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이쪽으로 오시죠.”'드디어 그녀의 차례였다. 영주는 뒤적이던 잡지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웨이터를 따라갔다. 레스토랑도 아니고 카페에서 테이블나기를 기다려 본 적은 별로 없지만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카페 ‘에땅 블루’의 녹차빙수가 꼭 먹고 싶었다. 날씨는 찜통더위에, 회사에서는 신제품 출시 때문에 그녀가 근무하는 광고 커뮤니케이션팀의 일이 밀려 요 근래 제 시간에 퇴근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빙수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사람 많다고 이 카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근정을 구슬려서 이곳으로 약속장소를 잡은 것이었다.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까지 아직 10분이 남아있었다.'“이쪽입니다.”'“고마워요.”'영주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웨이터가 두고 간 메뉴판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앞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 것은.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왠지 낯이 익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여자다. 뭔가 기억해 내려는 듯 영주를 힐끔거리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니 여자도 영주를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영주를 보는 여자의 얼굴에 의아해하는 빛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영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우의 친구가 모임에 자주 데리고 나오던 여자가 분명했다. '동우는 친구들과 각자 애인을 대동하고 만나는 것을 즐겼다. 그와 사귀는 동안 그런 자리에 여러 번 나갔기 때문에 여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던 것이다. 맙소사. 여자를 알아본 순간 영주의 시선이 자동으로 앞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 저 여자가 있다는 건 저 여자의 남자친구도 있다는 얘기였고, 그렇다는 건 동우도……. 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동우는 그녀를 등지고 앉아있었다.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어 한 손은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앉아있는 여자의 어깨에 올려놓은 채. '‘저 여잔가 보다. 동우의 새 여자. 머리가 짧네. 동우가 짧은 머리를 좋아했던가?’'영주는 동우가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살짝 웃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동우가 여자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는 게 보였다. 머리가 멍했다. 저 남자와 헤어진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고 그동안 소개팅도 몇 번 하면서 이젠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뒷모습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걸 보면. 순간 핸드폰 진동이 느껴지자 영주는 퍼뜩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 쪽으로 걸어갔다. 동우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어, 근정아.”'영주는 소리를 죽여 전화를 받았다.'[나 5분 정도 늦을 것 같아. 길이 좀 막힌다.]'“어.”'[너는 도착했니?]'“응.”'영주는 동우가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근정의 물음에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아까 그 여자가 일행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제발 그녀 얘기가 아니기를. 제발 모르는 척 해줘. 부탁이야.'[영주야, 현영주?]'“어?”'[왜 그래? 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로 근정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