 걸 그랬나?”'송골송골 콧잔등 위로 맺혀오는 땀방울을 훔치며 지란은 낮게 중얼거렸다. 하필 인생의 사활을 건 면접을 보는 날 이렇게 햇빛이 쨍쨍 비출 건 또 뭐란 말인가? 모르긴 몰라도 분명 코 부분의 화장은 모두 지워졌을 것이다. 적어도 삼십 분 정도의 여유는 두고 도착해야 화장도 고치고 땀도 식힐 텐데. 지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안 그래도 땀이 배어 나오는 걸음을 더 재촉했다.'면접을 볼 회사는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 설명대로 지하철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니 바로 사무실이 있는 빌딩이 자태를 드러냈다.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결혼정보 회사라고 했으니 지란의 꿈을 펼치기에 이만한 곳은 없어보였다. '“어디 찾아 오셨습니까?”'건물에 들어서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경비아저씨가 지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지란은 친절해 보이지만 외부인과 내부인을 엄격히 구분해 내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짓는 경비 앞에 쭈뼛거리며 수험표를 꺼내 보였다.'“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여기요.”'경비는 지란의 수험표이름과 면접으로 빌딩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들의 명단을 비교해 보고는 잠시 내부인으로 인정된 지란에게 4층으로 가라는 안내를 해주었다. 지란은 두리번거려서 엘리베이터 위치를 확인하고는 먼저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거울에 비춰진 지란의 콧잔등은 광택제라도 입힌 양 반질거리고 있었고 이마에서도 땀이 나서 얼굴이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이 정도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세안을 하고 다시 화장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란은 수돗물을 세게 틀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클렌징 폼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비누 거품을 내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씻었다. 얼굴을 감싸던 두꺼운 막이 사라진 느낌이 들어 개운했다.'“자. 이제 미녀로 변신을 해보실까?”'지란은 떨림을 날려 버리려 부러 큰 목소리로 얘기하며 가방을 뒤졌다. 가방을 뒤적거리던 지란의 손길이 급해졌다. 급기야는 가방안의 물건을 하나둘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없다. 당연히 가방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 화장품 가방이 없다. 집에서 쓰던 뷰러가 보이지 않아 화장품가방에 들어있는 뷰러를 꺼냈던 게 화근이었다. 아니 화장품 가방이 있는지 확인도 않고 상쾌함을 만끽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면접까지 앞으로 15분. 화장품 가게까지 가서 테스터를 이용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지란은 반은 포기한 상태로 물에 헝클어져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칼을 정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란의 피부가 남들보다는 하얗다는 것과 눈썹이 반쪽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면접관은 단박에 그녀의 맨얼굴을 알아볼 것이고 감점요인이 될지도 몰랐다. '이런 때 미리 입사한 민혁이 외근만 아니라면 동료 여직원의 화장품이라도 빌려오라고 하는 건데, 개똥은 늘 약에 쓰려면 없다. 개똥 이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