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준과 혜연 ''“뭔가 착각 하시고 계시는데 저 혼자는 도저히 아이를 키우고 공부할 만큼 여유가 없었어요. 저를 옆에서 항상 지켜봐주고 사랑해 준 한결같은 사람이 따로 있어서 이제 곧 그 사람과 결혼 할 거예요.”'“앗, 뜨, 뜨거!”'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던 재준이 갑자기 그 답지 않게 커피를 쏟고 말았다. '“괜찮으세요?”'놀란 혜연이 재빨리 쏟아진 커피를 옆에 놔둔 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커피는 책상 위의 서류는 피해서 그의 허벅지 위의 고급 슈트만 적셨다. 혜연은 그의 옷 위에 묻은 커피를 닦으면서 이대로 두면 바로 얼룩이 질까 봐 걱정되었다. '“여벌 옷 있죠? 지난번 보니까 저 방에 옷장도 보이는 것 같던데요?”'옷을 닦던 손길을 멈추지 않고, 고개를 들어 재준을 보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가까이에 재준의 얼굴을 맞닥트리고 말았다. 눈동자가 얽히면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탐스러운 입술에 머무르고 말았다. 혜연은 마치 예전 그들이 처음 만나던 날 재준의 입술에 키스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또 그에게 키스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으음……. 지금 제대로 닦고 있는 거야?”'키스하기도 전에 갑자기 재준의 억눌린 듯한 신음이 들렸다. 그 소리에 혜연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걸레를 잡은 손이 재준의 허벅지 사이를 무의식중에 계속 문지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다리 사이 주변을 왔다 갔다 하자 그의 욕망을 자극한 것 같았다. 부풀어 오른 남자의 그곳이 눈에 띄자 혜연은 당황하여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때 재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버렸다. '“왜, 왜 이러세요!”'“이렇게 두고 가면 내가 너무 가엾잖아. 남자를 자극해서 불씨를 키웠으면 책임도 같이 져야지.”'재준의 쉰 듯한 목소리가 혜연의 귀를 스치며 속삭였다.'''* 하운과 수진 ''“오늘 혜연일 재준이 녀석에게 갈 수 있도록 놔 주고 오는 길이야.”'그 말을 하는 하운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수진은 좀 전에 주문해둔 조니워커를 하운의 잔에 따랐다. 독한 위스키가 자신만 필요한 줄 알았는데 그에게도 필요한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시고 보는 것도 한 방법이야.”'“술도 별로 강하지 않은 것 같던데 이런 독한 술을 먹어도 괜찮은 거야?”'“내가 지난번에 소주 마시는 거 봤지? 나 끄덕없어. 나보단 오늘 당신이 이 술이 더 잘 어울리겠지만 말이야.”'하운은 수진이 내미는 잔을 사양하지 않았다. 오늘은 수진이 사겠다고 한 날이고 그녀의 취향대로 이곳에 오긴 했지만, 뜻밖에 조용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의 레스토랑이었다. 저녁 먹기도 전에 술부터 먹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난번 같은 실수를 할까봐 조심스러워지긴 했다. 오늘은 그냥 마음을 위로받을 친구가 필요했고, 반수진은 그의 기분을 잘 이해해 주는 좋은 친구였다. 독한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수진을 보았다. 긴 머리가 길게 내려와 처음의 사무적이던 첫인상과는 무척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스토랑의 희미한 불빛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이 아스라한 느낌을 주었다. 강한 듯 보였던 그녀는 겉만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아픈 과거를 알고 그녀를 대하자 느낌이 달라 보였다. 키가 크고 날씬한 각선미가 일부러 강조한 건 아니란 건 알지만, 하운의 눈에 그녀의 까만 색 심플한 치마 밑에 예쁜 다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거야? 내 다리 관심 있어?”'“다리……스타킹 고 나갔어.”'덤덤한 하운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들렸다. '“뭐라고?”'놀란 수진이 자신의 다리를 이리저리 훑어 보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았다.'“어디? 어디야?”'“큭큭 농담이야. 예쁜 다리 자랑하는 거 같아서 관심 한 번 가져준 거야.”'“하…….”'어이없는 눈으로 하운은 쳐다보는 수진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웃고 말았다.'“정말 못 말려. 호호호……. 나나 당신이나 지금 심각한 상황이란 거 잊었어?”'''