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녀의 사랑은 소년의 그것보다 직관적이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듯, 미온한 봄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봄을 맞이하는 새 생명처럼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어난 소년, 소녀들은 따뜻한 날씨에 더욱 활기차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되었을까, 은일중학교 2학년 2반에 전학생이 나타났다.

“전학 온 친구 이름은 박재준, 부모님과 함께 스위스에 살다 와서 한국이 낯설 거야. 너희들이 많이 도와 줄 거지? 재준이는 친구들한테 인사하고.”

담임의 말에 따라, 중학생이라고 하기엔 꽤나 어른스런 눈동자를 한 소년이 반 풍경을 한번 훑었다.

“박재준이야. 잘 부탁해.”

줄곧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그가 짤막한 인사를 끝마치자 2반 소녀들의 얼굴이 봄꽃처럼, 발그레 달아올랐다. 비록 덜 자란 것 같은 키에 마른 몸집의 소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와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박세광 화백의 아들이라는 배경은 하루 만에 소년을 학교 전체의 유명 인사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 * *

“박재준. 학교 가자. 빨리 나와!”

세희가 옆집 담벼락 아래서 재준을 큰 소리로 불렀다.

“박재준! 박재준! 박재준!”

곧 인상을 찡그린 채로 재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끄러! 이세희.”

그런 아들의 모습이 귀여운지 배웅 나온 재준모, 영주가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재준, 세희 오늘도 즐겁게 학교생활 하고 오렴.”

“네, 다녀오겠습니다. 아줌마.”

배꼽 인사를 하는 세희의 머리를 영주가 연신 쓰다듬었다.

“우리 세희는 어쩜, 언제 봐도 이렇게 예쁠까? 학교 잘 다녀와.”

영주와 세희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재준은 벌써 저만치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힘차게 뛰는 발자국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재준을 거의 따라잡은 그녀가 그의 책가방 너머로 통통한 팔을 걸쳤다.

“같이 좀 가, 박재준. 넌 아줌마한테 인사도 안 하냐?”

“나오기 전에 집에서 했어.”

“아, 배고프다.”

“아침 안 먹었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나이래. 우리 아빠가.”

중2. 한창 자랄 나이기는 했다. 그중에서도 세희는 유독 식성이 좋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도 모자라서 늘 간식을 손에 달고 살 정도로 먹는 걸 좋아했다.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재준의 시선이 느껴지자, 세희가 통통한 손가락 두 개를 들더니 그의 눈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박재준. 네가 그렇게 볼 때마다 내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이거든?”

“눈치가 좀 늘었다. 이세희.”

“아침부터 해보자는 거지? 너 3살 때 오줌 싸서 발가벗고 돌아다녔던 사진 한번 쫙 풀어볼까? 네 팬클럽 애들이 참 좋아할 텐데.”

“…그러시든지.”

“에이, 진짜. 박재준 넌 대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냐? 근데… 저기 봐봐. 저 샌드위치 초코우유랑 먹으면 진짜 맛있을 것 같지?”

골목 어귀, 빵집 유리창에 달라붙어서 세희가 입맛을 다시었다.

“학교 안 갈 거야?”

“응… 갈 거야.”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은 여전히 빵집 진열장을 떠날 줄을 몰랐다.

“이세희,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야.”

한숨을 한번 내쉰 재준이 빵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그의 손에 들려나온 샌드위치와 초코우유가 세희의 손으로 넘어갔고, 이윽고 양손 가득 그것들을 든 그녀가 볼우물을 파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잘 먹을게. 박재준.”

* * *

학교에서 재준이 ‘스위스에서 온 왕자님’으로 불린다는 것을 세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재준은 아빠 친구 아들, 어릴 적부터 발가벗고 같이 뛰놀던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사람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였다.

재준의 아버지 박세광 화백과 세희의 아버지 이두호 관장은 죽마고우였다. 미술에 소질을 보였으나 무척 가난했던 박세광 화백을 위해, 이두호 관장은 자신의 아버지 몰래 집안의 땅문서를 담보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박세광 화백이 화가로 성공을 한 후 가장 먼저 세희의 할아버지를 찾아가 큰 절을 올렸고, 이두호 관장을 위해 번듯한 태권도장을 지어준 일화는, 하도 많이 들어 재준과 세희가 달달 외울 정도였다.

스위스에서 돌아온 박세광 화백이 이두호 관장의 옆집으로 이사를 한 것은 두 사람의 우정을 앞세워 봤을 때 당연한 일이었다. 거의 가족같이 지내온 두 집안이었다. 모친들 역시 사이좋은 자매처럼 잘 지냈고, 어른들 모두가 외동아들, 외동딸인 재준, 세희 역시 함께 자라며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원했다.

어른들의 뜻에 따라 두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면서 무럭무럭 자랐고 그렇게 중3이 되었다.

학년이 바뀌는 사이 재준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2, 3학년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들어온 1학년 후배들 사이에서도 그는 유명했다. 그래도 그의 유일한 이성 친구는 세희뿐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놀러 오는 세희를 향해 재준의 반 아이들은 ‘박재준 1+1’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처음에는 재준의 옆에 꼭 붙어 다닌다고 제법 욕도 들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난 후부터 여학생들은 세희를 ‘열외’로 인정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행동은 도저히 재준을 좋아하고서는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자다가 침을 흘린 자국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애교였고 그의 앞에서 이를 쑤시는가 하면 트림도 꺽꺽 해댔다. 뿐만 아니었다. 세희는 은일중학교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였다. 반 아이들이랑 창문으로 뛰어내리다가 이마가 찢어진 적도 있었고, 수업시간에 ‘개구멍’으로 도망치다가 학생 주임 선생님한테 끌려 온 적도 여러 번이었다.

여학생들은 그런 세희를 재준의 철없는 여동생쯤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썽을 부려도 이상하게 재준의 말은 또 잘 들었기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오죽하면 그녀의 담임조차도 세희가 사라지면 항상 재준을 먼저 찾았을까. 그러면 재준은 신기하게도 손쉽게 그녀를 찾아서 데려오곤 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둘의 모습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 * *

“박재준. 오늘 너 먼저 가!”

재준의 교실에 들른 세희가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서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오늘 진짜 싸우는 건가?”

“이세희 못 봤냐? 교복 안에 체육복 껴입은 거?”

“아무리 그래도 여자잖아, 괜찮을까?”

“세희네 아빠가 태권도장 관장님이잖아. 이세희 발차기 다들 못 봤지?”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재준의 귀까지 들려왔다.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던 그가 평소답지 않게, 얼굴에 감정을 드러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몇 달 전부터 학교 근처 화실을 다니기 시작한 재준이었다. 그러다 같은 화실에 다니던 한 여학생이 그에게 고백을 했는데 이 여학생을 좋아하던 옆 학교의 질 나쁜 무리의, 일명 일진 남학생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화가 난 일진 남학생은 다짜고짜 재준에게 주먹을 날렸고, 싸울 의지가 없었던 재준이 몇 대 맞아주면서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하지만 진짜 사건은 이 사실을 세희가 알고 난 뒤부터 시작되었다. 길길이 날뛰던 그녀가 재준을 대신해서 복수를 한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혼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재준이 난감한 듯 이마를 쓸어 올리고는 세희가 사라진 방향으로 제법 긴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복도 끝에 다다라서야 머리를 질끈 묶은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정말로 교복치마 밑에 체육복까지 껴입은 것을 보니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인 재준이 세희의 교복 재킷 뒷덜미로 손을 뻗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놔.”

세희가 버둥거리며 소리를 꽥, 질렀다.

“너부터 손 봐 줄까? 어? 박재준?”

“그만해. 귀찮게 왜 그래.”

“뭐? 이게 지금 귀찮은 일이야? 네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빨주노초파남보 멍도 아주 컬러풀하게도 들었네. 네 얼굴이 뭐 스케치북이라도 돼?”

“맞은 건 난데, 왜 이세희 네가 난리야. 무시하라고 했잖아. 일 크게 만들지 마.”

“널 때린 건 날 때린 거랑 똑같은 거야! 무시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세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두 사람이었으니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출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집에나 가자, 배고프다.”

시선에 민망해진 재준이 세희의 뒷덜미를 끌고 발길을 돌렸다.

“이거 안 놔? 분명 놓으라고 했다. 박재준.”

“떡볶이 사줄게.”

“떡볶이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내가 오늘 그 자식 똑같이 패줄 거야.”

“튀김도 사줄게.”

“됐어. 지금 그딴 게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아?”

“순대도 사 줄 건데?”

“…안 먹어.”

“김밥에 라면.”

“…….”

“쫄면도.”

어느새 얌전하게 뒤따르는 그녀를 데리고 재준이 교문을 나섰다.

“종명 그 자식. 오늘 진짜 운 좋은 줄 알아야 해.”

떡볶이 국물을 입가에 잔뜩 묻힌 채로 세희가 씩씩거렸다.

“말 좀 예쁘게 못 하냐.”

냅킨을 건네며, 재준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잔소리를 했다.

“우리 아빠 잔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너까지 그러지 좀 마.”

그새 교복에 떡볶이 국물을 흘린 세희가 그것을 아무렇게나 쓱쓱 닦아댔다.

“번지잖아. 이리 줘 봐.”

새하얀 블라우스에 시뻘건 얼룩이 생기자, 재준이 세희의 손을 저지했다. 냅킨에 물을 묻혀서 닦아내자 아까보단 얼룩이 옅어졌다. 평소 같으면 ‘냅둬.’라든지, ‘귀찮아.’라든지, 무엇이든 한마디를 진작 했어도 했을 그녀가 유난히 조용했다.

“너 왜 그래?”

침묵을 지키는 세희가 이상한 듯 재준이 물었다.

“…이 변태! 박재준. 어딜 만져?”

세희가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냐, 너?”

“박재준! 지금 네가 내… 그러니까 내….”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녀의 당황한 모습에도 재준의 시선은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따라 시선을 내린 재준의 표정은 ‘그게 뭐? 어쨌다고?’에 가까웠다.

“분명히 말하지만 안 만졌다. 위치가 애매하긴 한데 가슴 아니잖아, 거기.”

태연자약하게 말을 내뱉은 재준이 차가운 생수로 입을 헹궜다. 당황해서 얼음이 된 세희에게도 무심하게 물 잔을 내밀었다.

“물 마셔. 떡볶이 맵다. 이세희.”

한참 성에 호기심을 가질 나이건만, 태연한 척하는 건지 정말 의식을 안 하는 건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재준이었다. 하긴 그의 말대로 정확히 가슴에 닿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희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친구라도 재준은 남자였다.

“앞, 앞으로는 내 몸에 손대지 마!”

물을 벌컥 들이켜는 그녀의 얼굴이 떡볶이가 매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 건지 새빨개져 있었다.

* * *

중학교 졸업을 며칠 앞둔 추운 겨울이었다. 텅 빈 교실에서 재준을 기다리던 세희가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또 받았어? 도대체 네 어디가 그렇게나 좋을까?”

그의 주번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방금 또 재준이 초콜릿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미 그의 사물함과 책상 곳곳에 초콜릿이 넘치고 있었다. 재준이 정중하게 거절을 하고도 남은 초콜릿이 이만큼이었다.

그의 주변에 초콜릿이 넘쳐흐르는 오늘은 바로 밸런타인데이. 하지만 재준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누구보다도 신난 건 세희였다. 그의 손에 들린 초콜릿을 눈여겨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의 배고픈 아이들을 생각하면 음식을 버리는 건 진짜 나쁜 짓이야, 그치?”

“말이라도 못하면. 초콜릿 귀신.”

세희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재준이 내민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고는 우물우물 녹였다. 진득한 달콤함이 온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래, 이 맛이지. 그녀의 통통한 볼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좀 전에 걔는 2학년이야? 제법 예쁘던데?”

“관심 없어.”

“왜? 다들 네가 누구랑 사귈지 궁금해 죽잖아, 솔직히 말해 봐. 관심 가는 애 없어?”

“집에나 가.”

“우리 박재준은 언제 첫사랑을 하려나? 너 설마… 이 누나가 좋고, 막 그런 건 아니지?”

“미쳤지? 이세희.”

“여태껏 그 많은 고백들을 그래서 다 모른 척한 거였어? 진작 말을 하지! 이리 와. 이 누나가 진하게 안아줄게.”

“죽을래? 안 떨어져?”

짜증을 내는 재준을 향해 세희가 씩, 웃으면서 다가갔다. 또 시작됐다. 박재준 놀리기. 그녀가 요즘 세상에서 가장 즐겨하는 놀이 중의 하나였다.

늘 여유가 넘치던 재준이 정말 당황한 듯, 정색을 하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그 모습에 세희가 교실이 떠나가라 깔깔거렸다.

“박재준, 너 표정 지금 되게 웃긴 거 알아?”

화가 난 재준이 그녀의 손에서 초콜릿을 도로 가져갔다.

“야! 먹던 걸 뺏냐. 치사하게.”

“그러게 누가 장난치래?”

“안 그럴 테니까 내놔, 빨리.”

“저번에도 그랬거든. 너.”

“진짜 안 그럴게. 이번에는 진짜야.”

교실 문을 나서는 재준에게 그녀가 사정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수십 번 약속을 한 대가로 세희는 결국 초콜릿이 가득 든 종이 가방을 차지했다.

16살의 밸런타인데이가 그렇게 지나가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두 사람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찬란하지만 슬픈, 봄의 시작이었다.

“치. 같은 반 아니네.”

“그래도 옆 반이잖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박재준 넌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재준의 무심한 반응이 얄미워서 세희가 그의 정강이를 툭 걷어찼다.

“넌 도대체가 인마, 여자인지 남자인지……. 철 좀 들어라, 제발.”

“…….”

“입 좀 집어넣지?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잖아. 매일 볼 건데 뭐가 그렇게 또 섭섭한 건데?”

서운한 마음에 입을 다문 그녀의 머리 위로 좀 전과는 사뭇 다른, 조금 다정해진 재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순간부터 재준의 키는 세희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기 시작했다. 마른 몸집도 제법 단단해졌다. 재준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세희는 여전히 통통했다. 행동도 여전히 ‘말괄량이, 왈가닥’이었다. 매일 재준에게 ‘얌전하게 있어, 가만히 좀 있어. 철 좀 들어.’라는 잔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17세 소녀였다.

* * *

예전보다 훨씬 늘어난 공부 양과 낯선 환경에 정신없이 적응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고, 그 시간에 비례하여 두 사람도 이제는 제법 고등학생의 태가 나기 시작했다.

“박재준, 집에 가자!”

“재준이 소각장에 쓰레기 버리러 갔는데.”

그의 반 친구가 세희를 알아보고는 알려 주었다. 수업이 끝난 학교, 너른 운동장을 지나 교문을 빠져 나가는 아이들을 한참이나 구경을 했는데도 재준은 감감무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